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기초강의

[민법입문 : 물권법] 취득시효① - 점유취득시효

칼린츠 2023. 2. 1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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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유취득시효

 

밥을 먹다가 옷에 찌개 국물을 흘렸다. 금방 닦으면 지워진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 자국을 놔둔다면 아무리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다. 찌개 국물을 흘렸다는 사실은 옷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다.

 

일정한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었을 때 그 상태대로 법률관계를 인정해버리는 제도를 ‘시효’라고 한다. 소멸시효는 어떤 사람이 오랜 세월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그 권리를 소멸시켜 버리는 제도이다. 반대로 취득시효라는 것도 있다. 어떤 사람이 진짜 권리자는 아니지만, 마치 권리자인 것처럼 권리를 실현하는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다면 그 권리를 취득하게 된다.

 

민법 제245조 제1항을 보자. 어떤 사람이 2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부동산을 점유한다면 그 소유권을 취득한다. 찌개 국물이 자국을 남기듯이, 소유의 의사로 20년 간 점유하는 것은 소유권을 남긴다. 오랫동안 부동산을 점유한 덕분에 공짜로 부동산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취득시효 제도는 일종의 ‘합법적 절도’를 인정한다. 법적 안전성을 위해서다. 제245조 제1항의 취득시효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등기 필요없고 오랫동안의 ‘점유’만 필요하다. 그래서 이를 ‘점유취득시효’라고 부른다. (반면, 등기가 필요한 제245조 제2항의 취득시효를 ‘등기부 취득시효’라고 부른다.)

 

제245조(점유로 인한 부동산소유권의 취득기간) ①2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부동산을 점유하는 자는 등기함으로써 그 소유권을 취득한다.
②부동산의 소유자로 등기한 자가 1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선의이며 과실없이 그 부동산을 점유한 때에는 소유권을 취득한다.

 

 

 

소유의 의사로 점유

 

점유취득시효가 인정되려면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점유해야 한다. 다행히 부동산을 점유하는 사람은 일단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점유한 것으로 추정된다.[각주:1] 그러니 ‘쟤는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점유하는 자가 아니야’라고 주장하는 쪽에서 반대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점유자가 그 부동산을 폭력적 방법으로 탈취하였다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평온, 공연 점유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A가 그 부동산을 정상적으로 돈주고 구입했다면 당연히 평온, 공연한 점유다.

 

소송에서 주로 문제가 되는 건 점유자가 ‘소유의 의사로’ 점유를 했냐는 거다. 무엇이 소유의 의사로 하는 점유일까? 판례 표현에 따르면 “자기의 소유물처럼 배타적 지배를 행사하는 의사”를 가지고 하는 점유이다. 소유권이 있다고 믿고 하는 점유를 말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각주:2]

 

과연 이 사람에게 ‘소유의 의사’가 있는지는 무엇 기준으로 판단할까? 판례는 점유자가 무슨 권원으로 점유하게 된 것인지 그 성질을 살펴 객관적으로 결정한다. 점유자의 진짜 속마음이 무엇인지를 따져보아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각주:3]

 

그래서 소유의 의사로 하는 점유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가 부동산을 왜, 어떤 권리로 점유하게 되었는지를 확인해봐야 한다.

 

① A는 다른 사람에게서 상가를 빌려서 점유했다. 즉, A는 ‘임차인’으로서 그 상가를 점유하기 시작한 것이다. 임차인은 그 물건의 소유자가 따로 있음을 인정하며 점유하는 사람이다. 소유의 의사로 점유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 이런 점유로는 점유취득시효가 성립할 수 없다.

 

② 반면, B는 어떤 사람에게서 상가를 구입했다. 즉, B는 ‘매수인’으로서 그 상가를 점유하였던 것이다. 매수인은 소유권을 취득하고자하는 사람이다. B는 소유의 의사로 점유한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등기를 마치지 못하여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했더라도 20년 간 점유하면 점유취득시효가 완성될 수 있다.

