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기초강의

[민법입문 : 계약법] 해제 - 해제의 개념, 발생사유, 사정변경에 의한 해제권, 직접효과설vs청산관계설, 원상회복관계, 해제의 소급효와 제3자 보호

칼린츠 2020. 4. 30.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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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제를 할 수 있는 경우는 언제인가

 

 

답답한 놈을 만났다. 내가 밭을 팔기로 했다. 분명 내가 약속한 날에 등기서류를 준다고 했다. 그런데 불안해한다. 중도금을 달라니까, 차일피일 미룬다. 중도금 받기로 한 날은 벌써 보름이 지났다. "여기에 감자를 심으면 잘 자랄까요?", "배추를 심어도 될까요?" 질문만 한다. 돈을 달라니까, 돈을!! 이때 외치고 싶다. "나 이 계약 무를거야!" 이렇게 계약을 무르는 걸 해제라고 한다. 해제하면 계약은 처음부터 없었던 상태로 돌아간다. 

 

물론, 해제는 아무때나 할 수 없다. 나한테 해제권이 있어야 가능하다. 해제권은 두가지 방법으로 생긴다.[각주:1] 

 

첫째, 당사자가 "이러저러한 경우에 해제권을 갖자"고 합의하는 경우다. 당사자가 합의한 그 상황이 생기면 해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걸 약정해제권이라 한다. 대표적인 예가 당사자들이 계약금을 주고받은 때다. 민법은 계약금을 주고받았다면 해약금 약정이 있다고 추정한다(제565조). 계약금을 받은 사람은 그 2배를 돌려주고, 이미 준 사람은 그 돈을 포기하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러니 계약금을 주면 일종의 약정해제권이 생긴다. (계약금 계약에 대해서는 https://avalanche.tistory.com/80참조)

 

둘째, 법률이 "이러저러한 경우 해제권이 생긴다"고 규정하는 경우다. 법률이 정한 상황이 일어나면 해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걸 법정해제권이라 한다. 다양한 사유로 법정해제권이 생긴다. 채무자가 채무불이행을 한 경우(제544~546조), 매도인이 담보책임을 지는 경우(제570조 이하), 수급인이 담보책임을 지는 경우(제668조 이하), 사용대차에서 해제할 수 있는 경우 등이다. 물론 채무자가 채무불이행을 하였을 때가 가장 중요하다. (아래 2.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해제는 단독행위다. 해제권자가 "나 해제할래요"라고 일방적인 의사표시를 하면 해제된다. 약정해제권도 마찬가지다. 당사자가 약정한 사정이 일어나면, 당사자 일방은 약정해제권을 취득한다. 그가 해제권을 행사해야 계약은 해제된다. 

 

그러니 해제는 해제계약(합의해제)과 다르다. 해제계약은 계약이다. 당사자가 모여 "기존 계약을 해제하자"는 새로운 약정을 하는 것이다. 사적자치 원칙상 얼마든지 허용된다. 다만, 해제계약은 앞으로 설명하는 해제의 일반적인 내용이 원칙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해제계약의 내용은 그저 당사자가 합의한 내용을 따른다.[각주:2] 예컨대, "우리 계약을 해제하고, 손해배상도 서로 청구하지 않도록 하자"고 약정했다면, 당사자는 그 약정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또, 해제와 해지는 다르다. 급부가 계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계약이 있다. 이를 계속적 계약이라 한다. 임대차, 소비대차, 종신정기금 계약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계속적 계약을 해지하면 기존까지 상태는 그대로 남아있고, 장래를 향해서만 계약이 효력을 잃는다. 해제는 계약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만드는데, 해지는 그저 미래를 향해서만 효력을 없앤다.

