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판례정리

[민법판례정리] 채권양도금지특약에 반하는 채권양도의 효력 - 대법원 2019. 12. 19. 선고 2016다24284 전원합의체

칼린츠 2022. 5. 26.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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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관계

 

원고와 피고는 2009. 5. 27. 건축공사 도급계약을 체결했다. 도급계약에는 '원고의 공사대금청구권을 제3자에게 양도하지 못한다'는 채권양도 금지특약이 있었다. 

 

그러나 원고는 2010. 10. 15. A에게 공사대금채권을 양도하고, 양도사실도 통지했다. 

 

이후 원고가 피고에게 공사대금 지급을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사실은 원고가 회생절차에 들어갔고 원고의 파산관재인이 소를 제기한 것이나, 그냥 간략하게 원고가 소송을 제기하였다고 정리한다.)

 

 

 

 

2. 원심의 판단(서울고등법원 2016. 4. 7. 선고 2015나4353, 2015나4360 판결)

 

원심 법원은 원고가 피고의 동의 없이 공사대금채권을 양도하였지만, 그 양도는 채권양도금지특약을 위반한 것이어서 효력이 없다고 했다. 공사대금채권은 여전히 원고에게 있으므로 피고는 그 돈을 원고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원심은 피고가 양도금지특약을 맺었으니 양수인에게 채권양도 효력을 부인할 수 있는데, 본래 채권자인 원고가 채권액 지급을 구하자 입장을 바꾸어 채권이 이전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금반언 내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피고는 상고했다. 

 

 

 

3. 대법원의 판단

 

가. 다수의견 - 이른바 '물권적 효력설'

 

(가) 채권은 양도할 수 있다. 그러나 채권의 성질이 양도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민법 제449조 제1항). 그리고 채권은 당사자가 반대의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는 양도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의사표시로써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민법 제449조 제2항).

이처럼 당사자가 양도를 반대하는 의사를 표시(이하 ‘양도금지특약’이라고 한다)한 경우 채권은 양도성을 상실한다. 양도금지특약을 위반하여 채권을 제3자에게 양도한 경우에 채권양수인이 양도금지특약이 있음을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하였다면 채권 이전의 효과가 생기지 아니한다. 반대로 양수인이 중대한 과실 없이 양도금지특약의 존재를 알지 못하였다면 채권양도는 유효하게 되어 채무자는 양수인에게 양도금지특약을 가지고 채무 이행을 거절할 수 없다. 채권양수인의 악의 내지 중과실은 양도금지특약으로 양수인에게 대항하려는 자가 주장·증명하여야 한다.

 

(나) 양도금지특약을 위반하여 이루어진 채권양도는 원칙적으로 효력이 없다는 것이 통설이고, 이와 견해를 같이하는 상당수의 대법원판결이 선고되어 재판실무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판례의 법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 ① 민법 제449조 제2항 본문이 당사자가 양도를 반대하는 의사를 표시한 경우 채권을 양도하지 못한다고 규정한 것은 양도금지특약을 위반한 채권양도의 효력을 부정하는 의미라고 해석하여야 한다. 법조문에서 ‘양도하지 못한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이를 ‘양도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 나아가 민법 제449조 제2항 단서는 본문에 의하여 양도금지특약을 위반하여 이루어진 채권양도가 무효로 됨을 전제로 하는 규정이다. 따라서 양도금지특약을 위반한 채권양도는 당연히 무효이지만 거래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하여 선의의 제3자에게 무효를 주장할 수 없다는 의미로 위 단서규정을 해석함이 문언 및 본문과의 관계에서 자연스럽다.

  • ② 이처럼 해석하는 것이 지명채권의 본질과 특성을 보다 잘 반영할 수 있다.

  • ③ 물권에 관하여는 물권법정주의에 따라 법이 규정하는 바에 의하여 물권의 종류와 내용이 정해지는 반면(민법 제185조), 채권관계에서는 사적 자치와 계약자유의 원칙이 적용되어 계약당사자는 원칙적으로 합의에 따라 계약 내용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따라서 채권자와 채무자가 그들 사이에 발생한 채권의 양도를 금지하는 특약을 하였다면 이는 채권의 내용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그 속성을 이루는 것이어서 존중되어야 한다.

  • ④ 계약당사자가 그들 사이에 발생한 채권을 양도하지 않기로 약정하는 것은 계약자유의 원칙상 당연히 허용되는 것인데, 민법에서 별도의 규정까지 두어 양도금지특약에 관하여 규율하는 것은 이러한 특약의 효력이 당사자 사이뿐만 아니라 제3자에게까지 미치도록 하는 데 그 취지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 ⑤ 채권은 이전되더라도 본래 계약에서 정한 내용을 그대로 유지함이 원칙이고 양도금지특약도 이러한 계약의 내용 중 하나에 속하므로, 원칙적으로 채무자는 지명채권의 양수인을 비롯하여 누구에게도 양도금지특약이 있음을 주장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하고, 민법 제449조 제2항 본문은 명문으로 이를 다시 확인한 규정이라 볼 수 있다.

  • ⑥ 양도금지특약이 있는 경우 채권의 양도성이 상실되어 원칙적으로 채권양도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악의의 양수인과의 관계에서 법률관계를 보다 간명하게 처리하는 길이기도 하다.

