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판례정리

[민법판례정리] 횡령 또는 편취 금전에 의한 부당이득

칼린츠 2020. 12. 16.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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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판례정리] 횡령 또는 편취 금전에 의한 부당이득 - 대법원 2003. 6. 13. 선고 2003다8862 판결, 대법원 2008. 9. 11. 선고 2006다46278 판결

 

Ⅰ. 대상판결 

 

1. 대법원 2003. 6. 13. 선고 2003다8862 판결(이하 '제1대상판결'이라고 한다)

 

M은 X 공기업 출납담당 직원이다. 증권투자에 실패하여 누나 Y에게 거액의 빚을 졌다. 그래서 자신이 관리하던 X의 계좌에서 누나 Y계좌로 89,495만 원을 직접 계좌이체시키는 방법으로 횡령하였다. X는 Y에 대하여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하였다. 원심은 이를 기각했고,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 

 

부당이득제도는 이득자의 재산상 이득이 법률상 원인을 결여하는 경우에 공평·정의의 이념에 근거하여 이득자에게 그 반환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인바, 채무자가 피해자로부터 횡령한 금전을 그대로 채권자에 대한 채무변제에 사용하는 경우 피해자의 손실과 채권자의 이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음이 명백하고, 한편 채무자가 횡령한 금전으로 자신의 채권자에 대한 채무를 변제하는 경우 채권자가 그 변제를 수령함에 있어 악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채권자의 금전 취득은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 법률상 원인을 결여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나, 채권자가 그 변제를 수령함에 있어 단순히 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그 변제는 유효하고 채권자의 금전 취득이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 법률상 원인을 결여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대법원은 Y가 M과 가까운 사이라는 것만으로 M이 횡령한 사실을 알았다고 단정하기에 부족하다면서, Y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X의 상고를 기각했다. 

 

 

 

2. 대법원 2008. 9. 11. 선고 2006다46278 판결(이하 '제2대상판결'이라고 한다)

 

X는 M 재건축조합의 조합원이고, Y는 M과 재건축사업공사계약을 체결한 건설회사다. M은 X에게 "추가부담금 부담에 관한 총회 결의가 있었으니 추가부담금을 Y 계좌로 납부하라"는 통지를 했다. 이에 따라 X는 Y의 계좌로 추가부담금을 납부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추가부담금 부담 관련 총회 결의는 없었다. 

 

 

원심은 Y가 M의 사무실 바로 옆에 현장 사무실을 두고 직원들을 상주시키면서 사실상 M의 모든 업무를 대행하여 처리하여 온 점 등을 근거로 Y가 총회 결의의 부존재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고 보아 X의 Y에 대한 부당이득 반환청구를 인용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 

 

계약의 일방당사자가 계약상대방의 지시 등으로 급부과정을 단축하여 계약상대방과 또 다른 계약관계를 맺고 있는 제3자에게 직접 급부한 경우(이른바 삼각관계에서의 급부가 이루어진 경우), 그 급부로써 급부를 한 계약당사자의 상대방에 대한 급부가 이루어질 뿐 아니라 그 상대방의 제3자에 대한 급부도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계약의 일방당사자는 제3자를 상대로 법률상 원인 없이 급부를 수령하였다는 이유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할 수 없다. 이러한 경우에 계약의 일방당사자가 계약상대방에 대하여 급부를 한 원인관계인 법률관계에 무효 등의 흠이 있다는 이유로 제3자를 상대로 직접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할 수 있다고 보면 자기 책임하에 체결된 계약에 따른 위험부담을 제3자에게 전가하는 것이 되어 계약법의 원리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수익자인 제3자가 계약상대방에 대하여 가지는 항변권 등을 침해하게 되어 부당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삼각관계에서의 급부가 이루어진 경우에, 제3자가 급부를 수령함에 있어 계약의 일방당사자가 계약상대방에 대하여 급부를 한 원인관계인 법률관계에 무효 등의 흠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할지라도 계약의 일방당사자는 제3자를 상대로 법률상 원인 없이 급부를 수령하였다는 이유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할 수 없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X가 Y에게 한 급부는 X의 M에 대한 추가부담금 납부의무 이행으로 이루어졌고, 동시에 M의 Y에 대한 공사대금 지급채무의 이행으로도 이루어졌는데, 다만 M의 지시 등으로 급부과정을 단축하여 X가 Y에게 직접 급부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사안에서 대법원은 Y는 M과의 재건축사업공사계약에 따른 공사대금 변제로 금원을 수령한 것이므로 유효한 법률상 원인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Y가 X로부터 급부를 수령할 때 추가부담금 관련 총회가 없거나 무효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X는 Y를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내용을 덧붙인다. 

