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판례정리

[민법판례정리] 채권자대위권에서 채무자의 무자력이 요건이 되지 않는 경우

칼린츠 2019. 12. 31.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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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판례정리] 채권자대위권에서 채무자의 무자력이 요건이 되지 않는 경우

대법원 1989. 4. 25. 선고 88다카4253 판결 

 

제405조(채권자대위권행사의 통지) ①채권자가 전조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보전행위 이외의 권리를 행사한 때에는 채무자에게 통지하여야 한다. ②채무자가 전항의 통지를 받은 후에는 그 권리를 처분하여도 이로써 채권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Ⅰ. 사실관계

 

A 소유 건물을 B가 임차보증금 1,500만원으로 1년간 임차하기로 했다. 이후 묵시의 갱신으로 임대차가 지속되어 왔다. C는 B에게 사진관을 양도하기로 했다. 그 양도대금 담보로 B가 A에게 행사할 수 있는 임차보증금 반환채권을 양도받았다. 양도통지는 A에게 1986. 1. 11. 도달했다. 

 

C는 1986. 11. 21. B에게 행사할 수 있는 양도대금 청구권을 보전하기 위해, B를 대위하여 A와 B 사이의 임대차계약을 해

 

 

 

피고의 소외 회사에 대한 3억원의 대여금채권이 있다. A를 포함한 8인은 이 대여금채권을 담보하기 위해 각 소유 부동산 위에 피고 앞으로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모두 물상보증인이 된 것이다. 그 후 주채무자와 물상보증인들 중 5명(A는 포함되지 않았다)은 1987. 12.부터 1989. 3.까지 공동근저당권의 피담보채무를 모두 변제하였다. 피담보채무는 소멸했다. 그러나 이 대위변제자들은 다른 물상보증인이 설정한 근저당권에 대위의 부기등기를 하지 않았다.

 

이후 원고는 변제를 하지 않았던 물상보증인 중 한사람인 A에게서 담보로 제공했던 부동산을 매수했다. 1989. 11. 소유권이전등기도 받았다.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소송을 제기했다. 피담보채권이 소멸하였으니 저당권도 소멸한 것이라면서, 근저당권등기의 말소를 청구했다. (A는 원래 이 사건 소송의 원고였으나 원심에서 탈퇴했다. 여기서 '원고'라고 불리는 사람이 승계참가했다.)

 

 

 

Ⅱ. 당사자의 주장

 

1. 원고의 주장

 

피담보채권이 이미 변제로 소멸하였다. 저당권도 소멸한 것이다. 근저당권 등기명의자인 피고는 근저당권등기를 말소해야 한다.

 

 

2. 피고의 주장

 

물상보증인 중 일부가 피담보채무를 변제하였다. 이들은 다른 물상보증인의 담보부동산을 취득한 제3취득자인 원고에 대해 변제자대위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근저당권등기를 말소해줄 수 없다.

 

 

 

Ⅲ. 사안의 쟁점

 

물상보증인들 가운데 일부가 채무를 대위변제하였다. 그러나 다른 물상보증인 소유의 부동산에 설정된 근저당권설정등기에 대해 부기등기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동안 제3취득자 원고가 부동산을 취득했다. 대위변제한 물상보증인은 제3취득자에 대해 채권자를 대위할 수 있는가. (소극)

 

 

Ⅳ. 원심의 판단(서울고법 1990. 2. 20. 선고 89나34324 판결)

 

원심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자기의 재산을 타인의 채무의 담보로 제공한 물상보증인이 수인인 경우에 그 중의 일부가 채무자를 대위하여 채무를 변제하였다면 그 구상권의 범위 내에서 각 부동산의 가액에 비례하여 다른 담보제공자에 대하여 채권자를 대위하여 채권자의 담보에 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고, 이와 같은 경우에는 인적 보증인의 대위의 경우와 달리 저당권의 등기에 미리 그 대위를 부기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저당물에 권리를 취득한 제3자에 대하여 채권자를 대위할 수 있다.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한 근저당권은 위 채무를 대위변제한 물상보증인들의 대위의 목적이 되었다고 할 것이며, 피고로서는 이들 각 대위변제자들의 청구가 있으면 즉시 위 담보권을 이전하여 줄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위 근저당권설정등기의 말소등기절차를 이행할 의무가 없다.