  • ⑦ 양도금지특약이 있는 채권에 대한 압류나 전부가 허용되는 것은 양도금지특약의 법적 성질과 상관없이 민사집행법에서 압류금지재산을 열거적으로 규정한 데에 따른 반사적 결과에 불과하다. 나아가 양수인이 악의라고 하더라도 전득자가 선의인 경우 채권을 유효하게 취득한다는 기존 판례의 입장은 채권의 양도성을 제한하려는 당사자의 의사보다는 거래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민법 제449조 제2항 단서의 취지를 중시하여 제3자의 범위를 넓힌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 ⑧ 채권의 재산적 성격과 양도성을 제고하는 것이 국제적 흐름이라 하더라도 이는 대부분 제한적 범위 내에서 해석이 아닌 법규정을 통해 달성되고 있음에 유의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문언상 양도금지특약을 위반한 채권양도의 효력이 부인된다는 의미가 도출되는 민법 제449조 제2항에도 불구하고, 양도금지특약을 위반한 채권양도를 원칙적으로 유효하다고 보는 새로운 해석을 도입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나. 반대의견[대법관 권순일,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 안철상, 대법관 노정희] - 이른바 '채권적 효력설'

 

채권자와 채무자의 양도금지특약은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채권을 양도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채권자가 이 약속을 위반하여 채권을 양도하면 채권자가 그 위반에 따른 채무불이행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것을 넘어서서 양도인과 양수인 사이의 채권양도에 따른 법률효과까지 부정할 근거가 없다. 채권양도에 따라 채권은 양도인으로부터 양수인에게 이전하는 것이고, 채권양도의 당사자가 아닌 채무자의 의사에 따라 채권양도의 효력이 좌우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양수인이 채무자에게 채무 이행을 구할 수 있고 채무자는 양도인이 아닌 양수인에게 채무를 이행할 의무를 진다고 보아야 한다. 상세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 ① 양도금지특약의 당사자는 채권자와 채무자이므로 그 약정의 효력은 원칙적으로 채권자와 채무자만을 구속한다. 양도금지특약이 당사자뿐만 아니라 양수인을 비롯한 제3자에게 대세적으로 효력을 미치기 위해서는 명백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계약은 당사자만을 구속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단순히 채권관계의 당사자가 반대의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는 양도하지 못한다는 모호한 규정만으로는 채권의 양도성 자체를 박탈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양도금지특약의 효력은 특약의 당사자만을 구속하고 제3자에게 미치지 않는다는 채권적 효력설이 계약법의 기본원리에 부합한다.

  • ② 민법 제449조 제2항 본문의 문언과 체계에 비추어 볼 때 양도금지특약은 당사자 사이에만 효력이 미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민법 제449조 제2항 본문에서 ‘양도하지 못한다’고 한 부분은 문언 그대로 당사자가 채권의 양도성에 반하여 양도를 금지하는 약정을 한 경우 채권자가 약정에 따라 채무자에 대하여 ‘채권을 양도하지 않을 의무’를 부담한다는 취지로 해석함이 타당하다.

  • ③ 민법은 채권의 양도가 가능함을 원칙으로 삼고(제449조 제1항 본문),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이를 제한하고 있으므로(제449조 제2항), 양도금지특약은 채권양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인정되어야 한다. 당사자 사이의 양도금지특약으로 제3자에 대한 관계에서까지 채권의 양도성을 박탈하는 합의를 인정하는 것은 채권의 양도성을 인정하는 원칙을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다. 계약자유의 원칙에 근거하여 양도금지특약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제한 없이 대세적인 효력을 갖는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따라서 양도금지특약은 당사자만을 구속할 뿐이고 이를 위반하는 채권양도는 원칙적으로 유효하다고 보아야 한다.

  • ④ 재산권의 귀속주체인 채권자가 투하자본의 조기회수라는 경제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더욱 자유로운 양도가능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도 채권양도금지특약에 관해서 채권적 효력설을 채택하는 것이 타당하다.

  • ⑤ 채권자와 채무자 그리고 양수인 세 당사자의 이익을 비교해 보더라도 채권적 효력설이 타당하다. 양도금지특약으로 채권의 양도성이 상실된다고 보면, 채권자는 채권양도를 통한 자금조달수단을 상실하고 자산으로서의 채권 활용범위가 축소되는 불이익을 입는다. 양도금지특약에 반하는 채권양도를 원칙적으로 무효로 보면 양수인으로서도 채권 자체를 취득하지 못할 법적 위험에 직면한다. 양수인이 양도금지특약의 존재를 인식하기 쉽지 않고 그로 하여금 일일이 원래의 계약 내용을 확인하도록 하는 것은 불가피하게 불필요한 거래비용을 증가시킨다.

  • ⑥ 채권거래가 증가함에 따라 양도금지특약을 위반한 채권양도에 관하여 채권적 효력만 인정하는 입법례가 많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민법과 유사한 규정을 두고 있는 나라에서도 판례를 통하여 채권적 효력설을 채택하고 있다.

  • ⑦ 양도금지특약을 위반한 채권양도의 효력에 대한 증명책임의 분배와 선의의 전득자 보호에 관한 판례도 채권적 효력설을 따를 때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 ⑧ 양도금지특약이 있는 경우에 채권양도에 따른 채권의 이전은 금지되면서도 전부명령에 따른 채권의 이전을 허용하는 것은 불필요한 혼란을 가져온다.