 

 

 

2. 법정해제권의 발생 사유

 

가. 채무자의 채무불이행

 

제544조(이행지체와 해제) 당사자 일방이 그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상대방은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그 이행을 최고하고 그 기간내에 이행하지 아니한 때에는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자가 미리 이행하지 아니할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는 최고를 요하지 아니한다.
제545조(정기행위와 해제) 계약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에 의하여 일정한 시일 또는 일정한 기간내에 이행하지 아니하면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경우에 당사자 일방이 그 시기에 이행하지 아니한 때에는 상대방은 전조의 최고를 하지 아니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제546조(이행불능과 해제) 채무자의 책임있는 사유로 이행이 불능하게 된 때에는 채권자는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채무자가 채무불이행을 하였으면 채권자는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요건은 '최고'다. (최고란 "채무를 이행하라"고 독촉하는 걸 말한다.)

 

채무자의 채무이행이 불능하게 된 때는 채권자가 최고 하지 않아도 해제할 수 있다(제546조). 이미 이행 자체가 불가능한데, 독촉해봤자 소용없기 때문이다. 

 

반면, 채무자가 이행을 지체하고 있을 뿐이라면 최고한 뒤에야 해제할 수 있다(제544조). 이행지체라면 아직 이행은 가능한 상황이다. 채권자가 한번 독촉해보고, 그래도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때 해제할 수 있다는 거다. 채무자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는 셈이다. 

 

민법은 최고를 할 때 '상당한' 기간을 정해서 하라고 한다(제544조). "내일까지는 이행해주세요", "이번달까지는 이행해주세요"처럼 이행기간을 정하라는 것이다. 그 시간은 '상당'해야 한다. 채무자가 이행을 준비하고 이행하는 데 부족하면 안 된다. "내일 당장 5억 원을 마련하시오.", "1시간 안에 부산에 있는 제련설비를 서울로 가져 다 주세요"라고 재촉하면 어쩌란 말인가. 채무자의 눈앞이 벌써부터 깜깜해진다. 이런 최고는 타당하지 않다. 

 

채권자가 이렇게 촉박하게 기간을 준다면 최고는 부적법하다. 그러나 최고를 다시 해야하는 건 아니다. 학설·판례는 촉박하게 최고하였더라도 채무를 이행하는 데 '상당한 기간'만 지나면 해제권을 취득한다고 본다. 가령 A가 "내일 당장 5억 원을 마련해오시오"라고 촉박하게 최고했더라도 일단 최고했다고 인정된다. 그래서 5억 원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상당한 기간이 지나면 A는 해제할 수 있다. A가 이미 최고를 했는데, 허락한 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다시 최고를 하라고 시키면 너무 번잡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법원은 채권자가 기간을 정하지 않고 최고하더라도 괜찮다고 본다. 무작정 "5억 원을 주시오"라고 하더라도, 상당한 기간만 지나면 해제권을 취득한다는 것이다.[각주:3]

 

한편, 채무자가 이행을 지체하였지만 최고 없이 곧바로 해제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첫째는 계약이 정기행위(定期行爲)인 경우다(제545조). 반드시 어떤 기간 내에 급부가 이루어져야만 하는 계약을 말한다. 가령 A가 돌잔치 케익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돌잔치날이 지나면 케익은 아무 소용이 없다. 제빵업자가 이행을 지체하여 돌잔치 날에 케익을 배송하지 못하였다면, A는 최고 하지 않고 바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최고를 하는 게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채무자가 미리 이행을 거절하는 경우다(제544조 단서). B가 공사업자에게 집을 지어달라고 주문했다. 공사가 한참 진행되다가 갑자기 공사업자가 "공사를 포기하겠다"고 했다. 덜컥 채무이행을 거절한 것이다. 이처럼 채무자 스스로 채무이행을 안 하겠다는데, 굳이 "채무를 이행하라"는 독촉을 하는 건 무의미하다. B는 곧장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나. 사정변경 원칙에 따른 해제권 

 

계약체결 이후 사정이 바뀌었다는 것만으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을까? 