 

 

Ⅴ. 대법원의 판단(이하 '대상판결'이라고 한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며 상고를 인용했다.

 

물상보증인은 대위의 부기등기를 해야만 다른 물상보증인에게서 부동산을 양수한 제3취득자에 대해 변제자대위를 할 수 있다고 했다.

 

타인의 채무를 변제하고 채권자를 대위하는 대위자 상호간의 관계를 규정한 민법 제482조 제2항은 제1호에서 "보증인은 미리 전세권이나 저당권의 등기에 그 대위를 부기하지 아니하면 전세물이나 저당물에 권리를 취득한 제3자에 대하여 채권자를 대위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제5호에는 "자기의 재산을 타인의 채무의 담보로 제공한 자와 보증인간에는 그 인원수에 비례하여 채권자를 대위한다. 그러나 자기의 재산을 타인의 채무의 담보로 제공한 자가 수인인 때에는 보증인의 부담부분을 제외하고 그 잔액에 대하여 각 재산의 가액에 비례하여 대위한다. 이 경우에 그 재산이 부동산인 때에는 제1호의 규정을 준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제5호 단서에서 대위의 부기등기에 관한 제1호의 규정을 준용하도록 규정한 취지는 자기의 재산을 타인의 채무의 담보로 제공한 물상보증인이 수인일때 그중 일부의 물상보증인이 채무의 변제로 다른 물상보증인에 대하여 채권자를 대위하게 될 경우에 미리 대위의 부기등기를 하여 두지 아니하면 채무를 변제한 뒤에 그 저당물을 취득한 제3취득자에 대하여 채권자를 대위할 수 없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해석된다. 만약 그렇게 해석하지 아니하고 원심이 판단한 바와 같이 보증인이 물상보증인에 대하여 채권자를 대위할 경우에만 제5호 단서에 의하며 제1호의 규정이 준용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제5호가 제1호에 규정된 똑같은 경우에 관하여 다시 제1호의 규정을 준용하도록 규정한 셈이 되어 같은 내용을 되풀이하여 규정한 이외에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는 것으로 되기 때문이다.

 

 

 

Ⅵ. 검토

 

1. 변제자대위

 

채무자도 아닌 자가 채무자를 위해 변제를 하면 채무자에게 구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구상권을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 민법은 채무자가 채권자의 권리를 이전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이 변제자대위다. "변제할 정당한 이익이 있는자"는 변제하면 당연히 채권자의 권리를 대위한다(제481조, 법정대위). 그러한 이익이 없는 자는 채권자의 승낙을 얻어 대위한다(제480조 제1항, 임의대위). 

 

하나의 채권에 변제할 정당한 이익이 있는 사람이 여러 명 있을 수 있다. 그 구상관계는 민법 제482조에 따라 처리한다. 대상판결에서 문제된 사안은 이렇다. 여러 물상보증인이 있다. 그 중 일부만 대위변제를 했다. 그리고 변제를 하지 않은 물상보증인이 제3취득자에게 부동산을 양도했다. 이때 변제를 한 물상보증인은 미리 대위의 부기등기를 하지 않아도 제3취득자에 대해 채권자의 담보권을 대위할 수 있을까. 

 

 

2. 대법원의 판단

 

제482조 제2항 전항의 권리행사는 다음 각호의 규정에 의하여야 한다.

1. 보증인은 미리 전세권이나 저당권의 등기에 그 대위를 부기하지 아니하면 전세물이나 저당물에 권리를 취득한 제3자에 대하여 채권자를 대위하지 못한다.

2. 제3취득자는 보증인에 대하여 채권자를 대위하지 못한다.

3. 제3취득자 중의 1인은 각 부동산의 가액에 비례하여 다른 제3취득자에 대하여 채권자를 대위한다.

4. 자기의 재산을 타인의 채무의 담보로 제공한 자가 수인인 경우에는 전호의 규정을 준용한다.