 

다. 결론

 

대법원은 다수의견과 같은 이유로 피고의 상고를 기각했다. 양도금지특약에 위반하여 채권양도를 하더라도 효력이 없으므로 양도인이 여전히 채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피고는 원고에게 공사대금채무를 이행해야 한다. 

 

 

 

4. 검토

 

가. 양도금지특약을 위반한 채권양도의 효력 : 물권적 효력설 vs 채권적 효력설 

 

치열한 논쟁이 가득 담겨있는 판결문이다. 전문을 읽어보면 너무 재밌다. 다수의견, 반대의견,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 반대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으로 논의가 이어진다. 다수의견을 읽으면 이 말이 맞는 것 같고, 다시 반대의견을 보면 이 말도 맞는 것 같다. 열기가 후끈후끈하다. 

 

당사자가 채권양도 금지특약을 맺었음에도 채권자가 그 특약에 위반해서 채권을 양도하였다면 그 효력은 어떻게 될까? 크게 두가지 흐름이 있다. ① 하나는 물권적 효력설이다. 이 견해는 양도인이 채권을 양도하면 아예 양도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양수인은 채권을 취득하지 못한다. ② 다른 하나는 채권적 효력설이다. 이 견해는 양도인이 채권을 양도하면 채권 자체는 양수인에게 이전한다. 다만 양도인은 채무자에게 양도금지특약을 위반한 채무불이행책임을 진다. 

 

그런데 달랑 이것만 설명하면 충분하지가 않다. 한국에는 특이하게 민법 제449조 제2항이 있기 때문이다. 이 조문은 "채권은 당사자가 반대의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는 양도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의사표시로서 선의의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제449조(채권의 양도성) ①채권은 양도할 수 있다. 그러나 채권의 성질이 양도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채권은 당사자가 반대의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는 양도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의사표시로써 선의의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자, 이 규정을 각 학설에 적용해보면 어떻게 되느냐. 먼저 물권적 효력설이다. 양도인에게 채권을 양도하더라도 양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양수인은 채권을 취득할 수 없다. 다만, 양수인이 선의라면 채무자는 채권양도금지특약이 있다는 사실을 양수인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따라서 선의의 양수인이 채무자에게 양수금을 청구하면 채무자는 채무이행을 해야한다. 

 

채권적 효력설에서는 어떨까? 양도인이 양도금지특약에 위반하여 채권을 양도하더라도 그 양도 자체는 유효하다. 양수인은 채권을 취득한다. 다만, 민법 제449조 제2항 단서가 있다. 악수인이 악의라면 채무자는 양수인에게 양도금지특약이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여 변제를 거절할 수 있다. 

 

다수설은 물권적 효력설이다. 곽윤직 교수님은 "양도금지의 의사표시가 있으면 채권은 양도성을 잃게 된다."고 간결하게 표현한다.[각주:1] 하지만 최근 신진학자들은 채권적 효력설을 들고 나온다. 사실 이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채권적 효력설의 기세가 장난 아니었다. 왜냐? 채권적 효력설이 채권의 양도성을 강화하는 시대 흐름과 맞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계약법은 채권의 양도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점차 진화해왔다. 놀랍게도 로마법 시절에는 채권은 양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로마 사람들에게 채권관계는 채권자와 채무자가 끈끈하게 인적으로 결합된 관계였다. 채권자가 채권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는 것이야말로 채권관계의 본질에 어긋난다고 봤다. 채권자와 채무자 둘이 급부를 주고받기로 약속한 것인데, 채권을 양도하면 당사자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때, 이상하지? 하지만 그 이후 채권의 양도성이 인정되는 정도가 점점 넓어졌다. 이제 UN채권양도협약은 '양도금지약정에도 불구하고 양도는 유효하다(다만 양도인의 채무자에 대한 책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는 식으로까지 규정하고 있다.[각주:2]

 

사실, 내가 처음 얼핏 생각했을 때는 채권적 효력설이 맞다고 생각했다. 채권양도특약도 계약이다. 그러니 채무불이행책임으로 처리해야지, 채권양도 자체의 효력을 부정할 이유가 없지 않나? 게다가 채권적 효력설이 시대변화에도 조응한다고 하니, 살짝 트렌디해보이는 맛도 있다. 그러나 문제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지금 내 입장은 물권적 효력설로 바뀌었다. 그만큼 쉽지 않은 쟁점이다. 

 

이하에서는 민법 제449조 제2항에 대한 기존 판례 입장을 간략히 훑어본다. 그후 대법원 다수의견(물권적 효력설)과 반대의견(채권적 효력설)의 중요 논거들이 무엇인지 쟁점별로 살펴본다. 끝으로 학자들의 평석도 소개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정말 어이없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대법관님들이 채권양도 효력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했지만, 이게 무슨 소용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게다. 

 

 

 

나. 민법 제449조 제2항에 대한 기존 판례 정리

 

양도금지특약에 위반한 채권양도의 효력에 대해 대법원은 아래와 같이 판시했다. 

