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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입문 : 계약법] 채권양도 - 채권의 양도성, 대항요건

칼린츠 2021. 3. 21.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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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양도>

 

 

채권의 종류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지명채권과 증권적 채권이다. 지명채권은 채권자와 채무자가 정해져 있고, 권리가 증권과 결합하지도 않는 일반적인 채권을 말한다. 증권적 채권은 권리가 증권으로 표상된 채권이다. 민법 과목에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채권은 지명채권이다. 민법도 증권적 채권에 대해서 규정을 마련하고는 있지만, 상법이나 다른 특별법에 별도의 규정들이 많아 굳이 민법을 적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지명채권의 양도에 대해 설명한다. (꼬박꼬박 ‘지명채권’이라 쓰기 귀찮으니, 걍 ‘채권’이라 쓰겠다.)

 

 

 

채권의 양도성

 

제449조(채권의 양도성) ①채권은 양도할 수 있다. 그러나 채권의 성질이 양도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채권은 당사자가 반대의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는 양도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의사표시로써 선의의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채권도 채권자의 것이다. 채권자는 마음대로 자신의 채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 줄 수 있다(제449조). 예를 들어 공자가 맹자에게 받아야 할 돈이 3만원 있다. 공자는 이 3만 원 채권을 제3자인 묵자에게 양도할 수 있다. 넘겨주는 원인은 다양하다. 채권을 돈 받고 판 것일 수도 있고, 선심을 써서 공짜로 증여한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묵자가 3만원 채권을 넘겨받으면 이제 묵자가 채권자다. 채무자인 맹자는 3만원을 묵자에게 갚아야 한다.

 

공자, 맹자, 묵자의 관계에서 보듯이, 채권양도가 이루어지면 삼각관계가 생긴다. 공자는 채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줬으니까 ‘채권양도인’이다. 맹자는 채권을 넘겨 받았으니까 ‘채권양수인’이다. 묵자는 양도‧양수된 채권의 ‘채무자’이다. 채권양도의 법률관계는 이 양도인, 양수인, 채무자가 지지고 볶으며 만들어진다. 물론 법학의 삼각관계는 남녀의 삼각관계와 같은 애틋함 따위 없다. 이들은 결국 법정에서 ‘니가 잘못했네, 내가 잘했네’하면서 싸우게 될 것이다.

 

다만, 채권을 양도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첫째, 채권의 성질이 양도하기에 부적합할 때이다(제449조 제1항 단서). 그런데 실생활에서 양도에 부적당한 채권은 거의 없다. 그래서 양도할 수 없는 채권이 무엇인지를 다룬 판례도 거의 없다. 학자들은 보통 ‘내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채권은 양도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초상화를 그려줘야 하는 일은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업무의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마음껏 양도할 수 있다고 하면 화가에게 예상하지 못한 손해를 입힐 수 있다나 뭐라나.

 

[사례 - 장래 발생할 채권도 양도할 수 있는가?] 갑은 임차인이고, 을은 임대인이다. 임대차기간은 아직 6개월이 더 남아있다. 갑은 6개월 이따가 받을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을 병에게 양도하려고 한다. 양도할 수 있을까?

 

1)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은 임대차가 끝나야 생긴다. 그런데 <사례>에서는 아직 임대차계약이 아직 종료하지 않았다. 갑은 아직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이 없다. 그러나 1년만 지나면 임대차계약이 끝나고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이 생길 것이다. 이렇게 앞으로 발생할 채권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있을까? 혹시 채권의 성질이 양도를 허용하지 않는 경우는 아닐까(제449조)?

2) 판례는 “장래의 채권도 양도 당시 기본적 채권관계가 어느 정도 확정되어 있어 그 권리의 특정이 가능하고, 가까운 장래에 발생할 것임이 상당한 정도 기대되는 경우에는 양도할 수 있다”고 한다.[각주:1]

3) <사례>에서 갑과 을 사이에 임대차계약관계라는 기본적 채권관계는 명확하다.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이란 권리도 특정할 수 있고, 임대차가 끝나면 이 채권이 발생하리라는 점을 응당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갑은 나중에 취득할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을 병에게 미리 양도할 수 있다.

