민법기초강의

[민법입문 : 물권법] 물건의 인도① - 물건의 점유를 넘기는 방법

칼린츠 2023. 1. 29.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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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의 점유를 넘기는 방법

 

이제 굉장한 걸 설명하려고 한다. 뭐냐고? 바로 ‘물건을 인도하는 방법’이다.

 

뭔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물건을 갖다주면 인도하는 거지 별 거 있냐고? 사실 맞는 말이다. 민법책을 읽다보면 ‘뭐 이렇게 당연한 소리를 이렇게 진지하게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한두번이 아니다. 아주 비일비재하다. 본디 법학이란 매우 당연한 이야기를 지극히 어려운 용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부동산에는 등기가 있으니 부동산 물권을 설정·이전·변경·소멸시키려면 등기를 해야 한다(제187조). 하지만 동산에는 등기제도가 없지 않은가. 등기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민법은 동산의 물권변동은 ‘인도’를 해야 효력이 발생하는 것으로 규정한다(제188조 제1항). 즉, 부동산에서 ‘등기’ 역할을 하는 것이 동산에서는 ‘인도’인 것이다. 내가 어떤 동산의 소유권을 넘겨받거나, 동산 담보권을 설정하려면 그 동산을 ‘인도’받아야 소유권이나 담보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⑴ 현실인도

 

인도(引渡) 란 무엇인가. 점유를 넘겨주는 것이다. 점유란 무엇인가. 어떤 물건을 사실상 지배하는 것이다. 그러니 인도란 물건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를 전달하는 행위다.

 

따라서 물건을 인도하는 가장 원칙적인 모습은 뭐니뭐니해도 ‘현실인도’라 부르는 방법이다. 물건의 사실상 지배상태를 그대로 넘겨주는 방법이다. 상대방에게 책을 직접 주는 것, 매수인에게 부동산 열쇠를 주고 방을 비워주는 것, 택배로 물건을 배송해주는 것 모두 현실인도이다.

 

⑵ 간이인도, 점유개정, 반환청구권 양도

 

그런데 점유는 직접점유가 있고 간접점유가 있다. 점유란 물건을 ‘사실상 지배’하는 것이다. 이 ‘사실상 지배’라는 말이 오묘하다. 무엇이 ‘사실상의 지배’인가. 대법원은 누가 어떤 물건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지는 “사회관념에 따라 합목적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했다.[각주:1]

 

어쨌든 핵심은 점유란 ‘관념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손에 쥐고 있어야만 이 책을 점유하고 있는 건 아니다. 내가 이 책을 내 학교 사물함에 넣어놓거나 내 집 책장에 꽂아 놓았더라도 그 책을 점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생각을 조금 더 발전시켜보자. 내가 어떤 책을 친구에게 빌려주었다고 하자. 책을 빌려간 그 친구는 당연히 그 책을 점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나도 언제든지 그 친구에게서 책을 되돌려 받을 수 있다. 그 친구한테 “책 깨끗하게 봐라”라고 하면서 이래저래 간섭할 수도 있다. 친구를 매개로 그 책을 간접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넓게 본다면 나 또한 점유자다. 이때 책을 직접 점유하고 있는 그 친구를 직접점유자, 친구를 매개로 간접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나를 간접점유자라 부른다. 엄연히 둘 다 점유자다.

 

이처럼 하나의 물건에 대해서 직접점유자와 간접점유자가 있을 수 있다. 이로 인해 아래와 같이 인도하는 방법이 나눠진다.

자, 물건을 인도하는 사람을 양도인, 인도받는 사람을 양수인이라고 해보자.

 

① 간이인도 : 우선, 양수인이 이미 물건을 직접점유하고 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양수인이 이미 물건을 점유하고 있으니 양도인과 양수인이 “물건의 점유를 넘겨준다”고 합의만 하면 자동적으로 양수인은 완전한 점유를 취득한다. 이것이 간이인도이다.

A는 인쇄기 소유자이다. A는 B에게 인쇄기를 빌려줬다. B는 그 인쇄기를 직접점유하며 잘만 쓰고 있다. 이윽고 B가 A에게서 그 인쇄기를 샀다. A와 B는 “이제부터 B가 인쇄기를 가진다”는 합의를 하면 충분하다. 그 합의만으로 B는 점유를 넘겨받는다. 간이인도 받은 것이다.

 

물론 겉보기에 별로 달라진 건 없다. 간이인도를 하기 전과 후 변함 없이 인쇄기는 B에게 있다. 다만, 동산의 소유권은 인도받아야 취득할 수 있다(민법 제188조 제1항). 위 합의로 B는 동산을 인도받은 것이니, 이제부터 소유자다.

 

② 점유개정 : 반대로 양도인이 동산을 인도하면서도 계속 자신이 직접점유하기로 합의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이것이 점유개정이다.

 

만약 A가 인쇄기를 소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사용까지 하고 있다고 해보자. A가 B에게 인쇄기를 팔면서 ‘내가 매달 얼마씩 줄테니 계속 인쇄기를 쓸 수 있게 해달라’고 약정했다. 이제 B는 A와 맺은 계약에 따라 인쇄기에 대한 간접점유를 갖게 되고, A는 계속 그 인쇄기를 직접점유한다.

 

점유개정을 하기 전과 후 변함 없이 인쇄기는 A에게 있다. 겉으로는 물권변동이 없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엄연히 인도가 된 것이다. B는 동산을 인도받았으니 소유권을 취득한다.

 

③ 반환청구권양도 : 이번에는 아예 제3자가 물건을 직접점유하고 있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양도인이 제3자를 매개로 간접점유만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때는 양도인이 양수인에게 제3자에 대한 반환청구권을 넘겨주는 방식으로 동산점유를 양도할 수 있다.

 

 

A는 인쇄기 소유자이다. C는 그 인쇄기를 빌린 임차인이다. A는 C에게 계약 기간이 끝나면 인쇄기를 돌려달라고 할 수 있는 청구권이 있다. A는 B에게 그 반환청구권을 양도함으로써 자신의 간접점유를 넘겨줄 수 있다. 반환청구권을 양도하면 이제 인쇄기의 간접점유자는 C가 된다.

  1. 대법원 1992. 11. 10. 선고 92다37710 판결 등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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