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판례정리

[민법판례정리] 채권자대위에 의한 처분금지효가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한 계약해제에도 미치는지

칼린츠 2020. 12. 2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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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판례정리] 채권자대위에 의한 처분금지효가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한 계약해제에도 미치는지 - 대법원 2012. 5. 17. 선고 2011다87235 판결

 

1. 사실관계와 원심 판결 

 

가. 사실관계 

 

원고는 2007. 12. 10. A에게 4억원을 빌려주면서 그 이자조로 A가 나중에 취득할 토지를 2008. 2. 28.까지 A에게서 이전받기로 약정했다. 

 

A는 2007. 12. 12.  피고에게서 토지를 대금 15억원에 매수하기로 하고, 양도소득세 상당액도 피고에게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원고는 피고와 A를 상대로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였다. ① 원고는 A의 채권자로서 A를 대위하여 피고를 상대로 A에게 토지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하라고, ② A를 상대로는 원고 자신에게 토지의 소유권등기절차를 이행하라고 청구하였다. 

 

이 사건 소장은 2009. 5. 1. A에게, 2009. 6. 17. 피고에게 송달됐다. 

 

그런데 A는 피고에게 양도소득세 상당액을 지급하지 않았고, 피고는 A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매매계약을 해제하였다. 매매계약은 2009. 8. 31. 실효됐다. 

 

피고는 원고에게 이미 매매계약이 해제되었으니 자신은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원고는 그 매매계약해제는 채권자대위권에 기하여 자신이 대위행사 하는 피대위채권을 처분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민법 제405조 제2항에 따라 자신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나. 원심 판결 

 

원심은 이 사건 소 제기 이후 A의 채무불이행으로 매매계약이 실효되었지만, 이 사건 소가 제기되기 전부터 A는 대금지급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이를 채무자인 A의 '처분행위'로 평가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따라 피고에 대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1심 판결이 정당하다고 했다. 원고는 불복하여 상고했다. 

 

 

 

2. 대상판결 요지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채무자가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매매계약을 해제되도록 한 것이 원칙적으로 민법 제405조 제2항에서 말하는 '처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민법 제405조 제2항은 ‘채무자가 채권자대위권행사의 통지를 받은 후에는 그 권리를 처분하여도 이로써 채권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 조항의 취지는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대위권 행사사실을 통지하거나 채무자가 채권자의 대위권 행사사실을 안 후에 채무자에게 대위의 목적인 권리의 양도나 포기 등 처분행위를 허용할 경우 채권자에 의한 대위권행사를 방해하는 것이 되므로 이를 금지하는 데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채무자의 채무불이행 사실 자체만으로는 권리변동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아 이를 채무자가 제3채무자에 대하여 가지는 채권을 소멸시키는 적극적인 행위로 파악할 수 없는 점, 더구나 법정해제는 채무자의 객관적 채무불이행에 대한 제3채무자의 정당한 법적 대응인 점, 채권이 압류·가압류된 경우에도 압류 또는 가압류된 채권의 발생원인이 된 기본계약의 해제가 인정되는 것과 균형을 이룰 필요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채무자가 자신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매매계약이 해제되도록 한 것을 두고 민법 제405조 제2항에서 말하는 ‘처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채무자가 채권자대위권행사의 통지를 받은 후에 채무를 불이행함으로써 통지 전에 체결된 약정에 따라 매매계약이 자동적으로 해제되거나, 채권자대위권행사의 통지를 받은 후에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제3채무자가 매매계약을 해제한 경우 제3채무자는 그 계약해제로써 대위권을 행사하는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다만 형식적으로는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한 계약해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채무자와 제3채무자 사이의 합의에 따라 계약을 해제한 것으로 볼 수 있거나, 채무자와 제3채무자가 단지 대위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하는 계약해제인 것처럼 외관을 갖춘 것이라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그 피대위채권을 처분한 것으로 보아 제3채무자는 그 계약해제로써 대위권을 행사하는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이와 달리 채무자가 채권자대위권 행사사실을 통지받은 후에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매매계약이 해제되도록 한 것이 언제나 채무자가 그 피대위채권을 처분하는 것에 해당하므로 이를 가지고 대위권을 행사하는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고, 그 결과 제3채무자 또한 그 계약해제로써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는 취지의 대법원 2003. 1. 10. 선고 2000다27343 판결은 이 판결의 견해와 저촉되는 한도에서 변경하기로 한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실질적 합의 해제가 있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정을 발견할 수 없으므로, 원심이 매매계약이 실효된 것을 채무자가 채권자대위권 행사의 통지를 받은 후 제3채무자인 피고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을 처분한 것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고 하였다. 

