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판례정리

[민법판례정리] 민법 제393조가 정하는 '특별한 사정'의 예견시기 -대법원 1985.09.10. 선고 84다카1532 판결

칼린츠 2020. 3. 20.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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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판례정리] 민법 제393조가 정하는 '특별한 사정'의 예견시기 -대법원 1985.09.10. 선고 84다카1532 판결

- 2012년 사법시험 1차

 

민법 제393조 제2항 소정의 특별사정으로 인한 손해배상에 있어서 채무자가 그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지의 여부를 가리는 시기는 원심판시와 같이 계약체결당시가 아니라 채무의 이행기까지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참고조문>
제393조(손해배상의 범위)
①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은 통상의 손해를 그 한도로 한다.
② 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손해는 채무자가 그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 한하여 배상의 책임이 있다.

 

1. 사실관계

 

쟁점과 관련된 사실관계만 간단히 추려보자. 

 

① 피고는 1982년 7월 1일 원고에게 자기 소유 토지와 건물(이하 '이 사건 부동산'이라고 한다)을 6,100만원에 매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원·피고는 계약 당일 계약금으로 610만원을 주고받았고, 나머지 대금 5,490만원은 8월 15일에 소유권이전에 필요한 서류와 동시에 주고받기로 했다. 

 

② 원고는 잔금지급기일이 되기 전인 1982년 8월 9일 위 부동산을 병에게 6,900만원에 팔고, 계약금으로 600만원을 받았으며, 원고가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계약금 상당액을 위약배상금으로 지급하기로 약정했다. 

 

③ 원고는 이를 피고에게 알렸다. 피고는 '원고에게서 잔금을 받으면 병에게 바로 이전등기 하여 주겠다'는 확약서를 작성하여 원고에게 주었다. 

 

④ 그런데 피고가 원고에게 매도한 이 사건 부동산 가운데 건물이 문제였다. 피고는 건물을 전 등기명의자 갑에게서 취득하였는데, 피고에 우선하는 가등기 명의자 을이 있었다. 을은 갑에게 소송을 제기하였고, 을이 승소하여 건물 소유권은 을에게 이전되었다. 

 

⑤ 원고는 피고가 원고에게 이 사건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해야 할 의무는 이행불능이 되었다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는 소장 부본 송달로 피고와 매매계약을 해제하고 이미 피고에게 지급한 계약금의 반환을 청구했다. 또, 원고가 병에게 위약배상금으로 600만 원을 지급하였으니, 해당 금액만큼 손해를 입었다면서 그 손해배상도 구하였다. 

 

 

 

2. 원심 판결 요지 : 원고의 손해배상청구 기각

 

원심은 "피고가 주장하는 ··· 계약해제로 인한 손해배상금 등은 모두 특별한 손해로서 피고가 위 매매계약 당시에 동 손해의 발생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만 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원고가 제3자 병에게 이 사건 부동산을 전매하리라는 사정을 피고가 매매계약체결시에 알거나 알 수 있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했다. 따라서 원고의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했다. 

 

 

 

3. 쟁점

 

민법 제393조 제2항은 "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손해는 채무자가 그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 한하여 배상의 책임이 있다."고 규정한다. 채무자가 특별한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지는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까?

 

 

 

4. 대법원 판결 요지

대법원 1985.09.10. 선고 84다카1532 판결
민법 제393조 제2항 소정의 특별사정으로 인한 손해배상에 있어서 채무자가 그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지의 여부를 가리는 시기는 원심판시와 같이 계약체결당시가 아니라 채무의 이행기까지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 인바 돌이켜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피고가 그 성립을 인정하는 갑 제7호증(확인서)의 기재에 의하면 피고는 그 채무의 이행기(1982. 8. 15) 이전인 1982. 8. 9 원고가 위 매수부동산을 위 목진주에게 전매한 사실을 알고 있었던 사실이 인정되므로 피고는 채무이행기 전에 이미 원고가 위 전매계약 때문에 입게 된 손해의 원인이 된 특별사정을 알고 있었음이 명백하다고 할 것이다.
원심이 그 판시와 같은 이유를 들어 원고의 이 부분 손해배상청구를 배척한 것은 특별사정으로 인한 손해에 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할 것이고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논지는 이유있다.