 

둘째, 채권자와 채무자가 ‘우리 양도하지 말자’고 약속한 경우이다(제449조 제2항 본문). 다만, 양수인이 채권자와 채무자가 채권을 양도하지 않기로 하는 약속을 하였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양도는 유효하다(제449조 제2항 단서).

 

 

 

채권양도의 채무자에 대한 대항요건

 

제450조(지명채권양도의 대항요건) ①지명채권의 양도는 양도인이 채무자에게 통지하거나 채무자가 승낙하지 아니하면 채무자 기타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제451조(승낙, 통지의 효과) ②양도인이 양도통지만을 한 때에는 채무자는 그 통지를 받은 때까지 양도인에 대하여 생긴 사유로써 양수인에게 대항할 수 있다.

 

(지명)채권은 양도인과 양수인의 합의만으로 양도할 수 있다. 그래서 채무자는 두 사람이 진짜로 채권을 양도했는지 알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갑은 채권자 을에게 1억원을 줘야할 채무가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병이 불쑥 갑의 집을 찾아왔다. 병은 “내가 을의 1억원 채권을 넘겨받았어요. 1억원은 저한테 주면 돼요.”라고 말한다. 갑은 정말로 병에게 1억원을 줘도 괜찮은 걸까? 병이 정말로 을의 채권을 양수했을까? 혹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갑은 고민을 시작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450조가 있다. 채권을 양도하거나 양수했으면 대항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물론 양도인과 양수인이 "채권을 양도한다"는 합의만 해도 채권은 양수인에게 넘어간다. 그러나 이렇게 넘겨준 사실을 채무자에게 통지하지 않았거나 채무자가 승낙한 적이 없으면 양수인은 자기가 채권을 받은 사실을 채무자에게 주장할 수 없다. 통지나 승낙이 있어야 비로소 채무자에게 채권을 양수한 사실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자, 통지나 승낙으로 대항요건이 갖추어졌다고 해보자. 이제 양수인은 채권을 양수하였다는 사실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때부터 채무자는 변제를 양수인에게 해야 한다. 양도인에게 변제하면 제대로 된 변제가 아니다. 다시 양수인에게 변제해야 한다. 이하에서는 양도인의 통지와 채무자의 승낙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1) 양도인의 통지 

 

양도인이 채권을 양도하였으면 그 사실을 채무자에게 통지하여야 한다. 주의할 점은 채권양도 사실을 알려야 하는 사람은 양수인이 아니라 양도인이라는 사실이다. 왜일까? 양수인은 채권양도로 채권을 얻는다. 이익을 보는 사람이므로 채권을 양도받지 않았는데도 양도받았다고 '뻥'을 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양도인은 채권양도로 자신의 채권을 잃어버리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내가 채권을 양도해줬다"고 알린다면 사실일 개연성이 높다. 그래서 양수인이 아니라 양도인에게 통지하라고 정한 것이다.

 

다만, 대법원은 양수인이 채권을 양도받은 사실을 직접 채무자에게 통지할 수는 없어도, 양도인을 대리하여 통지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한다.[각주:2] 그러니 양수인이 양도인한테서 대리권을 받아 양도인의 대리인으로서 채무자에게 "채권양도를 하였다"는 내용을 통지하더라도 무방하다. 

 

채권양도는 양도인과 양수인이 합의해서 한 일이다. 이것 때문에 채무자가 불이익을 입어선 안 된다. 따라서 양도인이 채무자에게 양도통지를 하였을 때, 채무자는 그때까지 양도인에게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을, 양도통지를 받은 이후 여전히 양수인에게 주장할 수 있다(제451조 제2항).

 

[사례 – 양도통지의 효력] 갑과 을은 매매계약을 맺었다. "갑은 을에게 집을 양도하고, 을은 갑에게 5억 원을 준다"고 약정했다. 갑은 5억 원을 받을 수 있는 채권 가운데 잔금 3억 원을 받을 채권을 병에게 양도했다. 을에게 양도했다는 사실도 알렸다. 병은 을에게 잔금 3억 원의 지급을 청구하였다. 그러나 갑이 아직 집을 넘겨주지 않은 상태다. 을은 병에게 3억 원을 지급해야 하는가?