 

※ 대법원 2009. 10. 29. 선고 2009다47685 판결
당사자의 양도금지의 의사표시로써 채권은 양도성을 상실하며 양도금지의 특약에 위반해서 채권을 제3자에게 양도한 경우에 악의 또는 중과실의 채권양수인에 대하여는 채권 이전의 효과가 생기지 아니하나, 악의 또는 중과실로 채권양수를 받은 후 채무자가 그 양도에 대하여 승낙을 한 때에는 채무자의 사후승낙에 의하여 무효인 채권양도행위가 추인되어 유효하게 되며 이 경우 다른 약정이 없는 한 소급효가 인정되지 않고 양도의 효과는 승낙시부터 발생한다. 이른바 집합채권의 양도가 양도금지특약을 위반하여 무효인 경우 채무자는 일부 개별 채권을 특정하여 추인하는 것이 가능하다.

※ 대법원 2014. 1. 23. 선고 2011다102066 판결
채무자는 제3자가 채권자로부터 채권을 양수한 경우 채권양도금지 특약의 존재를 알고 있는 양수인이나 그 특약의 존재를 알지 못함에 중대한 과실이 있는 양수인에게 그 특약으로써 대항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중과실이란 통상인에게 요구되는 정도의 상당한 주의를 하지 않더라도 약간의 주의를 한다면 손쉽게 그 특약의 존재를 알 수 있는데도 그러한 주의조차 기울이지 아니하여 특약의 존재를 알지 못한 것을 말한다. 제3자의 악의 내지 중과실은 채권양도금지의 특약으로 양수인에게 대항하려는 자가 주장·입증하여야 한다. 

 

대부분 학자들은 대법원이 물권적 효력설을 취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민법 제449조 제2항에 관한 대법원의 입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① 양도금지 특약으로 채권은 양도성을 상실한다. 양도금지 특약에 위반하여 채권을 양도하더라도 양수인에게 채권이 이전되지 않는다. 
  • ② 민법 제449조 제2항은 양도금지 특약을 선의의 제3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악의의 제3자에게는 양도금지특약을 대항할 수 있다. 대법원은 이를 확장하여 중과실이 있는 제3자에게도 양도금지특약을 대항할 수 있다고 보았다. 중과실이 있는 제3자에게 채권을 양도하더라도 그 양도의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 
  • ③ 이때 제3자의 악의 내지 중과실은 채권양도금지의 특약으로 양수인에게 대항하려는 자(=채무자)가 주장·입증하여야 한다. 
  • ④ 양도금지 특약을 위반한 채권양도는 무효이지만 채무자가 사후적으로 추인할 수 있다. 추인을 하면 그 승낙시부터 채권양도는 유효하게 된다. 

 

 

 

다. 각 쟁점별 물권적 효력설과 채권적 효력설의 내용 검토

 

대상판결에서 다수의견은 물권적 효력설을, 반대의견은 채권적 효력설이 옳다고 판시했다. 어떤 점에서 맞붙은 걸까? 각 쟁점별로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이 펼친 논거를 알아보자. 

 

1) 사적 자치 원칙

 

반대의견(채권적 효력설)은 양도금지특약은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채권을 양도하지 않겠다는 약속임을 강조한다. 채권자가 이 약속을 위반하여 채권을 양도하면 채권자가 그 위반에 다른 채무불이행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것을 넘어서 양도인과 양수인 사이의 채권양도에 따른 법률효과까지 부정할 근거가 없다. 계약은 그 당사자만을 구속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양도금지특약의 효력이 제3자에게 미치지 않는다는 채권적 효력설이 계약법의 기본원리에 부합한다. 권영준 교수님도 "당사자의 의사표시에 불과한 양도금지특약으로 채권의 본질적 속성인 양도성이 물적으로 박탈된다는 점은 법적으로 잘 설명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각주:3]

 

그러나 다수의견(물권적 효력설)은 반박한다. 계약자유의 원칙상 계약당사자는 합의로 계약 내용을 얼마든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채권자와 채무자가 채권양도를 금지하는 특약을 하였다면 이는 채권의 속성을 이룬다. 따라서 채권을 양도할 수 없는 구속력이 생긴다. 이동진 교수님도 "양도금지특약이 그 당사자가 아닌 양수인에게 미칠 수 없다는 반대의견의 논거는 명백히 부당하다"라고 단호하게 지적한다. 채권의 내용이 사적자치에 맡겨져 있는 한 의사표시로 양도성을 빼앗는 것도 논리적으로 가능하다고 한다.[각주:4]

 

두 입장을 비교하자면 이런 거다. 다수의견(물권적 효력설)은 사적 자치를 강조한다. 도공이 도자기를 빚듯이, 채권관계에 있는 당사자는 마음껏 합의로 채권의 속성을 결정할 수 있다고 본다. 당사자들이 아예 '양도성이 없는' 채권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거다. 반면, 반대의견(채권적 효력설)은 사적 자치의 한계를 강조한다. 반대의견에게 채권은 일반 물건과 비슷하다. 그 물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유롭게 그 물건을 처분할 수 있는 것처럼, 채권자는 채권을 처분할 수 있고 이후 양도금지특약 위반에 따른 책임을 질 뿐이다. 

