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기초강의

[민법입문:계약법] 계약의 무효와 취소 - 반사회적 법률행위, 불공정한 법률행위

칼린츠 2020. 8. 2. 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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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사회적 법률행위

가. 반사회적 법률행위 규제

 

제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
제104조(불공정한 법률행위) 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으로 인하여 현저하게 공정을 잃은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
제746조(불법원인급여) 불법의 원인으로 인하여 재산을 급여하거나 노무를 제공한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불법원인이 수익자에게만 있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다. 내가 어떤 내용의 계약을 맺을지, 누구와 계약을 맺을지, 어떤 방식으로 맺을지는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유가 극단까지 치달으면 문제가 생긴다. 김씨의 사례를 보자. 

 

김씨(40세)는 드디어 예쁜 아내와 결혼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내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절대 헤어지고 싶지 않다. 아내에게 부탁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이혼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달라고 했다. 아내는 각서를 써주었다.[각주:1]
하지만 살다보니 아내가 한명만 있으니 심심하다. 세상은 넓고 여자는 많다. 김씨는 다른 여자를 만났다. 참하고 마음에 들었다. 그는 그녀와 첩계약을 맺었다[각주:2]
두 여자를 먹여살리려니 돈이 부족했다. 김씨는 "도박으로 대박을 치겠노라" 꿈을 꿨다. 그는 지인을 찾아갔다. "내 실력알지? 나한테 500만원만 빌려주면 세배로 불려줄게"라며 돈을 꾸었다.[각주:3]
그러나 하우스에서 날이 새도록 카드를 뒤집던 중 경찰이 들이닥쳤다. "까닥하면 깜빵가게 생겼네." 덜덜 떨던 김씨는 하우스 종업원에게 부탁했다. "법정에서 내가 도박하지 않았다고 거짓증언해주면 내가 500만원 줄게."[각주:4]

 

계약의 자유는 가급적 보장하는 게 좋다. 그러나 브레이크가 없는 열차는 탈선하고 만다. 위 사례는 현실에서 실제 있었던 사례를 재구성한 것이다. 계약 내용을 제한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마음껏 위와 같은 계약을 체결해놓고, "내 계약의 자유를 침해하지 마라”며 바득바득 우길 거다. 이혼금지계약, 첩계약, 도박자금 대여계약, 거짓증언계약이 버젓이 살아움직이는데, 민법이 눈만 껌뻑이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래서 제103조가 버티고 있다. 동조는 법률행위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하면 무효라고 외친다.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하는 행위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는 않는다. 만약 민법이 반사회적인 계약 유형을 정해놓고 이런 계약은 허용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방식을 취한다면 법전의 종이가 부족할 거다. 인간의 상상력은 뛰어나서 별의별 반사회적 계약내용을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제103조는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선언으로 반사회적 법률행위를 일망타진해버린다.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가 무엇인지는 우리들이 해석과 토론을 통해 찾아나가야 한다. 지금까지 판결로 쌓인 사건들은 많다. 학자들은 이 판결들을 분류하여 나름의 법칙을 찾으려 노력한다. 가령 ①인륜에 반하는 내용, ②정의관념에 반하는 내용, ③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하는 내용과 같은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 기준들도 추상적이어서 크게 쓸모있지는 않아 보인다. 역시 만고불편의 진리, '케바케'다. 무엇이 반사회적 법률행위인지는 개별 사건을 만나며 고민하는 과정에서 불현듯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 부동산이중양도

 

부동산이중양도란 이미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기로 한 부동산을 다른 사람에게 또 양도하기로 약정하는 것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계약을 체결할 권리가 있으므로 부동산이중양도도 원칙적으로 유효하다. 

 

예컨대 A가 제1매수인에게 자기 부동산을 파는 계약을 맺었다. 이틀 후 제2매수인에게 같은 부동산을 파는 계약을 맺었다. 이런 이중계약도 아무 문제가 없다. 이때 A는 "제2매수인이 더 잘생겼다"는 이유로 부동산을 제2매수인에게 넘겨주어도 괜찮다. 대신 제1매수인에게 채무불이행책임을 져야 한다. 