 

예전에는 대법원이 해제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러다가 2007년 기념비적인 판결을 내놓는다. 사정변경 원칙을 근거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아래 판결은 그 요건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대법원 2007. 3. 29. 선고 2004다31302 판결] 이른바 사정변경으로 인한 계약해제는, 계약성립 당시 당사자가 예견할 수 없었던 현저한 사정의 변경이 발생하고, 그러한 사정 변경이 해제권을 취득하는 당사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생겼으며, 계약내용대로 구속력을 인정하면 신의칙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가 생기는 경우 계약준수 원칙의 예외로 인정된다.
여기서 말하는 사정은 계약의 기초가 되었던 객관적인 사정이지, 일방당사자의 주관적 또는 개인적인 사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계약의 성립에 기초가 되지 아니한 사정이 그 후 변경되었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계약내용을 유지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하지 않는다.[각주:4] 

 

가만히 읽어보면 알겠지만 요건이 상당히 엄격하다. ① 당사자가 계약당시 예견할 수 없는 사정변경이 일어나야 한다. ②그 사정변경에 당사자의 책임이 없어야 한다. ③ 계약내용을 그대로 인정하면 신의칙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가 되어야 한다. ④ 더구나 그 사정은 계약의 기초가 된 객관적 사정이어야 하고, 개인적인 사정이어서는 안된다. 도대체 이런 상황이 가능하단 말인가?ㅋㅋ 대법원도 일반론만 설시하고 있을 뿐이다. 아직 사정변경으로 계약해제를 인정한 구체적 사례는 없다. 

 

가령 C가 지방자치단체한테서 토지를 구입하기로 계약했다. 여기에 음식점을 지으려 했다. 그런데 그 토지가 공공공지에 편입되었다. 이제 음식점을 지을 수 없게 됐다. C는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그런 사정으로는 해제할 수 없다고 했다. 해제하려면 계약의 기초가 된 '객관적 사정'이 현저히 바뀌었어야 하는데, '음식점을 짓겠다'는 건 C의 개인적 목적일 뿐이니까.[각주:5] 

 

다. 부수적 채무 불이행을 이유로는 해제불가

 

해제는 계약을 없었던 상태로 되돌린다. 효과가 막대하다. 그러니 사소한 의무 위반만으로 해제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대법원도 채무자가 부수적인 의무를 위반한 것만으로는 해제할 수 없다고 한다(다만, 그 부수 의무 위반으로 계약목적을 달성할 수 없거나 특별한 약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해제할 수 있다고 한다).[각주:6]

 

무엇이 계약의 주된 의무이고, 무엇이 부수의무일까? 개별적으로 판단한다. 대법원은 당사자의 합리적인 의사, 계약의 내용, 목적, 불이행의 결과 등을 고려하여 결정한다.[각주:7] 판단기준이 애매하다ㅋㅋ 덕분에 변호사가 먹고 산다. 

 

가령 D는 영상물 전문제작업체에게 10분짜리 기업홍보 영상을 제작의뢰했다. 제작업체는 영상을 완성했지만, 제작일정에 다소 차질이 생겨 약속한 날짜에 시사회를 진행하지는 못했다. 대법원은 시사회 준비의무는 이 영상물 제작공급계약의 부수의무일 뿐이라고 했다. 제작업체가 시사회를 진행하지 못했더라도 D는 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고 했다.[각주:8]

 

 

 

3. 해제권 행사의 효과 

 

가. 직접효력설 vs 청산관계설

 

제548조(해제의 효과, 원상회복의무) ①당사자 일방이 계약을 해제한 때에는 각 당사자는 그 상대방에 대하여 원상회복의 의무가 있다. 그러나 제삼자의 권리를 해하지 못한다. ②전항의 경우에 반환할 금전에는 그 받은 날로부터 이자를 가하여야 한다. 제549조(원상회복의무와 동시이행) 제536조의 규정은 전조의 경우에 준용한다.
제551조(해지, 해제와 손해배상) 계약의 해지 또는 해제는 손해배상의 청구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해제권 행사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까. 직접효력설은 "해제권을 행사하면 계약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소멸한다. 계약관계가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청산관계설은 "해제 이후에도 계약관계는 소멸하지 않는다. 다만, 청산관계라는 새로운 형태로 바뀔 뿐이다."고 반박한다. 청산관계란 당사자들이 주고받은 급부를 되돌려주는 관계를 말한다.  