 

무엇이 더 올바른 해석일까? 사실 잘 모르겠다. 내게 이걸 판단할 능력은 없다. 다만, 반대의견 김재형 대법관의 지적도 고민할 거리를 던져준다. 채권양도가 성질상 절대적으로 불가능하여 무효인 경우가 있는 반면, 성질상 양도가 제한되지만 그러한 제한이 채무자의 동의로 해소될 수 있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한다. 가령 임차권을 임대인의 동의 없이 양도하는 것은 금지된다(민법 제629조 제1항).이건 성질상 채권의 양도가 제한되는 경우라기보다는 채무자의 동의로 해소할 수 있는 양도 제한에 불과하다. 다수설도 임대인의 동이 없는 임차권 양도는 일단 유효하고 채무자에게 그 양도를 대항할 수 없을 뿐이라고 해석한다. 

 

양도금지특약에 반한 채권양도도 마찬가지다. 이 경우도 채권양도가 성질상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아니다. 일단 채권은 양도할 수 있지만 채무자의 동의로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의 제한에 가깝다. 따라서 김재형 대법관은 양도금지 특약에 반한 채권양도도 일단 유효한 것으로 보아야한다고 설명한다. 

 

 

 

2) 조문 해석 

 

제449조(채권의 양도성) ①채권은 양도할 수 있다. 그러나 채권의 성질이 양도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채권은 당사자가 반대의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는 양도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의사표시로써 선의의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⑴ 어떤 해석이 더 조문에 부합하느냐도 중요한 쟁점이었다. 민법 제449조 제2항 본문은 양도금지특약에 위반하면 "양도하지 못한다"고 명시한다. 다수의견(물권적 효력설)은 이 말을 양도의 효력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반면, 반대의견(채권적 효력설)은 이 말을 양도금지 특약에 따라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채권을 양도하지 않을 의무'를 부담한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참나, 같은 문구를 놓고도 이렇게 정반대로 해석이 엇갈린다. 

 

⑵ 이번에는 민법 제449조 제2항 단서를 살펴보자. 제449조 제2항 본문은 양도금지특약이 있는 경우 채권을 양도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단서는 "그러나 그 의사표시로써 선의의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여기에서 '선의의 제3자(=양수인)에게 대항하지 못한다'고 규정한 것에 주목하자. 이 단서는 물권적 효력설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근거가 된다.

 

왜냐하면 위 규정의 단서는 원래는 선의의 양수인도 채권을 취득할 수 없는데 예외적으로 법이 특별히 선의의 양수인을 보호해주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물권적 효력설이 설명하는 것처럼 양수인은 채권을 취득하지 못하지만, 제449조 제2항 단서 덕분에 양도금지특약 덕분에 선의의 양수인은 채권을 취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약 채권적 효력설이 주장하는 것처럼 양도금지특약이 있더라도 채권양도 자체는 유효하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어쨌든 일단 양수인은 선악을 불문하고 채권을 취득해야 한다. 그러니 제449조 제2항 단서에서 '선의의 양수인에게 양도금지특약을 대항하지 못한다'가 아니라, '악의의 양수인에게 양도금지특약을 대항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어야 한다. 악의의 양수인도 얼마든지 채권을 취득할 수 있으니, 채무자로 하여금 그에게 양도금지특약을 대항하도록 하여 이행을 거절할 수 있게 해줘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민법 제449조 제2항은 전혀 반대로 규정하고 있지 않은가. 조문만 보면 다수의견의 해석이 더 자연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⑶ 하지만 반대의견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대법원은 민법 제449조 제2항을 적용하면서, 채무자는 양수인이 악의인 경우는 물론이고, 양도금지특약을 알지 못한 데에 중과실이 있는 경우에도 그 특약을 대항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리고 양수인의 악의 또는 중과실은 그 특약으로 양수인에게 대항하려는 자가 주장·증명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대법원 1999. 12. 28. 선고 99다8834 판결). 양수인이 자신의 선의를 입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채무자가 양수인의 악의 또는 중과실을 입증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건 뭔 뜻이냐. 반대의견에 따르면, 원래는 채권양도가 유효한데, 채무자가 양수인의 악의 또는 중과실을 입증해야 비로소 그 양수인에게 채권양도가 무효로 된다는 것이다. 

 

⑷ 하지만 이동진 교수님은 여기에 딴지를 건다. 증명책임의 배분은 법적 구성과 독립적으로 논의되고 결정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물권적 효력설 입장에서 봤을 때 양수인이 받은 채권양도는 원칙적으로 무효이다. 그러나 민법 제449조 제2항 단서로 예외적으로 양도금지특약에도 불구하고 권리취득이 인정된다. 그래서 선의취득과 비슷한 점이 있다. 따라서 물권적 효력설에서도 채무자가 양수인의 악의 또는 중과실을 입증해야 한다고 보는 결론이 가능하다.[각주:5]

 

 

 

3) 딜레마 상황의 문제점

 

다수의견(물권적 효력설)은 채권적 효력설을 취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치명적인 딜레마 상황이 있음을 지적한다. 이 또한 재미있는 쟁점이다.

 

 

채권자 A가 양도금지특약에 위반하여 악의의 양수인 B에게 채권을 양도하였다. 채권적 효력설에 따라 이 채권양도가 유효하다고 하자. 이제 채권을 양도해버린 A는 채무자 C에게 채무이행을 청구할 수 없다. A에겐 더이상 채권이 없으니까. 한편, B가 C에게 이행청구를 하면 C는 민법 제449조 제2항 단서를 근거로 양도금지특약을 주장하며 채무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 어라? 그러면 C는 A에게도, B에게도 채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 이게 뭔 황당한 상황인가. 물권적 효력설은 이런 모순이 발생하지 않는다. A가 채권을 양도하더라도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권리관계가 깔끔하다. 