 

그치만 예외가 있다. 대법원은 A가 이미 제1매수인에게 부동산을 매도하기로 계약한 사실을 제2매수인이 알면서도 매도를 요청하여 A의 배임행위에 적극가담하였다면 사회정의에 반하여 제2매매계약이 무효라고 한다.[각주:5] 

 

주의할 점이 있다. 제2매수인이 A가 이미 계약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제2매수인과 A가 맺은 계약이 무효로 되지는 않는 다는 것이다. 제2매수인이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나한테 팔라"고 요청하는 등 적극가담행위를 하여야 무효가 된다.[각주:6]

 

 

 

다. 동기의 불법

 

B는 살인마다. 취미로 사람을 죽인다. 그는 오늘도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도구점 상인 박씨를 찾아갔다. 칼을 구입했다. 

 

엄밀히 살펴보자. B가 체결한 칼 구입행위는 반사회적 법률행위가 아니다. 제103조는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할 때 그 법률행위가 무효라고 한다. B가 체결한 계약 내용은 그저 "B는 박씨에게서 칼을 건네받고, 그 대가로 대금을 준다"는 것이다. 계약 내용 자체는 멀쩡하다. 아무 사악한 기운이 없다. 

 

B가 그 칼로 살인을 하겠다는 건 그저 이 매매계약을 체결한 동기에 불과하다. 살인이란 동기는 '칼을 사고판다'는 계약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촉매제일 따름이다. 동기 자체가 매매계약의 내용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살인을 위해 칼을 구입하였는데 이걸 용인할 수는 없다. 동기는 의사표시의 구성요소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계약의 반사회성을 판단할 때 동기를 아예 고려하지 않는 것도 부적절하다. 따라서 대법원은 말한다. "법률행위의 동기가 반사회적인 경우 그 동기가 상대방에게 표시되거나 알려졌다면 반사회적 법률행위에 해당한다."[각주:7]

 

B가 단지 '나는 누굴 죽여야겠어'라고 속으로만 생각하고, 박씨에게 "칼 한 자루만 주세요"라고 했다고 하자. 이때는 칼 구입행위가 반사회적 법률행위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B가 "사람을 죽이기 위해 칼을 사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면, 반사회적 동기를 표시한 셈이다. 박씨가 그 동기를 알고 있었는데도 칼을 팔기로 하였다면 그 계약은 무효다. 

 

라. 불법원인급여 

 

제746조(불법원인급여) 불법의 원인으로 인하여 재산을 급여하거나 노무를 제공한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불법원인이 수익자에게만 있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사례] 사업가 C가 공무원을 찾아갔다. "내가 운영하는 사업체에 특혜를 주면 거액을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계약에 따르면 C는 '특혜를 청구할 권리’(?)를, 공무원은 '그 대가를 요구할 권리'를 갖는다. 그러나 계약 내용 자체가 반사회적이다. 제103조를 위반하였으니 무효이다. 당사자는 계약을 이행할 필요가 없다. 서로가 "계약을 이행하라"고 청구할 수도 없다. 

 

계약이 이행되었다고 하자. C는 공무원에게서 대규모 사업 특혜를 받았고, 그 대가로 거액의 자금을 주었다. C가 돈을 주었더라도 '뇌물계약'이 무효이므로, 공무원은 돈을 받을 법률상 원인이 없다. 부당이득이다. 원래대로라면 C가 "우리가 맺은 뇌물계약은 무효이니까, 저번에 제가 드린 돈 돌려주세요"라고 청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반사회적 행위를 저지른 자를 민법이 도와줄 수는 없다. 제746조를 보자. 불법적 원인으로 재산을 급여한 때는 그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 그러니 돈을 준 C는 그 돈을 돌려받을 수 없다. 이처럼 불법적 원인으로 주거나 받은 급부를 불법원인급여(不法原因給與)라 한다. 불법원인급여물에 대해서는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할 수 없다. 민법이 반사회적 행위자에게 가하는 응징이다.