 

청산관계설은 독일에서 직수입한 이론이다. 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이냐? 제551조는 계약을 해제하더라도 손해배상청구가 여전히 가능하다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일단 채권‧채무관계가 존재해야 한다. 그러니 청산관계설은 해제를 하더라도 계약관계가 과거부터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관계 자체는 여전히 남아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청산관계설은 타당하지 않다. 한국 민법의 규정과는 맞지 않는다. 청산관계설처럼 계약관계가 여전히 남아있다고 본다면 굳이 제551조가 있을 필요가 없다. "원래는 계약관계가 소급하여 소멸하므로 손해배상청구권은 인정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입법자가 제551조를 특별히 마련했다. 이로써 손해배상청구권만큼은 여전히 행사가능하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더구나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제548조 제1항 단서는 해제를 하더라도 "제삼자의 권리를 해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왜 입법자가 제3자 보호규정을 두었을까? 해제를 하면 계약관계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 계약을 기초로 이해관계를 맺은 제3자들이 줄줄이 예상치 못한 손해를 입을 수 있다. 그러니 제3자 보호규정이 있는 것이다. 청산관계설은 제548조 제1항 단서가 왜 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직접효과설이 타당하다. 판례도 "해제 이후에는 계약이 없었던 원상태로 복귀한다"고 선언했다.[각주:9] 직접효과설과 같은 입장이다. 

 

[대법원 1977.05.24. 선고 75다1394 판결] 민법 548조 1항 본문에 의하면 계약이 해제되면 각 당사자는 상대방을 계약이 없었던 것과 같은 상태에 복귀케할 의무를 부담한다는 뜻을 규정하고 있는 바 계약에 따른 채무의 이행으로 이미 등기나 인도를 하고 있는 경우에 그 원인행위인 채권계약이 해제됨으로써 원상회복 된다고 할 때 그 이론 구성에 관하여 소위 채권적 효과설과 물권적 효과설이 대립되어 있으나 우리의 법제가 물권행위의 독자성과 무인성을 인정하고 있지않는 점과 민법 548조 1항 단서가 거래안정을 위한 특별규정이란 점을 생각할때 계약이 해제되면 그 계약의 이행으로 변동이 생겼던 물권은 당연히 그 계약이 없었던 원상태로 복귀한다 할 것이다. 

 

이하에서는 직접효력설에 따라 계약이 해제된 이후의 법률관계를 살펴본다.

 

나. 해제에 따른 원상회복 관계

 

해제권을 행사하면 계약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된다. A가 부동산을 파는 계약을 맺었지만, 매수인이 대금을 주지 않아 계약을 해제했다고 하자. 이제 계약은 애당초 맺지 않았던 것처럼 소멸한다. 해방이다. 이제 당사자들은 계약이 정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 A는 더이상 부동산 소유권을 이전할 의무를 지지 않는다. 

 

만약 각자 수령한 것이 있다면 해제 이후에는 상대에게 돌려줘야 한다. 계약에 따라 물건, 권리, 돈을 받은 사람은 그대로 상대방에게 반환해야 하는 것이다. 해제 이후에는 계약을 맺지 않았던 상태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물건, 권리, 돈을 가지고 있을 법률상 원인이 사라진다. 이러한 반환의무를 원상회복의무라고 부른다. 