5. 자기의 재산을 타인의 채무의 담보로 제공한 자와 보증인간에는 그 인원수에 비례하여 채권자를 대위한다. 그러나 자기의 재산을 타인의 채무의 담보로 제공한 자가 수인인 때에는 보증인의 부담부분을 제외하고 그 잔액에 대하여 각 재산의 가액에 비례하여 대위한다. 이 경우에 그 재산이 부동산인 때에는 제1호의 규정을 준용한다.

 

 

밑줄친 제482조 제2항 제5호 단서를 보자. 문장이 애매하다. 대체 "이 경우"란 어떤 경우를 의미할까. 언제 제1호의 규정을 준용하란 말일까?

 

원심은 물상보증인한테서 부동산을 양수한 제3취득자에 대해 채권자를 오직 보증인이 대위하는 경우에만 제5호 단서가 적용되어 제1호에 따라 부기등기가 필요하다고 봤다. 물상보증인이 다른 물상보증인한테서 담보부동산을 양수한 제3취득자에 대해 채권자를 대위하는 경우에는 부기등기가 없어도 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달랐다. 제5호 단서는 물상보증인이 여러 명이기만 하면 적용된다고 봤다. 이 사안처럼 물상보증인이 다른 물상보증인한테서 부동산을 양수한 제3취득자에 대해 채권자를 대위하는 경우에도 제5호를 적용해야한다고 했다. 물상보증인도 보증인처럼 미리 부기등기를 해야만 변제자대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원심처럼 해석면 제5호 단서가 제1호 내용과 똑같아져 제5호를 별도로 둔 의미가 사라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원심과 대법원의 해석이 갈렸다. 도대체 누가 맞을까?

 

 

 

3. 대법원 해석의 부당성

 

대법원이 제482조 제2항 제5호 단서를 '물상보증인과 다른 물상보증인에게서 권리를 취득한 제3자 사이의 관계'에 적용하려고 한 것은 부당하다. 먼저 제482조 제2항 각호의 전체적 체계를 살펴보자. 제482조 제2항 제1호와 제2호는 '보증인과 제3취득자의 관계'를, 제3호는 '제3취득자 상호간의 관계'를, 제4호는 '물상보증인 상호간의 관계'를, 제5호는 '보증인과 물상보증인의 관계'를 다룬다.

 

뭐라고? 제5호는 보증인과 물상보증인의 관계를 다룬다고? 그렇다. 제5호는 원래부터 물상보증인 상호간의 관계를 처리하기 위한 규정이 아니다. 당연히 물상보증인과 물상보증인에게서 담보부동산을 취득한 제3취득자 사이에도 적용할 수가 없다.

 

그리고 제5호를 문장 단위로 쪼개서 곱씹어도 보자. 1문, 2문, 3문으로 나누어 보겠다.

 

5. 자기의 재산을 타인의 채무의 담보로 제공한 자(=물상보증인)와 보증인간에는 그 인원수에 비례하여 채권자를 대위한다(1문). 그러나 자기의 재산을 타인의 채무의 담보로 제공한 자가 수인인 때에는 보증인의 부담부분을 제외하고 그 잔액에 대하여 각 재산의 가액에 비례하여 대위한다(2문). 이 경우에 그 재산이 부동산인 때에는 제1호의 규정을 준용한다(3문).

 

1문은 보증인과 물상보증인 사이의 관계를 설명한다. 보증인이 물상보증인에 대해, 혹은 물상보증인이 보증인에 대해 채권자를 대위할 때에는 인원수에 비례하여 대위한다는 내용이다. 2문은 1문이 정하는 전체 경우 중에서 일부를 한정하여 설명한다. 즉, 보증인과 물상보증인이 함께 있는데, 그 중 물상보증인이 여럿인 경우를 정하고 있다.