 

③ 어떤 땅을 사면서 그 옆에 있는 땅의 일부도 자신이 구입한 땅인 줄로 착각하여 점유하는 경우도 종종 일어난다. C는 121번지 땅을 샀는데 그 옆에 있는 122번지의 일부도 자신이 구입한 땅에 속하는 걸로 잘못 알았다. 과연 ‘소유의 의사’로 점유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나? 판례는 침범 면적이 일반적으로 있을 수 있는 착오 정도에 해당할 정도로 작은 수준이라면 소유의 의사를 인정한다. 하지만 그 정도를 넘는다면 소유의 의사로 점유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각주:4]

 

④ 어떤 사람이 아무 권원도 없이 그 권원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무턱대고 부동산을 점유하면 어떨까? 이런 점유를 이른바 ‘악의의 무단점유’라고 부른다. 1997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와 같은 사실이 증명된다면 소유의 의사가 있는 점유라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각주:5] 예컨대 A가 남의 땅에 쳐진 철조망을 뜯고 들어가 가건물을 짓고 점유했다고 하자. 이건 악의의 무단점유이다. A가 아무리 오래 그 땅을 점유하더라도 취득시효는 완성되지 않는다.

 

 

 

20년간 점유

 

점유취득시효가 인정되려면 점유자는 그 부동산을 20년이나 점유해야 한다. 엄청나게 긴 시간이다.

 

그런데 20년을 채우지 않고도 점유취득시효를 노려볼 방법이 있다. 바로 ‘점유를 승계’하는 것이다. 점유자는 자기보다 먼저 부동산을 점유했던 사람의 점유를 이어받을 수 있다(제199조 제1항).

 

제199조(점유의 승계의 주장과 그 효과) ① 점유자의 승계인은 자기의 점유만을 주장하거나 자기의 점유와 전점유자의 점유를 아울러 주장할 수 있다.
②전점유자의 점유를 아울러 주장하는 경우에는 그 하자도 계승한다.

 

A는 B에게서 상가를 구입하는 계약을 맺었다. 5년 동안 점유했다. 알고 보니 그 상가의 진짜 소유자는 C였다. C는 A에게 “내 땅 내놓으라”고 아우성이다. 이때 A는 “나 점유취득시효 완성했으니, 당신이야말로 내게 땅 소유권을 내놓으슈”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A의 점유기간은 5년이므로 아직 점유취득시효를 주장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런데 마침 A 바로 직전에 그 땅을 점유하였던 B는 그 땅을 15년이나 점유했다. A는 B의 점유를 승계할 수 있다(제199조 제1항). A와 B의 점유를 합하면 총 점유기간은 20년이다. 점유취득시효가 완성된다!

 

하지만 앞 사람의 점유를 승계하면 그 점유의 하자도 이어 받는다(제199조 제2항). 만약 B가 ‘소유의 의사’로 점유를 한 것이 아니었다고 하자. A가 B의 점유를 승계하면 더이상 ‘소유의 의사로’ 점유를 한 것이 아니게 된다. 점유취득시효는 성립하지 않는다. A는 점유취득시효 완성 주장을 할 수 없다. 땅을 취득할 수 없다.

 

 

 

점유취득시효가 완성되면 어떻게 되는거지?

 

점유취득시효 기간은 20년이다. 하지만 20년이 지났다고 하여 점유자가 곧장 소유권을 취득하는 건 아니다. 민법은 그 점유자가 “등기”를 해야 소유권을 취득한다고 규정한다(제245조 제1항).

 

그러니 점유자는 20년 동안 점유를 한 뒤 소유자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청구권을 취득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 소유권이전등기까지 마쳐야 비로소 진정한 소유자가 된다.

 

판례는 이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은 채권적 청구권이라고 본다.[각주:6] 채권과 물권의 차이 기억나는가? 물권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행사할 수 있다. 반면 채권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행사할 수 있다. ( https://avalanche.tistory.com/111 [민법입문 : 물권법] 물권의 의의, 물건, 물권의 종류, 물권법정주의 (tistory.com) 3. 물권의 효력 - 물권과 채권의 차이 참조)

 

만약 A가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20년 간 부동산을 점유하였다고 하자. 그러면 A는 ‘그 완성 당시’의 소유자에게만 “소유권이전등기를 해달라”고 청구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할 수 없다. 만약 점유취득시효가 완성되었는데 소유자가 그 부동산의 소유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줬다고 하자. A는 그 새로운 소유자에게는 소유권이전등기를 해달라고 청구할 수 없다.

 

두 가지 경우를 비교해보자. 첫째는 점유취득시효 기간이 진행하다가 중간에 소유자가 바뀌고 그 뒤에 점유취득 시효가 완성된 경우다. 둘째는 점유취득시효 기간이 완성된 뒤 아직 시효점유자가 등기를 이전받지 못했는데 소유자가 바뀐 경우다. 결과에 큰 차이가 있다.