 

반대의견(채권적 효력설)은 느긋한 어조로 이렇게 답한다. 걱정마라. 딜레마 상황은 해결할 수 있다. ① 채무자가 양수인에게 이행거절의 항변을 했다면 양도인에게 이행해야 한다고 보면 된다. ② 양도인이 채무자에게 이행청구를 하니까 채무자가 채권양도의 효력이 유효하다고 주장하면서 양도인에게 채무이행하는 것을 거절했다면, 채무자는 양수인에게 이행해야 한다고 보면 된다. 채무자가 양수인에 대한 이행거절의 항변권을 포기하고 양수인에게 채무를 이행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한 것으로 해석하면 되기 때문이다. ③ 만약 채무자가 양수인과 양도인 모두에게 이행을 거절한다면 이런 행위는 선행행위에 모순되는 행동이다. 신의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자 다수의견(물권적 효력설)[각주:6]은 위와 같은 해결책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위 해결책에 따르면 하나의 채권을 놓고 채무자가 이행의 상대방을 고를 수 있는 구조가 된다. 법적 근거도 없이 하나의 채권이 양도인과 양수인에게 공동으로 귀속하는 것과 유사한 법률관계를 창설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 채권적 효력설은 양도인과 양수인 사이에서 양도금지특약에도 불구하고 채권이 유효하게 이전하므로 채권이 오직 양수인에게만 귀속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모순에 빠진다. 

 

더구나 반대의견(채권적 효력설)은 채무자가 악의의 양수인에게 양도금지특약의 존재를 주장하며 채무 이행을 거절했으면, 그에 따라 양도인에게 신의칙상 이행의무를 진다고 설명한다는 점도 문제다. 종전 채권자는 양수인에게 채권양도를 하여 더이상 아무 권리를 가지지 않는다. 채무자가 악의의 양수인을 상대로 이행거절의 항변권을 행사하는 사정이 나중에 생겼다고 하여 종전 채권자가 자신이 보유하지도 않은 채권을 채무자에게 행사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특히 종전 채권자는 채무자와 양수인 간의 관계 바깥에 놓인 사람이다. 채무자가 항변권을 행사했는지 여부에 따라 보유하지도 않은 채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하는 해석은, 신의칙이 적용되는 범위와 한계가 어디까지인지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마저 불러일으킨다. 신의칙은 법률관계의 당사자가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하여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추상적 규범이다. 청구권원으로서 일반조항인 신의칙을 내세우는 데에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는 반대의견[각주:7]은 또다시 재반박한다. 채권적 효력설을 취할 경우 채무자가 이행거절권을 행사하거나 포기하는 방법으로 채무 이행의 상대방을 선택하는 것은 양도금지특약에 따른 정당한 권한 행사이다. 채무자의 이러한 권한 행사로 채무자와 채권자 간, 채권자와 양수인 간, 채무자와 양수인 간의 각 법률관계에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만일 채무자가 양수인의 악의 등을 증명하여 정당하게 이행거절권을 행사한 경우 채무자는 채권자에게 채무를 이행하면 되고, 다만 이 경우 채권자와 양수인 간의 채권양도의 효력은 여전히 유효하므로 채권자는 변제 받은 금전 등을 양수인에게 교부할 의무를 부담한다. 이러한 법률관계는 유효한 채권양도가 이루어졌으나 채무자에 대한 대항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채무자에게 대항할 수 없는 경우와 유사하다(대법원 1999. 4. 15. 선고 97도666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민법이 이미 예정하고 있는 유형의 법률관계라 할 수 있다.

 

 

 

4) 당사자의 이해관계 비교

 

물권적 효력설과 채권적 효력설 가운데 어떤 입장을 따를 것인지는 양도인, 양수인, 채무자의 이해관계와도 맞닿아 있다. 세 당사자 중에서 과연 누구를 더 보호해야 할 것인가. 

 

반대의견(채권적 효력설)은 채권양도금지특약에 채권적 효력만을 인정하는 것이 세 당사자 사이의 이익관계 균형을 맞출 수 있다고 보았다. 양도금지특약으로 채권이 양도성 자체가 상실된다고 해보자. ① 채권자는 채권양도를 통한 자금조달수단을 상실한다. 채권을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는 범위가 축소되는 불이익을 입는다. ② 양수인은 채권양도를 받을 때마다 원래 계약에 양도금지특약이 있는지를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불가피하게 불필요한 거래비용이 증가한다. ③ 반면, 채권양도금지특약에 채권적 효력만을 인정하더라도 채무자의 불이익은 크지 않다. 채무자는 기존 채권자에게 특약 위반에 따른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채권자가 양수인으로 변경되더라도 원래 이행해야 할 채무를 이행하는 것에 불과하다. 

 

다수의견(물권적 효력설)은 반박한다. ① 아무리 채권의 유동화 확보를 통한 자본의 신속한 순환이 요구되더라도 민법 제449조 제2항 문언의 합리적 해석 범위를 넘어 양도금지특약을 위반한 채권양도를 원칙적으로 유효하다고 볼 수는 없다. 