 

3문은 5호 전체의 단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3호에서 "이 경우"란 1문에서 지시하는 전체 경우를 말한다. 즉 '물상보증인과 보증인이 함께 있는 경우'를 의미하는 거다. 뜬금없이 전체 경우의 일부인 2문만에 단서를 붙였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양창수 교수님 말에 따르면 이 점은 제482조의 모태가 된 일본민법 제501조 단서 제5호를 보면 더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제3문에 따라 제1호를 적용할 수 있으려면 물상보증인과 보증인이 함께 있어 상호간에 변제자대위가 일어나야 한다. 대상판결 사안처럼 물상보증인 상호간에 변제자대위를 하는 때에 적용할 수 있는 규정이 아니란 말이다!1

 

이처럼 제482조 제2항 각호를 체계적으로 검토해보든 제5호만 다시 읽어보든, 제5호를 '물상보증인 상호간의 관계'나 '물상보증인과 다른 물상보증인에게서 담보부동산을 취득한 제3취득자의 관계'에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대상판결은 꾸역꾸역 적용하려 한다. 무리한 시도다.

 

대상판결 사안으로 돌아가보자. 물상보증인 5명이 다른 물상보증인한테서 부동산을 매수한 제3취득자인 원고에 대해 변제자대위를 할 수 있는지가 문제됐다. 대상판결은 제482조 제2항 제5호를 적용할 수 있다고 하였으나, 적용할 수 없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제482조 제2항 제5호를 적용할 수 없다면 물상보증인이 그러한 제3취득자에 대해 변제자대위를 할 때에는 부기등기가 없어도 된다고 보아야할까?

 

 

 

4. 부기등기의 필요여부

 

가. 양창수 교수님의 견해2

 

양창수 교수님은 그래도 부기등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제3취득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제5호가 준용하는 제1호를 다시 읽어보자.3 제1호는 보증인이 제3취득자에 대해 변제자대위를 하려면 미리 부기등기를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왜 부기등기를 하라는 것일까? 통설은 이렇게 설명한다. '보증인이 피담보채무를 대위변제하였다면 제3취득자는 저당권이 소멸하였다고 믿을 것이다. 만약 보증인이 부기등기조차 없이 저당권을 대위행사할 수 있다고 하면 제3취득자는 예상하지 못한 손해를 입는다.' 그런데 보증인이 대위변제했을 때만 제3취득자가 예상할 수 없는 손해를 입는가? 물상보증인이 대위변제를 해도 제3취득자는 똑같이 저당권이 소멸했다고 믿을 것이 아닌가? 그러니 양창수 교수님은 물상보증인이 대위변제를 했을 때도 제3취득자를 보호하기 위해 미리 부기등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제5호 1문이 보증인과 물상보증인을 동등하게 취급하기 때문이다. 제5호는 물상보증인과 보증인은 인원수에 비례하여 채권자를 대위하라고 규정한다. 이처럼 제5호가 보증인과 물상보증인의 지위에 우열을 두고 있지 않다면, 제3취득자에 대한 관계에서도 보증인과 물상보증인을 동등하게 취급해야 한다. 보증인이 변제자대위를 위해 부기등기가 필요하다면, 물상보증인도 부기등기를 갖추어야 한다.

 

자, 물상보증인이 다른 물상보증인한테서 부동산을 취득한 제3자에 대해 채권자를 대위하려면 미리 부기등기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깨달았다. 그런데 무엇을 근거로 부기등기를 요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제5호를 적용할 수 없다는 건 앞에서 지적하지 않았는가. 우리에겐 다른 조문이 필요하다.

 

양창수 교수님의 해법은 이렇다. 제341조, 제370조에 따르면, 저당권자가 채무를 변제하면 '보증채무에 관한 규정'에 따라 구상권을 취득한다.4 변제자대위는 구상권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이고, 제482조 제2항 제1호는 보증인에 관한 규정이다. 그러니 저당권자가 채무를 변제하면 제341조, 제370조를 거쳐 제482조 제2항 제1호를 준용 또는 유추적용할 수 있다고 한다. 물상보증인이 제3취득자에 대해 변제자대위를 하려면 제482조 제2항 제1호에 따라 부기등기를 해야하는 것이다.