 

제746조 단서를 보자. "불법원인이 수익자에게만 있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쉽게 말해, 돈 받은 사람만 나쁜 놈이라면 돈 준 사람은 "내가 준 돈 돌려달라"고 청구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런데 통설과 판례는 이 단서를 확대적용한다. "돈 준 사람, 즉 급여자에게 불법성이 있더라도, 급여자와 수익자의 불법성을 비교해 볼 때 수익자의 불법성이 현저히 큰 때에도 급여자가 반환청구를 할 수 있다"고 말이다. 이런 해석을 이른바 '불법성 비교론'이라 부른다. 

 

[판례] 대법원 1997.10.24. 선고 95다49530,49547 판결

민법 제746조에 의하면 급여가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고 급여자에게 불법 원인이 있는 경우에는 수익자에게 불법 원인이 있는지의 여부나 수익자의 불법 원인의 정도 내지 불법성이 급여자의 그것보다 큰지의 여부를 막론하고 급여자는 그 불법원인급여의 반환을 구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나, 수익자의 불법성이 급여자의 그것보다 현저히 크고 그에 비하면 급여자의 불법성은 미약한 경우에도 급여자의 반환 청구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공평에 반하고 신의성실의 원칙에도 어긋나므로 이러한 경우에는 민법 제746조 본문의 적용이 배제되어 급여자의 반환 청구는 허용된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다.

 

현실에서 돈 받은 사람만 나쁜 놈인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급여자와 수익자 둘다 나쁜 놈이라고 할지라도, 수익자가 훨씬 어마어마하게 나쁜 놈인데 급여자가 반환청구를 못한다면 그거야 말로 정의에 반한다. 

 

가령 C는 내기바둑을 뒀다. 자꾸 졌다. 돈을 계속 잃었다. 이번이 마지막 승부다. C는 자기의 유일한 재산인 집을 걸었다. 이번 결과도 C의 패배였다. C는 상대에게 집마저 넘겼다. 빈털털이가 됐다. 그런데 이럴수가! 뒤늦게 알고보니 C는 사기바둑에 걸려든 것이었다. 상대는 급수를 속이기도 했고, 계가할 때 미리 준비한 바둑알로 추가점수를 계산하기도 했다. C가 간혹 승리할 때면 바둑판을 쓸어버려 계산을 할 수 없게 했다. 그러면서도 C의 직장까지 찾아와 내기바둑을 둘 것을 종용하였던 것이다. 

 

대법원은 C가 내기바둑을 하고 도박 채무 변제를 위해 주택을 양도하기로 한 것은 반사회적 계약으로 무효라고 보았다. 그러나 상대방이 내기바둑을 계획적으로 유인하고, 사기적인 행태로 내기바둑을 진행하였으며, 도박자금도 폭리적으로 갈취하였으므로, 단지 수동적으로 도박에 가담한 C의 불법성보다 상대의 불법성이 훨씬 크다고 봤다. 그래서 C는 상대에게 주택의 반환을 구할 수 있다고 했다. 불법성 비교론이 C를 살렸다.[각주:8]

 

 

 

2. 불공정한 법률행위

 

가. 불공정한 법률행위란 무엇인가

 

제104조(불공정한 법률행위) 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으로 인하여 현저하게 공정을 잃은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

 

민법 제104조는 불공정한 법률행위가 무효라고 한다. 불공정한 법률행위는 반사회적 법률행위의 한 형태다. 서로는 '형제사이'라고 볼 수 있다. 

 

불공정한 법률행위란 무엇이냐. 제104조를 찬찬히 뜯어보자. ① 첫째, 법률행위가 현저하게 불공정해야 한다. 이는 급부와 반대급부가 현저히 불균형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법원은 불공정한 법률행위에 해당하는지는 법률행위시를 기준으로 판단한다고 했다.[각주:9]둘째, 피해자가 궁박, 경솔, 무경험이라는 특수한 사정에 있어야 한다. 

