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의 대원칙 : 사적 자치의 원칙 1792년 8월 10일. 프랑스 민중은 튀를리궁으로 진격했다. 튀를리궁에는 국왕 루이 16세가 있었다. 스위스 용병과 근위대가 그를 호위하고 있었지만 성난 민심을 막을 수는 없었다. 국왕의 병사들은 처참하게 패배했다. 혁명의 노래가 울려퍼졌다. 이윽고 국왕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사형이 결정됐다. 루이 16세는 혁명 광장 중앙으로 끌려왔다. 기요틴의 칼날은 날카로웠다. 칼날은 루이 16세의 목에 떨어졌다. 집행관은 관중을 향해 루이 16세의 목을 들어보였다. 환호성이 터졌다. 1793년 1월 21일이었다. 중세 봉건질서가 무너지며 근대 법체계가 등장했다. 중세 봉건사회는 신분제 사회였다. 국가는 모든 구성원에게 신분을 주었다. 구성원은 그 신분에 알맞는 역할을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