 

① A는 2020년 1월 1일부터 인천의 땅을 점유하기 시작했다(나머지 점유취득시효의 요건은 모두 갖춘 점유라고 하자). 그 땅의 소유자는 B이다. 그런데 B가 2030년 1월 1일 C에게 그 소유권을 양도했다. 이후 A는 2040년 1월 1일까지 계속 그 땅을 점유했고, 점유취득시효가 완성됐다. 점유취득시효가 완성되면 ‘완성 당시 소유자’에게 등기를 청구할 수 있다고 했지? 따라서 A는 C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청구할 수 있다.

 

 

 

② 반면, A가 2020년 1월 1일부터 땅을 점유하기 시작했다(마찬가지로 점유취득시효의 다른 요건은 모두 갖춘 점유이다). 역시나 그 땅의 소유자는 B이다. 이후 A는 2040년 1월 1일까지 계속 땅을 점유했고, 점유취득시효가 완성됐다. 이제 A는 그 소유자인 B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소유권이전등기를 넘겨받진 못하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B는 C에게 소유권을 양도했다. A가 B에게 행사할 수 있던 소유권이전등기 청구권은 이행불능에 빠진다.[각주:7] 더이상 B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청구할 수 없는 것이다.

 

나아가 본래 A의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은 B에 대해서만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A는 C에게 등기를 달라고 할 수 없다. A가 C에게 점유취득시효를 주장하고 싶다면 C가 소유권을 취득한 때부터 다시 20년의 점유기간을 채워야 한다.[각주:8] 다시 점유취득시효 기간이 완성되면 A는 C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청구할 수 있는 것이다.

 

 

 

아아악, 결국 A는 소유권이전등기를 할 수 없다.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게 된다.

 

A를 위해 판례가 제시하는 구체책은 두가지다.

 

첫째, 대상청구권이다. 이것은 채권이 이행불능이 되었고 그 이행불능으로 인해 채무자가 얻은 이익이 있다면 채권자가 그 이익을 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대법원은 20년 동안 점유한 시효점유자가 등기청구권이 이행불능에 빠지기 전 등기명의자에게 그 권리를 주장하였다면 대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했다.[각주:9]

 

그러니까, A가 20년의 점유기간을 채웠다고 하자. 그리고 A는 B에게 “나 점유취득시효 기간 다 채웠으니 이제 등기를 넘겨주시오”라고 권리 주장을 했다. 그럼에도 B는 C에게 땅을 5억 원 받고 팔아버렸다. 등기도 마쳐줬다. A의 등기청구권은 이행불능에 빠진다. A는 B에게 등기를 달라고 청구할 수 없다. 하지만 대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땅 대신 5억 원을 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다. 대법원은 시효점유자가 소유자를 상대로 취득시효 완성을 원인으로 하는 소유권이전등기청구를 하는 등으로 소유자가 시효완성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봄이 상당한데도 그 목적물을 다른 사람에게 처분하여 시효점유자의 권리취득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면 불법행위가 된다고 하였다.[각주:10]

 

가령 A가 B에게 점유취득시효가 다 됐다는 사실을 주장했다고 하자. B는 시효완성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C에게 땅을 팔아버렸다. 그렇다면 A는 B에게 불법행위책임을 물을 수 있다. 자신이 땅을 취득하지 못하게 된 손해를 배상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1. 제197조 [본문으로]
  2. 대법원 1990. 11. 13. 선고 90다카21381, 21398 판결 [본문으로]
  3. 대법원 1997. 8. 21. 선고 95다28625 판결 [본문으로]
  4. 대법원 2001. 5. 29. 선고 2001다5913 판결 [본문으로]
  5. 대법원 1997. 8. 21. 선고 95다28625 판결 [본문으로]
  6. 대법원 1995. 12. 5. 선고 95다24241 판결, 대법원 1996. 3. 8. 선고 95다34866 판결 [본문으로]
  7. 대법원 1992. 9. 25. 선고 92다21258 판결 [본문으로]
  8. 대법원 2009. 7. 16. 선고 2007다15172, 15189 판결, 대법원 2009. 9. 10. 선고 2006다609 판결 [본문으로]
  9. 대법원 1996. 12. 20. 선고 94다43825 판결 [본문으로]
  10. 대법원 1989. 4. 11. 선고 88다카8217 판결, 대법원 1993. 2. 9. 선고 92다47892 판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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