 

양도금지특약의 활용실태에 비추어 채권적 효력설을 채택하더라도 그 실익이 크지 않다. 현실에서 양도금지특약이 활용되는 영역은 건설업·제조업 등이고, 계약교섭력이 강한 발주자가 변제의 상대방을 고정시켜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간명하게 처리하고자 원사업자를 상대로 양도금지특약을 요구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설령 채권적 효력설을 채택하더라도 거래상 우월한 지위에 있는 발주자가 여러 방법을 사용하여 채권적 효력설에 따른 긍정적 효과를 무력화할 수 있다. 양도금지특약이 적용되는 이해관계인의 범위를 확장하거나 양도금지특약을 위반한 채권양도에 관해 채무자가 면책되는 근거를 계약에 별도로 포함시키는 등의 방법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③ 더구나 채권의 재산적 성격과 양도성을 제고함으로써 자산유동화를 장려하는 것 역시 다른 방법으로 모색되어야 한다. 채권적 효력설에 대해 구체적 개념과 내용이 명확히 확립되어 있지도 않고 이를 통해 달성될 수 있는 실익도 뚜렷하지 않은 상황이므로 현행 민법 규정의 해석에 관해 새로운 견해를 채택하기 보다는 좀 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필요 적절한 방안을 찾는 편이 바람직 하다. 

 

 

 

라. 평석

 

1) 권영준 교수님 견해[각주:8]

 

권영준 교수님은 채권적 효력설이 더 좋은 법 해석론이라고 주장한다. 물권적 효력설은 계약은 당사자에게만 효력이 미친다는 계약법의 일반 원리에 반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계약법의 일반 원리에 반하는 예외를 인정할만한 실정법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 당사자의 의사표시에 불과한 양도금지특약으로 채권의 본질적 속성인 양도성이 물적으로 박탈된다는 점은 법적으로 잘 설명하기 어렵다. 

 

더구나 채권양도는 자산유동화와 결합하여 현대 경제의 근간을 이룬다. 양도금지특약에 위반한 채권양도가 무효라면 채권양수인이 채권을 양수할 때마다 일일이 양도금지특약이 있는지를 조사해야 한다. 판례는 중과실이 있는 양수인에게도 채권양도가 무효라고 판시하고 있고, 구체적으로 어느 경우에 중과실이 인정되는지 판례의 태도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채권양수인은 채권을 불안에 떨며 양수해야 하는 것이다. 

 

 

 

2) 김동훈 교수님 견해[각주:9]

 

채권적 효력설은 채권자와 양수인의 이익을 편향되게 강조한다. 채권자가 채권이라는 자산을 적극 활용하고 자금을 조달하는 것에 지장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관점은 민법보다는 상법 내지 기업법적인 관점에서 보는 인상을 준다. 채권이라는 권리의 귀속자로서 채권자가 본래 누려야하는 것은 이행기에 이르러 채무자의 이행을 통하여 만족을 얻는 것이다. 이것을 이행기 전에 처분을 통하여 예정보다 조기에 만족을 얻는 것은 법이 편의를 보아주는 것이지, 원래부터 마땅히 채권자에게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다. 

 

반면, 채무자의 입장에 대한 고려는 매우 소홀하게 언급된다. 채무자에게 그 급부의 내용은 물론 누구에게 이행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관심사이다. 채권이 양도되는 것은 많은 경우 복잡한 법률관계를 동반할 수 있어 채무자로서는 최악의 경우 이중변제의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또 새로운 채권자의 등장은 종래의 채권관계에서 축적되었던 당사자 사이의 관계성을 무화시킴으로써 예컨대 새로운 채권자는 쉽게 채무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에서 장기채권인 모기지론의 채권자인 주택은행들이 이를 투자회사 등에 무분별하게 양도하면서 일시적 어려움에 빠진 모기지론 채무자들이 채무조정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소송에 연루되고 이어진 압류결정에 주택을 빼앗기고 결과적으로 이는 채권자측에도 큰 손해를 가져왔던 상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따라서 김동훈 교수님은 채권적 효력설이 아닌 물권적 효력설을 지지한다. 

 

내가 김동훈 교수님 논문을 읽고 지명채권에 인적 결합요소가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노무제공이나 임대차 같은 계속적인 관계라면 채권자와 채무자가 인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채권양도를 쉽사리 허용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금전채권이라면? 이때도 채권자와 채무자가 인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측면이 있다. 채무자는 채권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나름의 이해관계를 갖는다.

 

가령 내가 정말 친한 친구한테서 거액의 돈을 빌렸다고 하자. 그럼 내가 정말 사정이 어려울 때 그 친구에게 부탁하기도 하면서 이자를 깎아달라고 비벼보기라도 할 수 있는데, 만약 그 친구가 그 채권을 다른 대부업체에게 팔아넘겨버렸다면 그때부턴 협상이고 뭐고 얄짤없이 채권추심에 시달리게 된다. 양도금지특약은 이처럼 채권자를 고정시키려는 채무자의 이익을 위한 특약이다. 채무자 보호를 위한 취지를 살린다면 양도금지 특약에 반하는 채권양도는 효력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3) 이동진 교수님 견해[각주:10]

 