 

(다만, 양창수 교수님은 제3취득자를 나누어 '물상보증인한테서 담보부동산을 취득한 제3취득자'와 '채무자한테서 취득한 제3취득자'를 구분한다. 보증인이나 물상보증인이 전자에 대해 채권자를 대위하기 위해서는 부기등기가 필요하지만, 후자에 대해 채권자를 대위할 때에는 마치 채무자에 준하여 부기등기가 없어도 가능하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설명하겠다. 어쨌든 대상판결 사안은 물상보증인이 다른 물상보증인한테서 담보부동산을 양수한 제3취득자에 대해 채권자를 대위하는 경우이므로, 양창수 교수님도 미리 부기등기를 해야 한다고 본다.)

 

 

나. 명순구 교수님의 견해5

 

명순구 교수님은 부기등기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유를 알아보자.

 

명순구 교수님은 제482조 제2항 제1호를 둔 이유를 통설과 다르게 이해한다. 통설은 보증인이 피담보채무를 변제하였으면, 제3취득자는 저당권이 당연히 소멸하였다고 믿을 텐데, 보증인이 부기등기 없이 저당권을 대위행사하면 제3취득자는 불측의 손해를 입는다고 한다. 그러니 부기등기가 미리 필요하다는 거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제3취득자가 보증인이 채무를 변제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당연히 보증인이 변제자대위를 해올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할 것이다. 보증인이 부기등기 없이 저당권을 대위행사해도 제3취득자는 불측의 손해를 입는 것이 아니다. 외려 충분히 예상된 수순이다.

 

따라서 부기등기는 통설과 같은 이유로 필요한 게 아니다. 제482조 제2항이 언제 부기등기를 요구하는가. 제1호와 제5호에서다. 모두 변제자대위를 보증인이 하는 경우이다. 사실 대위변제자가 변제자대위를 하면 등기 없이 물권을 취득하므로 변제자대위제도는 공시제도를 교란한다. 다른 법정대위자에게 변제자대위를 하는 사람이 물상보증인이나 제3취득자라면 그나마 낫다. 물상보증인이나 제3취득자가 가진 등기로 그들의 존재가 공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증인의 존재를 공시하는 방법은 없다. 보증인은 공시되지 않는다. 보증인이 미리 부기등기를 하지 않으면 제3취득자는 불현듯 나타난 보증인의 존재로 그야말로 예상치 못한 손해를 입는다. 부기등기는 공시의 원칙을 관철하기 위한 방책이다.

 

결국, 부기등기가 필요한 경우는 다른 사람에 대해 채권자의 권리를  '보증인'이 대위할 때만이다. 그러나 대상판결 사안은 '물상보증인'이 제3취득자에 대해 채권자의 권리를 대위하려는 경우다. 명순구 교수님 견해에 따르면 부기등기가 필요 없다.

 

(한편 명순구 교수님은 양창수 교수님과 다르게 제3취득자를 둘로 나누지 않는다. 채무자한테서 부동산을 취득한 제3취득자이든 물상보증인한테서 부동산을 취득한 제3취득자이든 상관없이, 보증인이 제3취득자에 대해 채권자를 대위하려면 부기등기가 있어야 하지만, 물상보증인이 대위하려면 부기등기가 필요 없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따라서 명순구 교수님에 따르면, 제482조 제2항 제5호 제3문은 물상보증인한테서 부동산을 양수한 제3취득자에 대해 오직 '보증인'이 변제자대위를 할 때에만 부기등기가 미리 필요하다고 정한 규정이다. 물론 이렇게 해석하면 제5호 3문과 제1호 내용이 똑같아 진다. 대법원은 이렇게 똑같아지는 것 때문에 물상보증인이 변제자대위를 할 때에도 제5호 3문에 따라 부기등기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명순구 교수님은 오히려 제5호 3문은 제1호를 일부러 반복하는 '주의적 규정'에 불과하다고 한다. 제5호의 의미를 살린답시고 어설프게 물상보증인이 변제자대위를 하는 경우에도 제5호를 적용하여 부기등기가 필요하다고 하면, 오히려 변제자대위 체계가 무너진다고 보는 거다. 아닌 게 아니라 위에서 이미 보았지 않은가. 대법원의 섣부른 해석은 제482조 제2항 전체 체계와 제5호의 문언에 맞지 않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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