 

한편, 이득자가 손실자의 부당한 출연 과정을 알고 있었거나 잘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그 이득이 손실자에 대한 관계에서 법률상 원인이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취지로 원심에서 들고 있는 대법원 2003. 6. 13. 선고 2003다8862 판결은 손실자의 권리가 객관적으로 침해당하였을 때 그 대가의 반환을 구하는 경우(이른바 침해부당이득관계)에 관하여 적용되는 것으로서, 손실자가 스스로 이행한 급부의 청산을 구하는 경우(이른바 급부부당이득관계)에 관련된 이 사건과는 사안을 달리하는 것이므로 이 사건에 원용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Ⅱ. 검토

 

1.  제1대상판결에 나오는 '악의 또는 중대한 과실' 요건 

 

제1대상판결에서 M은 X의 돈을 횡령하여 자신의 채무를 변제했다. 대법원은 그 변제를 수령한 채권자가 악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에만 그 돈이 X에 대한 관계에서 부당이득이 된다고 했다. 참 뜬금없다. 도대체 대법원은 왜 "악의 또는 중대한 과실"을 따지고 있는 거냐. 대체 이 기준은 어디서 온 거냐. 

 

어디긴 어디겠나. 바다건너 일본에서 왔다. (역시 가장 일본적인 것이 가장 한국적인 것?) 우리나라 대법원 판례를 이해하려면 1910년대 일본까지 거슬러올라가야 한다. 

 

 

M이 X에게서 돈을 편취하여 Y에 대한 채무를 갚은 경우, X가 Y에게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전전(戰前)의 일본 판례는 부당이득에서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요구했다.

 

만약 M이 편취한 돈의 소유권을 취득하였으면 Y의 이득은 M이 소유한 돈에서 유래하므로 X의 손실과 Y의 이득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 반면, M이 돈의 소유권을 취득하지 않은 채 X 소유에서 곧바로 Y의 소유로 이전되었다면 인과관계가 있다고 봤다. 물론 인과관계가 있다고 무조건 부당이득이 성립하지는 않을 터. 대심원은 이때 Y가 일본민법 제192조 선의취득에 의해 금전소유권을 취득한다면 유효한 변제로 Y의 채권은 소멸하고 부당이득반환의무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다. [각주:1]

 

그러나 1930년대부터 직접적 인과관계를 요구하는 일본 판례에 대한 학계의 비판이 시작된다. 편취된 금전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귀속하느냐와 같은 형식논리로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수익과 손실 사이에는 '사회관념상의 인과관계'가 있으면 충분하다는 거다. 

 

더구나 전후에는 서서히 "금전은 이를 점유하는 자에게 속한다"는 원칙이 자리잡는다. 이제 금전의 점유자가 곧 소유자가 되고, 금전의 선의취득은 인정할 여지가 없어진다. 편취된 금전으로 인한 부당이득 사례에서도 더이상 선의취득 조항을 적용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 판례의 문구가 조금 달라진다. Y의 돈을 횡령하고 있던 M은 X의 돈을 횡령하여 Y에게 반환했다. 여기서 日最判 1974(昭 49). 9. 26. 판결은 M이 횡령한 금전의 소유권을 취득하였더라도 사회통념상 X의 금전으로 Y의 이익을 도모하였다고 인정되는 정도의 연락이 있었다면 부당이득 성립에 필요한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직접적 인과관계를 요구하던 태도를 벗어난 것이다.

 

다만, "Y가 M으로부터 금전을 수령할 때 악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Y의 금전 취득은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서 법률상 원인이 없고 부당이득이 된다"고 봤다.[각주:2] 드디어 찾았다! 악의 또는 중대한 과실을 일본 판례가 요구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대법원 판례는 일본 판례를 그대로 옮겨적은 것이다. 

 

일본 판례가 이렇게 본 것은 일본 민법학계의 슈퍼스타, 아처영 교수님의 견해를 받아들인 것이다. 아처영 교수님은 편취한 금전에 대해서 원래는 선의취득 규정을 적용할 수 없지만, "부당이득에 있어서는 재산의 귀속을 실질적으로 고찰하고 법률상 원인을 공평의 이념에 따라 결정하기 위해 변제의 유효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선의취득 규정을 유추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그래서 Y가 악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라면 수령한 금전에 법률상 원인이 없고, Y는 X에 대해 반환의무를 진다고 주장했다.[각주:3]

 

 

 

2. 제1대상판결의 타당성 검토 

 

제1대상판결은 채무자가 횡령한 돈으로 채무를 변제하는 경우 채권자에게 악의나 중대한 과실이 있으면 채권자의 금전 취득은 피해자에 대한 관계에서 법률상 원인을 결여한 것이라 했다. 이는 일본 판례를 그대로 베낀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물론이고 우리 나라에서도 이제 금전은 가치의 표상일 뿐이다. 그 점유가 있는 곳에 소유도 있다. 변제 수령자의 악의 또는 중대한 과실 유무를 기준으로 법률상 원인이 있는지를 판단해야할 이유가 없다. 