 

원상회복은 법률상 원인이 없는 것을 돌려주는 것이다. 실질이 부당이득반환이다. 일반적인 부당이득반환 범위는 제한이 있다. 선의수익자는 이익이 현존하는 한도에서만 반환하면 충분하다(제748조 제1항). 하지만 계약해제로 원상회복을 할 때에는 그런 거 없다. 선의든 악의든 상관하지 않고, 받은 이익을 몽땅 돌려줘야 한다.[각주:10] 물건을 사용한 이익도 있다면 이것도 돌려줘야 한다.[각주:11] 

 

이처럼 물건을 받은 사람은 물건과 함께 그 사용이익도 반환해야 하므로, 돈을 받은 사람은 그 돈을 받은 날부터 법정이자(연 5%)를 붙여서 돌려줘야 한다(제548조 제2항). 자동차운수업에 종사하는 B가 상대방한테서 승용차를 3천만원에 샀다. 이 차량으로 월 200만 원의 수입을 얻었다. 얼마 뒤 계약이 해제됐다. B는 승용차와 함께 그 사용이익(월 200만 원)을 함께 돌려줘야 한다. 대신 B는 "내가 준 3천만원과 더불어 그 이자(연 5%)를 달라"며 원상회복청구할 수 있다. 물론 두 채무는 동시이행관계에 있다(제549조).

 

한편, 상대방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했을 때, 여전히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제551조). 원상회복만으로도 메워지지 않는 손해가 있다면 손해배상을 활용하자. 이때 손해배상은 이행이익을 구하는 것이 원칙이다.[각주:12] "계약이 제대로 이행되었더라면 나는 얼마를 얻을 수 있었는데 당신 때문에 얻질 못했어요!"라면서 그 이익 상실 손해를 배상청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가령 C가 아파트를 3억 원에 구입하였는데, 이행불능 당시 그 시가가 3억 4천만 원으로 상승했다. C가 매매대금 3억 원을 되돌려받더라도 시가상당액은 보상받지 못한다. 이때 이행불능 당시 시가상승분을 손해배상으로 청구하면 된다.[각주:13](이행이익과 신뢰이익의 차이는 여기를 참조하자. https://avalanche.tistory.com/78).

 

다. 해제의 소급효와 제3자 보호 

 

계약을 해제하면 계약은 소급적으로 사라진다. 당사자가 물권을 넘겼더라도 해제 후에는 자동으로 돌아온다. 가령 A가 매수인에게 부동산 이전등기를 마쳐줌으로써 소유권을 양도했다. 그 뒤 계약을 해제하면 그 소유권이 곧장 A에게 복귀한다. 매수인은 이제 소유자가 아니니까 등기를 말소해야 한다. 그렇지만 아직 말소등기를 하지 않았더라도 소유자는 A이다. A는 원상회복청구권을 행사하여 매수인에게 "말소등기를 하세요"라고 청구할 수 있다. 

 

 

계약은 다양한 이해관계와 얽혀있다. 하나의 계약을 없애버리면 자칫 그 계약과 얽혀있는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해칠 수 있다. 거래안전이 위협받는다. 그래서 민법은 선언한다. 해제를 하더라도 "제3자의 권리를 해하지 못한다"고 말이다(제548조 제1항 단서). 

 

[질문] 예를 들어, A가 매수인에게 주택 소유권을 넘겼다. B는 그 매수인에게서 그 주택 소유권을 다시 취득했다. 그런데 A가 매수인과 맺은 매매계약을 해제했다. A는 B에게 "내 집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정답] 할 수 없다. 제548조 제1항 단서 때문이다.

 

제548조 제1항 단서가 없었다면 B는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다. A가 매매계약을 해제했고, 매수인은 소유권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매수인은 무권리자다. 무권리자한테서는 권리를 취득할 수 없다. B는 매수인과 매매계약을 맺었지만, 무권리자인 매수인한테서 소유권을 양수할 수 없다.

 

B 입장에선 화날만한 일이다. 채무불이행을 한 사람은 매수인이지, B가 아니다. B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소유권을 잃어버려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 제548조 제1항 단서가 있다. A가 계약을 해제하고, 그 계약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되더라도, B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취득한 주택의 소유권을 여전히 가진다. A는 B에게 "주택 소유권을 되돌려 달라"고 할 수 없다. (대신, A는 매수인에게 가액반환을 받을 수 있다. 손해배상도 청구할 수 있다.)

