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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이방인, 까뮈 - 세 죽음과 실재계의 증명

칼린츠 2017. 11. 18.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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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은 세 죽음으로 구성된다. 어머니의 죽음, 해변가 살인, 뫼르소가 받은 사형선고. 세 개의 죽음을 거치며 주인공 뫼르소는 조금씩 변화한다.

 

먼저, 어머니의 죽음 단계다. 이 단계에서 뫼르소에게는 즉물적 감각만 살아있다. 그는 그저 자고, 먹고, 놀고, 섹스한다. 생리적 욕구만 있을 뿐, 사회적 욕망이 없다. 아직 상징계 질서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하긴, 소설 내용을 떠올려보면 뫼르소는 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애초에 부친살해로 초자아를 형성할 기회가 없었다. 이 시점의 뫼르소는 상상계에 속하는 인물이다.

 

다음으로, 해변가 살인 단계다. 뫼르소는 아랍인을 죽였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는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뫼르소에게는 최초의 금기가 생겼다. "가만히 있으세요(변호사)." 이후 뫼르소는 법조인들의 낯선 사유체계와 만난다. 그것은 인과론적 사유체계다. 법조인들은 사건에 합리적 원인이 있다고 믿는다. 사실 어머니 장례식장에서 보인 태도와 살인의 고의를 입증하는 건 다른 문제다. 그러나 그들은 사건을 설명할 수 있는 원인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억지로 둘을 연결 짓는다. 살인 동기를 언어로 표현할 수 없자, 억지로라도 언어적 질서를 세우는 것이다. 이렇게 뫼르소는 해변가 살인 이후 상상계라는 새로운 질서를 만난다.

 

끝으로, 뫼르소의 사형집행 단계다. 뫼르소는 상징계 질서를 만났지만, 그 상징계 질서를 곱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뫼르소는 신을 믿으라는 신부의 말을 거부한다. 유죄를 인정하지 않으며 법정의 논리도 거부한다. 뫼르소는 아랍인을 죽였고, 그것인 우연한 사건일 뿐이다. 그것이 사실인데 어쩌라고? 법조인은 상징계 질서에 구멍이 있다는 걸 못견뎌 한다. 하지만 억지로 인과관계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곳이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 억지로 언어적 질서를 세울 필요도 없다. 상징적 질서로 포섭할 수 없는 영역이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뫼르소의 존재 자체가 그러했다. 그는 어머니 죽음 이후에도 섹스를 할 수 있을만큼 기존의 상징적 규범에 무관심 했다. 사람들은 그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고 비난한다. 그리고 그 비난은 뫼르소가 상징계 질서에 포섭되지 않는 존재였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뫼르소의 존재 자체가 아랍인 살인처럼 우연한 사건과 같은 것이다. 그는 자신의 존재로써 상징계로 포섭되지 않는 실재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 증명을 하기 위해 사형집행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그가 죽음으로써 전체 시스템에 구멍, 고장, 번역불가능한 영역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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