 

양창수 교수님도 "기본적으로 Y가 M에 대하여 채권을 가지고 있는 한 X가 Y에 대하여 부당이득을 이유로 책임을 물을 수는 없으며, 이는 Y가 악의인 경우에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각주:4]

 

아처영 교수님은 말로는 금전에 선의취득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실질적으로 선의취득 규정을 적용하는 것과 동일한 결론에 이른다. 물론 선의취득 규정을 직접 적용할 수는 없으니, 금전의 가치소유권과 물소유권을 분리하는 논리를 부당이득법의 '법률상 원인' 요건을 해석할 때 억지로 끼워넣고 있다.[각주:5] 아처영은 "법률상의 이념에서 생기는 공평의 이상", "부당이득제도의 취지"를 근거로 선의취득 규정을 유추해야한다고 하는데, 표현만 화려하지 뭔소린지 모르겠다. 논거가 부족하다.

 

제1대상판결은 부당하다. 일본 판례를 별 생각없이 그대로 직수입했다. 

 

 

3. 제2대상판결은 침해부당이득관계에서만 특수한 법리를 적용해야한다고 했는데....

 

제2대상판결은, 제1대상판결은 침해부당이득관계가 문제되지만 제2대상판결은 급부부당이득관계가 문제되므로, 동일한 법리를 적용할 수 없다고 했다. 제2대상판결에서는 변제 수령자의 악의, 중과실을 따지지 않고 부당이득반환의무가 부정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이재욱 판사님은 침해부당이득 관점에서 보더라도 제1대상판결에서 X의 Y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부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제2대상판결과 달리, 제1대상판결에서 M은 X의 의사에 기하지 않고 돈을 취득했다. 그러나 금전의 점유를 넘기면 소유권도 이전한다. X가 M의 위법한 편취로 금전의 점유를 상실하면 동시에 금전의 소유권도 상실한다. Y가 금전을 취득하기 전부터 이미 X는 그 소유자가 아니므로, Y가 이를 침해하여 이득을 얻었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침해부당이득 관점에서도 Y의 부당이득반환의무는 성립하지 않는다.[각주:6]

 

반면, 정태륜 교수님은 제1대상판결에서 '계좌이체'라는 방법으로 이득이 X에서 Y로 넘어갔으므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허용해야 한다고 본다. 만약 M이 X의 금전을 일단 취득한 다음 Y에게 변제한다면, 이득이 일단 중간자 M에게 귀속된다. 그러나 M이 X의 계좌에 있는 돈을 Y에게 이체하도록 한다면, X의 예금채권이 곧장 Y에게 이전한다. 이득이 중간자 M에게 귀속된 적 없는 상태에서 직접 X에게서 Y로 넘어간다. 

 

정태륜 교수님은 계좌이체로 예금채권이 넘어가면 이처럼 Y는 X의 손실로 직접 이득을 취득하게 된다면서, 이때는 Y가 자신과 M 사이의 계약을 이유로 그 이득이 '법률상의 원인'이 있음을 주장할 수는 없다고 한다.[각주:7] Y가 X한테서 곧장 이득을 취득해놓고서는, 엉뚱하게 제3자인 M에 대한 채권을 들먹이면서 법률상 원인이 있다고 주장할 수 는 없다는 소리다. 정 교수님 견해에 따르면 Y는 자신의 주관적 사정과는 상관 없이 부당이득반환의무를 부담한다. 

 

  1. 정태륜 / 횡령한 금전의 부당이득 / 민사판례연구 27 / 민사판례연구회 / 박영사 / 2005.02.28 [본문으로]
  2. 양창수, 금전의 부당이득으로 인한 반환의무, 서울대학교 법학 제43권 제4호, 15면 [본문으로]
  3. 이재욱, 편취금전에 의한 변제와 부당이득, 민사법연구 제18권 2010. 12., 197면 [본문으로]
  4. 양창수 금전의 부당이득으로 인한 반환의무, 서울대학교 법학 제43권 제4호, 22면 [본문으로]
  5. 정태륜 / 횡령한 금전의 부당이득 / 민사판례연구 27 / 민사판례연구회 / 박영사 / 2005.02.28 [본문으로]
  6. 재욱, 편취금전에 의한 변제와 부당이득, 민사법연구 제18권 2010. 12., 202면 [본문으로]
  7. 정태륜 / 횡령한 금전의 부당이득 / 민사판례연구 27 / 민사판례연구회 / 박영사 / 2005.02.2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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