 

 

 

5. 검토

 

가. 들어가며 : 특별한 사정에 대한 예견가능성 판단의 기준시기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했다. 그 배상범위는 통상손해가 원칙이다. 특별한 사정으로 생긴 손해는 채무자가 특별한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만 배상책임을 진다(민법 제393조). 이때 특별한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지, 언제를 기준으로 따져봐야 할까? 두 가지 입장이 있다. 계약체결시설 vs. 채무불이행시설.

 

그렇게 복잡한 쟁점은 아니다. 판례의 사실관계도 단순하다. 다만 양창수 교수님의 평석이 재밌어서 소개한다. 민사판례연구에 실린 「민법 제393조 제2항이 정하는 특별한 사정의 예견가능성」이란 논문 내용을 편집하고 간추렸다. 

 

"하나 안에 모두가 있다." 미시는 거시를 품는다. 읽다보면 느낄 것이다. 이 조그만 쟁점에서도 채무이행을 바라보는 커다란 패러다임의 차이가 숨어있다.

 

 

 

나. 견해대립

 

1) 계약체결시설

 

우선 소개할 학설은 계약체결시설이다. 김형배 교수님 견해라고 한다. 이 학설은 특별한 사정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를 계약체결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채무자가 계약 체결 당시 예견할 수 있었던 사정이면 특별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계약 체결 당시에 예견할 수 없었는데 뒤늦게 예견가능성이 생긴 경우에는 특별손해에 대한 책임이 없다.

 

왜 계약체결시냐? 채권자는 계약체결 당시에 합의한 이익만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계약은 밀당이다. 계약 전까지 당사자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이익을 조정한다. 만약 당사자가 계약체결을 하면서 특별한 사정을 예견하였다면 계약 조건을 유리하게 바꾼다든지 계약체결을 거부하든지 할 수 있다.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 채무불이행책임은 이처럼 당사자가 합의한 내용을 어긴 것에 대한 제재다. 

 

그러나 계약을 체결할 때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사정을 채무자가 계약 체결 후에야 뒤늦게 알게 되었다고 하자. 그러한 특별한 사정으로 생긴 손해는 채무자가 계약 체결 당시 전혀 고려할 수 없었던 사항이다. 이러한 특별손해까지 배상해야 한다고 본다면 채무자는 불측의 손해를 입는다.[각주:1]

 

2) 채무불이행시설

 

다른 학설은 채무불이행시설이다. 곽윤직 교수님 견해라고 한다. 이 학설은 채무자가 특별한 사정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를 채무불이행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특별한 사정을 채무자가 계약체결 이후에야 예견가능하였더라도 그 특별손해에 대해서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곽윤직 교수님 등은 왜 채무불이행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걸까? 양창수 교수님은 이렇게 추측한다. 채무자가 채무불이행 당시 특별한 사정이 생겼다는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으면서도 감히 이행하지 않은 채무자의 행태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깔려있는 것이란다.[각주:2] 

 

대법원은 대상판결에서 명시적으로 채무불이행시설을 따랐다. 특별한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지는 "계약체결당시가 아니라 채무의 이행기까지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이라고 했다. 

 

 

 

3) 양창수 교수님의 평석

 

양창수 교수님은 채무불이행시설을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대법원이 정당하다고 본 것이다. 

 

계약체결시설이 불합리하다고만은 볼 수 없다. 당사자는 서로 이익을 조정하며 계약을 체결한다. 계약체결시설은 그 이익계산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 그러지 않으면 당사자 일방은 계약 당시 예측할 수 없었던 손해를 입는다. 깔끔하다.