 

 

 

3. 검 토 

 

가. 쟁점과 대상판결 내용

 

제405조(채권자대위권행사의 통지) ① 채권자가 전조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보전행위 이외의 권리를 행사한 때에는 채무자에게 통지하여야 한다. ②채무자가 전항의 통지를 받은 후에는 그 권리를 처분하여도 이로써 채권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민법 제405조 제2항은 채무자가 채권자대위권 행사의 통지를 받은 후에는 그 권리를 처분하여도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채권자가 대위권을 행사하는데, 채무자가 덜컥 권리를 갖다 버리면 어떡해? 민법 제405조 제2항은 채무자가 대위권 행사를 방해하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정이다. 

 

제405조 제2항의 글자 자체는 채무자가 대위권 행사를 '통지받은 후'에 처분해도 대항할 수 없다고 한다. 제405조 제2항을 적용하려면 꼭 채권자가 '통지'를 해야할까? 학설상 논란이 있었다. 대법원은 채권자가 통지를 하지 않았어도 적용한다. 채무자가 어떤 이유로든 대위권 행사사실을 알았다면 권리를 처분하여도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각주:1] 이미 대위권 행사사실을 알고 있는 채무자라면 보호해줄 이유가 없으니 당연한 판결이다. 

 

한편, 제405조 제2항에 따라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는 '처분행위'란 무얼 말하는 걸까? 대법원은 이미 채무자와 제3채무자가 계약을 '합의해제'함으로써 채권자대위권의 객체인 피대위채권을 소멸시켰다면, 피대위채권을 처분한 것이라고 하여 이로써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했다.[각주:2]

 

그렇다면 법정해제는 어떨까? 채무자가 채무불이행을 했고, 제3채무자가 계약을 해제하도록 만들어 피대위채권이 없어졌다. 이것도 채무자가 권리를 처분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과거 대법원은 이것도 처분행위라 보았다. 그래서 제3채무자가 법정해제되었다는 사실을 대위권을 행사하는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했다.[각주:3]

 

그러나 본 판결에서 대법원은 기존 입장을 변경했다. 아주 180도가 달라져버렸다. 사실 기존 판례에 대한 학계의 비판이 뜨거웠다. (그 선봉장이 양창수 교수님이었다. 참고로 본 판결을 할 때 대법관 중 한명이었다.) 살짝 데인 대법원이 그 비판을 받아들인 것이다. 

 

대법원은 채무자가 채무불이행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는 권리가 변동되지 않는다, 법정해제는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에 대한 제3채무자의 정당한 법적 대응이다,는 내용을 지적했다. 그래서 채무자가 채무불이행을 하여 계약해제를 당한 것만으로는 권리를 처분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고로, 제3채무자는 대위채권자에게 해제사실을 대항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예외를 인정했다. 형식적으로는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한 계약해제한 것이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채무자와 제3채무자 사이의 합의에 따라 계약을 해제한 것으로 볼 수 있거나, 채무자와 제3채무자가 단지 대위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하는 계약해제인 것처럼 외관을 갖춘 것이라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채무자가 권리를 처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이 경우에는 제3채무자가 그 계약해제로써 대위권을 행사하는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했다. 

 

 

 

나. 견해대립

 

채무자가 자신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매매계약이 해제되도록 한 것이 제405조 제2항의 '처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견해

 

양창수 교수님은 대법관으로 들어가기 전 이미 관련 내용에 대해 논문을 쓰셨다. 당신이 연구한 주제를 판결문으로 쓰신 셈. 

 

양 교수님은 만약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않아 제3채무자로 하여금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해제할 수 있게 하는 것까지 채무자의 '처분'으로 본다면, 처분개념을 왜곡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해제계약과 법정해제는 그 법률효과가 비슷할지 모르나 중대한 차이가 있다. 해제계약은 채무자의 의사행위를 하나의 요소로 하여 채권관계를 소멸시키는 것이고, 법정해제는 채무자의 객관적 채무불이행에 대한 제3채무자의 정당한 법적 대응이다. 그러므로 채무자가 제3채무자에게서 법정해제를 당한 것까지 처분으로 본다면 법개념의 부당한 확장이다. 대법원은 이미 피대위채권의 소멸을 가져오는 변제의 수령은 여기서 말하는 '처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각주:4]

 

더구나 채권을 가압류 또는 압류한 경우에는 그 채권의 발생원인인 법률관계에 대한 채무자와 제3채무자의 처분까지 구속되는 것은 아니므로 채무자와 제3채무자는 기본적 계약관계를 해제할 수 있다.[각주:5] 채권자가 피대위채권에 대해 가압류나 압류를 했을 때는 제3채무자가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데, 채권자대위권을 행사한 경우에는 제3채무자가 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 이건 부당하다. 채권자가 집행권원에 기하여 정식의 강제집행절차를 통해 채무자의 채권을 압류하는 것보다도 더욱 강력한 효력을 채권자대위에 인정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각주:6]