 

제548조 제1항 단서로 보호받는 제3자의 범위는 무한하지 않다. 판례는 제3자란 "그 해제된 계약에 대해 해제 전에 새로운 이해관계를 가졌을 뿐 아니라, 등기·인도 등으로 완전한 권리를 취득한 자”라고 한다.[각주:14]B가 아직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지는 않고, 그저 매매계약만 체결한 상태라면 완전한 권리를 취득한 것이 아니다. 제548조 제1항 단서의 제3자가 아니다. 보호받지 못한다. (B는 A에게 집을 돌려줘야 한다. B는 매수인에게 "당신 때문에 손해를 입었어요! 담보책임, 채무불이행책임, 불법행위책임을 묻겠어요!"라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한편, "제3자"에 해당하기만 하면 보호받는다. 선악을 불문한다(제548조 제1항 단서). 비진의표시, 통정허위표시 등에서는 '선의'의 제3자가 보호받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각주:15]. 사실 당연한 소리다. 의사표시가 성립 당시에 하자가 있을 때, 제3자가 그 흠결을 알면서도 이해관계를 맺었다면 그에게 보호가치가 없다. 위험을 자기가 무릅썼기 때문이다.

 

반면, 계약을 해제하는 상황은 다르다. 일단 법률행위는 적법하게 성립한다. 제3자가 미리 알아차릴 수 있는 의사표시 흠결사항이 없다. 뒤늦게 채무불이행이나 약정해제권 발생사유가 일어났다면서 계약당사자들이 느닷없이 해제할 뿐이다. 제3자가 거래를 한 뒤에 계약해제가 사후적으로 일어나므로 미리 파악할 수가 없다. 제3자는 선악불문하고 보호받아야 한다.[각주:16]

 

그런데 A가 계약을 해제했지만, 아직 말소등기가 이루어지지 않아 형식적으로만 매수인 앞으로 등기가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 판례는 이와 같이 정정등기가 있기 전에 거래한 경우에는 "계약해제 사실을 몰랐던 경우"에만 보호된다고 판시했다.[각주:17] 즉, A가 이미 계약을 해제한 뒤에 B가 매수인에게서 부동산을 취득하였다면, 그가 선의이어야만 보호받는 것이다. 

 

[대법원 2000.04.21. 선고 2000다584 판결]
계약 당사자의 일방이 계약을 해제하였을 때에는 계약은 소급하여 소멸하고 각 당사자는 원상회복의 의무를 지게 되나, 이 경우 계약해제로 인한 원상회복등기 등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계약의 해제를 주장하는 자와 양립되지 아니하는 법률관계를 가지게 되었고 계약해제 사실을 몰랐던 제3자에 대하여는 계약해제를 주장할 수 없다.

 

 

