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글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칼린츠 2018. 4. 2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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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내 눈으로 퍼스트 건담을 직접 보게 되다니. 3D 안경으로 보이는 건담은 무려 메카고지라와 싸우고 있었다. 마음이 도키메키했다. 감동의 눈물이 흐를 뻔 했다. 뿐만 아니다. 주인공이 백투더퓨쳐의 드로이안을 타고 레이싱을 한다. 그는 막타에 아도겐을 쓰기도 한다. 중간엔 샤이닝을 VR로 체험하기도 한다. 여캐는 아키라에 나오는 바이크를 타고 등장한다. 게임잡지로만 봤던 아타리 게임기가 나오기도 한다(이 게임기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를 게임화한 E.T.라는 '불세출'의 망작을 남기고 골로가지 않았던가). 살짝 광전사가 걸어가는 장면도 나오고, 자세히 찾아보면 오버워치 트레이서도 나온다. 감동이다.

 

영화는 2045년의 미래시대를 다룬다. 그런데 이처럼 덕후들이 좋아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영화를 가득 메운다. 덕분에 이 영화 안에서 미래와 과거가 서로 뒤엉킨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 자체는 미래이지만, 과거에 대한 짙은 향수를 느낄 수밖에 없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는 개발자 할리데이의 유년기 모습이 나온다. 그 소년은 앉아 비디오 게임을 하고 있다. 문득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유치원 때 엄마와 아빠가 바빴다. 두분은 맞벌이를 했으니까. 나도 집에 남아 할리데이의 유년시절처럼 패미콤을 하면서 자랐다. 동키콩, 슈퍼마리오가 내 친구였다.

 

돌이켜보면 나를 지탱해온 것은 덕질이었다. 나는 몹시 내성적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대화에 좀 껴보려고 해도 그게 잘 안됐다. 자연스럽게 밖에서 노는 것보다는 집에서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다. 컴퓨터 게임을 하고,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보면서 홀로 지냈다. 20대 때도 인생은 비루했다. 월세는 비쌌고, 남들은 나보다 다들 앞서나가는 것 같았다. 뒤쳐지는 내가 싫었다. 더욱 더 가상현실에 몰두했다. 그렇게 현실을 도피하며 살았다.

 

어느 덧 삼십대 초반이다. 이제 어리광을 부릴 수 없는 나이가 됐다. 20대가 끝나며 내 인생의 한 국면도 끝났다.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이 영화에는 다양한 게임, 애니메이션, 영화 장면에 대한 오마주, 패러디가 나온다. 그럼으로써 그동안 내가 혼자가 아니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다. 내가 패미콤을 즐기는 그 순간에도 나는 혼자가 아니었으며, 우리는 모두 함께 같은 것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같은 것을 즐기며 동시대를 함께 살아왔던 것이다. 그간의 외로움을 치유받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할리데이는 유언처럼 "Thanks for playing my game."이라는 작별인사를 남기고 떠난다. 주책맞게 눈물이 날뻔했다. 내가 골방에 혼자 즐겼던 그 모든 것들은 진공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을 만든 많은 창작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멋진 게임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숱한 밤을 지새웠을 것이다. 때로는 고민에 빠지고, 깊은 좌절도 맛보아야 했을 게다. 나는 그렇게 많은 게임을 하고, 그렇게 많은 영화와 만화를 봤으면서도, 단 한번도 그게 감사한 일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살았다. 이제서야 나도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Thanks for letting me play your game." 당신들 덕분에 심심했던 내 삶도 즐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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