 

채무자가 자신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매매계약이 해제되도록 한 것이 제405조 제2항의 '처분'에는 해당한다는 견해

 

오창수 교수님은 채권자대위소송이 계속중임에도 채무자와 제3채무자간의 계약 해제를 인정하면 피대위채권의 처분을 제한하는 민법 제405조 제2항의 규정한 반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채권자대위제도의 목적달성을 방해하는 행위로 채권자대위권을 행사한 채권자에게는 대항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처분'이라는 법개념을 다소 확장하더라도 사안의 해결을 위한 구체적 타당성이 있는 해석이라고 한다.[각주:7]

 

 

 

⑶ 내 생각

 

뭐, 내 생각이 중요하겠냐만 그냥 몇 글자 적어본다. 엣헴. 물론 제405조 제2항의 '처분'이 뭘 의미하는지 정확하진 않다. 어쨌든 민법상 처분행위가 되려면 처분권자의 의사에 기초하여 권리를 변동시키는 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각주:8]

 

만약 채무자가 합의로 계약을 해제하였다고 하자. 이것은 채무자가 청약 또는 승낙의 의사표시로 채권을 없애버리는 행위다. 그러니 그가 권리를 처분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채무자가 단지 채무를 불이행하였다는 것만으로는 권리가 소멸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채무자가 법정해제를 당하였기로서니, 이걸 어떻게 채무자가 권리를 '처분'했다고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말이 안된다. 

 

게다가 채권자대위권은 절대적 권리가 아니다. 채권자는 이 권리를 행사하여 채무자와 제3채무자의 재산관계에 개입한다. 막무가내로 채권자만 보호해줄 수는 없다. 개입하는 쪽과 개입받는 쪽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므로 둘 사이를 적절히 조정해야 한다.

 

특히, 제3채무자는 채권자와 직접 채권관계를 맺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남남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채권자가 대위권을 행사한다는 우연한 사정만으로 제3채무자에게 "무조건 너가 양보해"라고 할 수는 없다.[각주:9] 그러면 제3채무자가 너무 불쌍하잖아.

 

그러므로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않아 제3채무자한테서 해제당한 것까지 '처분'이라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너무 나갔다. 민법상 처분개념을 무리하게 확장한 것이다. 제3채무자의 이익도 너무 크게 훼손한다.

 

대상판결도 "법정해제는 채무자의 객관적 채무불이행에 대한 제3채무자의 정당한 법적 대응이다"라고 선언한다. 아주 심금을 울린다. 제3채무자는 채권자에게 "나 채무자가 하도 채무를 이행하지 않길래 계약을 해제했어요"라고 당당히 대항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대상판결이 처분을 실질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도 적절하다. 채권자가 채권자대위소송을 하는 경우 채무자는 자신의 권리를 없애버리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는 합의해제로 권리를 없애버리고 있으면서, 마치 자신이 법정해제를 당한 것처럼 외관만 만들어낼 수도 있는 것이다. 대상판결은 '껍질'이 채무자가 채무불이행을 하여 법정해제를 당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 '알맹이'가 채무자가 합의해제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 제405조 제2항에서 말하는 '처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대법관 형님덜 아주 꼼꼼하시다.

  1. 대법원 2003. 1. 10. 선고 2000다27343 판결 등 [본문으로]
  2. 대법원 2007. 6. 28. 선고 2006다85921 판결 [본문으로]
  3. 대법원 2003. 1. 10. 선고 2000다27343 판결 [본문으로]
  4. 대법원 1991. 4. 12. 선고 90다9407 판결 [본문으로]
  5. 2004. 4. 11. 선고 99다51685 판결 [본문으로]
  6. 양창수, 채권자대위에 의한 처분금지효가 제3채무자가 채무자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매매계약을 해제하는 것에도 미치는가?, 민법연구 제7권, 2003 [본문으로]
  7. 채권자대위소송의 실천적 의미 : 당사자의 지위 및 소송요건을 중심으로, 법과 정책 제16권 제1호 2010. 2. 147~148면 [본문으로]
  8. 이은영, 채권자대위권행사에 의한 처분금지효에서 '처분'의 의미, 경북대학교 법학연구원 법학논고 제40집, 2012. 10. 457면 [본문으로]
  9. 심승우, 채권자대위권 행사로 제한되는 채무자의 처분행위, 민사판례연구 2014. 394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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