  1. 제543조(해지, 해제권) ①계약 또는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당사자의 일방이나 쌍방이 해지 또는 해제의 권리가 있는 때에는 그 해지 또는 해제는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로 한다. [본문으로]
  2. 대법원 1997. 11. 14. 선고 97다6193 판결 "합의해제·해지의 요건과 효력은 그 합의의 내용에 의하여 결정되고 이에는 해제·해지에 관한 민법 제543조 이하의 규정은 적용되지 않는 것이므로, 리스회사가 약정해제·해지 사유를 규정한 당해 발주계약의 계약서에 의하여 발주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는지 여부 및 그 효력은 공급자와 리스회사 사이의 발주계약에서 정하여진 바에 따라야 한다." [본문으로]
  3. 1994. 11. 25. 선고 94다35930 판결은 "이행지체를 이유로 계약을 해제함에 있어서 그 전제요건인 이행의 최고는 반드시 미리 일정기간을 명시하여 최고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며 최고한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이 경과하면 해제권이 발생한다고 할 것이고,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중도금을 지급하지 아니하였으니 매매계약을 해제하겠다는 통고를 한 때에는, 이로써 중도금 지급의 최고가 있었다고 보아야 하며, 그로부터 상당한 기간이 경과하도록 매수인이 중도금을 지급하지 아니하였다면 매도인은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본문으로]
  4. 원문을 조금 가다듬었다. [본문으로]
  5. 위 2007.03.29. 선고 2004다31302 판결 사실관계 [본문으로]
  6. 대법원 1968. 11. 5. 선고 68다1808 판결, 대법원 1976. 4. 27. 선고 74다2151 판결, 대법원 1992. 6. 23. 선고 92다7795 판결, 대법원 1996. 7. 9. 선고 96다14364 판결 등 [본문으로]
  7. 대법원2005. 11. 25. 선고 2005다53705·53712 판결 [본문으로]
  8. 1996. 7. 9. 선고 96다14364 판결 [본문으로]
  9. 1977. 5. 24. 선고 75다1394 판결 [본문으로]
  10. 대법원 1998.12.23. 선고 98다43175 판결 "계약해제의 효과로서의 원상회복의무를 규정한 민법 제548조 제1항 본문은 부당이득에 관한 특별 규정의 성격을 가진 것이라 할 것이어서, 그 이익 반환의 범위는 이익의 현존 여부나 선의, 악의에 불문하고 특단의 사유가 없는 한 받은 이익의 전부라고 할 것이다." [본문으로]
  11. 대법원 1976. 3. 23. 선고 74다1383 판결 "제548조 제2항에 비추어 목적물을 사용함으로 인하여 얻은 이익을 부가하여 반환하는 것이 형평의 요구에 합당" [본문으로]
  12. 다만, 판례는 이행이익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신뢰이익 손해도 청구할 수 있다고 한다. 대법원 2002.06.11. 선고 2002다2539 판결은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계약해제와 아울러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에 그 계약이행으로 인하여 채권자가 얻을 이익 즉 이행이익의 배상을 구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에 갈음하여 그 계약이 이행되리라고 믿고 채권자가 지출한 비용 즉 신뢰이익의 배상을 구할 수도 있다고 할 것이고, 그 신뢰이익 중 계약의 체결과 이행을 위하여 통상적으로 지출되는 비용은 통상의 손해로서 상대방이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지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그 배상을 구할 수 있고, 이를 초과하여 지출되는 비용은 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손해로서 상대방이 이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경우에 한하여 그 배상을 구할 수 있다고 할 것이고, 다만 그 신뢰이익은 과잉배상금지의 원칙에 비추어 이행이익의 범위를 초과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본문으로]
  13. 소유권이전의무가 이행불능 되었을 때 이행불능 당시 목적물 시가 상당액이 통상손해라는 것이 판례다. 대법원 1996. 6. 14. 선고 94다61359,61366 판결은 "매도인의 매매목적물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 의무가 이행불능이 됨으로 말미암아 매수인이 입는 손해액은 원칙적으로 그 이행불능이 될 당시의 목적물의 시가 상당액이고, 그 이후 목적물의 가격이 등귀하였다 하여도 그로 인한 손해는 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것이어서 매도인이 이행불능 당시 그와 같은 특수한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 한하여 그 등귀한 가격에 의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함은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라고 했다. [본문으로]
  14. 대법원 2003. 1. 24. 선고 2000다22850 판결) [본문으로]
  15. 민법 제107조 제2항, 제108조 제2항, 제109조 제2항 [본문으로]
  16. 대법원 2010. 12. 23. 선고 2008다57746 판결 "계약당사자의 일방이 계약을 해제한 경우 그 계약의 해제 전에 그 해제와 양립되지 아니하는 법률관계를 가진 제3자에 대하여는 계약의 해제에 따른 법률효과를 주장할 수 없고, 이는 제3자가 그 계약의 해제 전에 계약이 해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 하더라도 달라지지 아니한다." [본문으로]
  17. 대법원 2000. 4. 21. 선고 2000다584 판결 등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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