우리 민법에는 제449조 제2항이 있다. 이 규정 덕분에 양도금지특약을 위반하여 채권을 양도하였을 때 어차피 선의 양수인은 채권을 취득하고, 악의 양수인은 채권을 취득하지 못한다.[각주:11] 물권적 효력설과 채권적 효력설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으나 제449조 제2항이 있는 한 결론은 동일하다. 따라서 그 둘의 우열은 얼마나 설명을 경제적으로 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이동진 교수님은 이런 관점에서 해석론으로는 물권적 효력설이 우수하다고 한다. 채권적 효력설에 따르면 악의의 양수인에게 채권이 유효하게 양도된 것임에도 채무자는 양수인에게 이행을 거절할 수 있고, 양도인은 채권의 유효한 이전으로 더이상 권리를 갖지 않게 된다. 복잡한 문제가 생기니 위에서 보았듯이 채권적 효력설은 신의칙까지 끌어들이며 복잡한 설명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동진 교수님이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에 찬성하느냐하면 그건 아니다. 일반적으로 양도금지특약이 문제되는 사례는 이런 거다. 양도인이 양도금지특약에 위반하여 채권을 양도하고 양수인이 채무자에게 채무이행을 청구한다. 채무자는 화들짝 놀라며 "아니, 이 채권은 양도금지특약이 있는 채권이란 말이오"하면서 양도금지특약의 존재를 항변한다. 보통의 경우는 채무자가 양도금지특약의 존재를 주장한다. 

 

반면, 대상판결 사안을 가만히 보자. 양도인이 양도금지특약에 위반하여 채권을 양도해놓고, 다시 채무자에게 채무이행을 청구한다. 채무자는 양도금지특약을 원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채권을 양도했다는 사실을 원용하고 있다. 일반적인 경우와는 사뭇 다르다. 

 

양도금지특약은 대개 채무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양도금지특약이 없었다면 채권자가 채권을 자유롭게 양도할 수 있을 테지만, 채무자와 채권자가 채무자의 이익을 위해 양도금지특약을 맺어 채무자의 변제 상대방을 고정시키려 한 것이다. 따라서 물권적 효력설을 취하더라도 채무자에 의한 추인을 인정할 수 있다. 이동진 교수님은 물권적 효력설을 취하는 독일, 프랑스 민법도 채무자에 의한 추인을 인정한다고 설명한다. 우리 판례도 채무자의 사후승낙으로 무효인 채권양도행위를 추인하여 유효하게 할 수 있다고 하였다.[각주:12]

 

이동진 교수님은 대상판결 사안에서는 양도금지특약을 위반한 채권양도행위에 대해 채무자가 추인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채권을 양도했다'는 사실을 양도인만이 아니라 채무자도 원용하고 있다. 이는 채무자가 양도금지특약에도 불구하고 채권을 양도한 것이 적법하다는 사실을 묵시적으로 승인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채권적 효력설에 따르든, 물권적 효력설에 따르든 채무자는 양수인에게 채무를 이행해야 한다. 

 

이동진 교수님에 따르면 대법원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이 사실 사건을 해결하는 데 별 상관없는 이론적인 논쟁을 했던 것에 불과하다. 물권적 효력설이든 채권적 효력설이든 채무자가 채권양도행위에 대해 추인을 했다. 채권양도는 유효하다. 양도인에게는 채권이 없으니 그 청구를 기각했어야 한다. 

 

 

  1. 곽윤직, 채권총론, 박영사(2004), 216면 [본문으로]
  2. 이동진, 양도금지특약에 반하는 채권양도, 회생절차와 민법 제434조 - 대법원 2019. 12. 19. 선고 2016다24284 전원합의체 판결 -, 법조 제69권(통권 제743호), 법조협회, 2020. 10. 28., 446-447면 [본문으로]
  3. 권영준, 2019년 민법 판례 동향, 서울대학교 법학 제61권 제1호, 2020. 3. 571-582면 [본문으로]
  4. 이동진, 양도금지특약에 반하는 채권양도, 회생절차와 민법 제434조 - 대법원 2019. 12. 19. 선고 2016다24284 전원합의체 판결 -, 법조 제69권(통권 제743호), 법조협회, 2020. 10. 28., 446-447면 [본문으로]
  5. ]이동진, 양도금지특약에 반하는 채권양도, 회생절차와 민법 제434조 - 대법원 2019. 12. 19. 선고 2016다24284 전원합의체 판결 -, 법조 제69권(통권 제743호), 법조협회, 2020. 10. 28., 446-447면 [본문으로]
  6. 정확히는 다수의견의 보충의견이다. [본문으로]
  7. 정확히는 반대의견의 보충의견이다 [본문으로]
  8. 권영준, 2019년 민법 판례 동향, 서울대학교 법학 제61권 제1호 2020년 3월 571-582면 [본문으로]
  9. 채권양도금지특약의 효력과 채무자의 보호 - 대법원 2019. 12. 19. 선고 2016다24284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한 평석, 국민대학교 법학연구소, 법학논총,  제34권 제1호(통권 제68호) [본문으로]
  10. 이동진, 양도금지특약에 반하는 채권양도, 회생절차와 민법 제434조 - 대법원 2019. 12. 19. 선고 2016다24284 전원합의체 판결 -, 법조 제69권(통권 제743호), 법조협회, 2020. 10. 28., 446-447면 [본문으로]
  11. 판례에 따르면 중과실의 양수인도 채권을 취득하지 못한다 [본문으로]
  12. 대법원 2009. 10. 29. 선고 2009다47685 판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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