 

나아가 판례는 한가지 요건을 더 추가한다. 폭리자는 "피해자가 궁박·경솔, 무경험 상태에 있다는 사정을 알면서 이를 이용하려는 의사"가 있어야 한다. 피해자가 궁박·경솔, 무경험 상태에서 현저히 불공정한 계약을 맺었더라도, 상대방에게 그 사정을 이용하려는 주관적 의사가 없었다면 불공정한 법률행위가 되지 않는다.[각주:10]  

 

D는 평당 10만원 정도에 불과한 주거지역 땅을, 상업지역으로 잘못 알고 평당 35만원을 주고 구입하였다. D는 "내가 경솔했고 경험도 없어 현저히 불공정한 계약을 체결하고 말았다. 이 계약은 무효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땅을 시가보다 비싸게 샀더라도, 상대방이 D의 경솔함이나 무경험을 알고 이를 이용하여 계약을 체결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불공정한 법률행위가 되지는 않는다.'고 했다.[각주:11]

 

판례가 주관적 요건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견해가 갈린다. 물론 반대하는 사람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사법부는 법을 해석하는 기관이다. 제104조는 '상대방의 사정을 알고도 이용하려는 의사가 있어야 무효가 된다'고 규정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상대방에게 이러한 주관적 요건을 요구한다. 어떻게 보면 사법부의 월권행위다. 

 

그러나 제104조는 열악한 상태에 처한 피해자를 등쳐먹어 폭리를 취하는 것이 반사회적이기에 규제하는 것이다. 단순히 급부와 반대급부의 차이가 크다는 것만으로 무효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폭리자에게 비난가능성이 없는데도, 피해자의 사정만으로 계약을 무효로 만드는 건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대법원이 폭리행위의 악의가 있어야만 반사회적 법률행위가 된다고 보는 것은 법문을 합리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 불공정한 법률행위에 해당하면 어떻게 되는가

 

불공정한 법률행위는 무효다. 계약을 이행할 필요가 없다. 절대적 무효이고, 추인으로 유효하게 만들 수도 없다.[각주:12] 이미 이행한 급부가 있다면 되돌려 받을 수 있을까? 불공정한 법률행위에서는 수익자에게만 불법성이 있다. 제746조 단서를 적용해야 한다. 급여자는 계약에 따라 자기가 급부한 것이 있다면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 

 

나아가 불공정한 법률행위라 할지라도 무효행위 전환 법리에 따라 일부가 유효할 수 있다. 대법원도 무효행위 전환 법리를 적용한 사안이 있다. 매매대금이 과다하여 불공정한 법률행위에 해당하였는데, 선행 조정절차에서 제시된 금액을 기준으로 당사자의 가정적 의사를 추론하여 그 매매대금을 '적정한 금액'으로 감액하여 매매계약이 유효하다고 인정했다.[각주:13] 

  1. 대법원 1969. 8. 19. 선고 69므18 판결 [본문으로]
  2. 대법원 1960. 9. 29. 선고 4293민상302 판결, 대법원 1967. 10. 6. 선고 67다1134 판결 [본문으로]
  3. 대법원 1973. 5. 22. 선고 72다2249 판결 [본문으로]
  4. 대법원 2001. 4. 24. 선고 2000다71999 판결 [본문으로]
  5. 대법원 1970. 10. 23. 선고 70다2038 판결, 대법원 1975. 11. 25. 선고 75다1311 판결, 대법원 1977. 1. 11. 선고 76다2083 판결 [본문으로]
  6. 대법원 1994. 3. 11. 선고 93다55289 판결 [본문으로]
  7. 대법원 1992. 11. 27. 선고 92다7719 판결 [본문으로]
  8. 대법원 1997.10.24. 선고 95다49530,49547 판결 [본문으로]
  9. 대법원 2013. 9. 26. 선고 2011다53683 판결 [본문으로]
  10. 대법원 1986. 12. 23. 86다카536 판결 [본문으로]
  11. 대법원 1988. 9. 13 선고 86다카563 판결 참조 [본문으로]
  12. 대법원 1994. 6. 24. 선고 94다10900 판결 [본문으로]
  13. 대법원 2010. 7. 15. 선고 2009다50308 판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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