 

그러나 한가지 간과한 점이 있다. 당사자가 계약체결에 이르기까지 이익계산을 하였더라도, 계약을 체결한 후에 그 이익계산이 손해배상책임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계약법의 대원칙이 뭔가.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것. "어?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거랑 다른데요?"라면서 계약을 마음대로 어길 수 있나? 아니다. 당사자가 처음 예상했던 이익계산이 빗나가더라도 응당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 

 

오히려 계약체결 당시 예견할 수 없었던 사정이 뒤늦게 튀어나왔다면, 채무자는 더 주의하여 채무불이행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 사정을 예견하면서도 고의·과실로 채무불이행을 하였다면 특별손해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것이 맞다. 

 

더구나 일본민법 제416조 제2항은 특별한 사정을 예견하는 주체를 "당사자"라고 규정한다. 반면 한국 민법 제393조 제2항은 예견하는 주체를 "채무자"로만 규정한다. 계약 "당사자"가 합의한 내용이 아니라, 그 중 일방인 "채무자"가 예견할 수 있는 내용만을 기초로 특별손해의 배상여부를 판단하라고 정한 것이다. 계약체결시설은 한국 민법의 조문내용과 어울리지도 않는다. [각주:3]

 

 

 

다. 부록 : 추가적인 문제가 더 있다! - 손해배상액의 예정과 특별손해

 

위 대상판결에서 원고는 대단히 독특하게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그게 뭐~~게?

 

원고가 전매계약 매수인에게 물어줘야 할 위약배상금 600만 원을 손해로 청구했다는 것이다. 물론 큰 문제는 없다. 대법원이 본 것처럼 이런 손해는 원고에게만 있는 사정으로 생긴 손해다. 특별손해에 해당한다. 

 

그런데 판례는 일반적으로 전매차익도 특별손해로 본다. 대표적인 예가 이른바 '배추매매 사건'(내가 붙인 이름이다;;)이다. 대법원은 배추 매수인이 배추를 전매하여 이익을 취득하리라는 사정은 특별한 사정에 해당하고, 배추 매도인이 이를 예견할 수 있었다면서 전매이익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 대법원 1967.05.30. 선고 67다466 판결
원고가 배추장사라는 사실과 인도기일이 1966.3월말 본건 배추를 서울이나 인천으로 실어간다는 사실을 피고가 아는 등 본건과 같은 사정하에서는 피고는 원고가 본건 배추 850포기를 1966.3월말 서울이나 인천등지에서 1965.12 당진에서의 시세보다도 상당히 등귀된 가격으로 전매하여 상당한 이익을 취득할 것이라는 사정을 미리 알수 있을 것이라고 인정함이 상당하다. 

 

따라서 대상판결에서 원고는 전매차익을 특별손해로 청구하면 충분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원고에게도 이익이다. 전매가격 6,900만원에서 원래 매매가격 6,100만원을 빼면 800만원이 전매차익이기 때문이다. 위약배상금 600만원보다 더 많다. 뭐, 원고가 불리하게 청구하는 건 자기 자유이지만.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있다. 전매계약이 예견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라고 하여도, 그 전매계약에 포함된 위약배상금까지 채무자가 배상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 가혹할 수도 있다. 양창수 교수님은 위약배상금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 법원이 그 액을 적정히 감액할 수 있으니(제398조 제2항), 채무자에게도 그 적당히 감액된 한도 안에서만 배상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 민사판례연구 9권, 양창수 민법 제393조 제2항이 정하는 특별한 사정의 예견시기 [본문으로]
  2. 민사판례연구 9권, 양창수 민법 제393조 제2항이 정하는 특별한 사정의 예견시기 [본문으로]
  3. 민사판례연구 9권, 양창수 민법 제393조 제2항이 정하는 특별한 사정의 예견시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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