 

[해설] 양도인이 양도통지를 한 때 채무자는 그 통지를 받은 때까지 양도인에 대하여 생긴 사유를 양수인에게도 대항할 수 있다(제451조 제2항). 매도인이 집 소유권을 넘겨줘야 하는 의무와 매수인이 잔금을 지급해야하는 의무는 동시이행관계에 있다. 을은 갑한테서 양도통지를 받기 전에 이미 갑에 대한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가지고 있었다. 양도통지를 받고난 뒤에도 여전히 병에게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따라서 을은 병에게 “아직 집 소유권을 못받았는데요?”라고 하면서 3억원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

 

(2) 채무자의 승낙

 

채권양도는 양도인과 양수인 두 사람이 합의만하면 가능하다. 채무자한테 허락받아야하는 건 아니다. 그러니 사실 채무자가 채권양도를 승낙하고 말고 할 권리 따윈없다. 제450조에서 말하는 '채무자의 승낙'이란 "나 채권양도 사실을 알고 있어요"라는 걸 양도인이나 양수인에게 알려주는 것을 뜻한다. 

 

채무자는 채권양도 승낙을 할 때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의를 보류하면서 승낙할 수 있다. 말이 좀 어렵지? 가령 “제가 당신들이 채권양도한 사실은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저한테 동시이행의 항변권이 있는 건 아시죠? 저 이거 양수인한테도 주장할 겁니다.”라고 승낙하는 거다. 이러면 채무자는 이의를 보류한 사항을 여전히 양수인한테도 주장할 수 있다.

 

문제는 채무자가 이의를 보류하지 않고 승낙을 한 경우이다. 그냥 단순히 “채권양도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알려준 것이다. 이럴 때 제451조는 채무자가 양도인에게 대항할 수 있는 사유들이 있었더라도 양수인에게 주장할 수 없다고 한다. 즉, 채무자가 승낙 전까지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행사할 수 있었는데 더 이상 이걸 행사할 수 없다는 거다. 단지 이의사유를 알리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권리 자체를 박탈하는 게 가혹해보이긴 하다.

 

 

 

채권양도의 제3자에 대한 대항요건

 

제450조(지명채권양도의 대항요건) ①지명채권의 양도는 양도인이 채무자에게 통지하거나 채무자가 승낙하지 아니하면 채무자 기타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② 전항의 통지나 승낙은 확정일자있는 증서에 의하지 아니하면 채무자 이외의 제삼자에게 대항하지 못한다.

 

<사례> ⑴ 갑은 을에게 "3천 만원을 달라"고 할 수 있는 채권이 있다. ⑵ 갑은 병에게 이 3천만 원의 채권을 양도했고, 을에게 전화로 알렸다. "내가 병한테 채권 양도했어요. 나중에 병한테 3천만원 주세요~." ⑶ 그런데 갑이 또다시 이 3천만원 채권을 정에게 양도했고, 이번에는 을에게 내용증명우편을 보내어 알렸다. "내가 정한테 채권을 양도했어요. 나중에 정한테 3천만원 주세요~. 총총." ⑷ 지금 을 집의 문 앞에는 병이 와 있다. 병은 을에게 "3천만 원을 주세요."라고 요구한다. 을은 병한테 3천만 원을 줘야할까? 

 

 

위 <사례>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법 제450조 제2항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채권양도인이 채권을 한번만 양도했다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채권은 양도인과 양수인 두 사람의 합의만으로 양도할 수 있기에 현재 누가 채권을 가지고 있는지 바깥 사람들로서는 제대로 알기 어렵다. 이 점을 악용하여 양도인이 하나의 채권을 이 사람에게도 양도하기로 하고, 저 사람에게도 양도하기로 하였다. 이제 채권양수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득실득실해졌다. 채무자는 대체 누구에게 변제해야 하는가. 

 

양수인이 채권양도를 받았다는 사실을 채무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장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통지나 승낙만으로는 부족하다. 채권양도의 통지나 승낙을 확정일자 있는 증서로 해야 채무자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자신이 양수인이라는 것을 주장할 수 있다(제450조 제2항). 

 

확정일자란 증서의 작성일자에 대하여 완전한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으로 법률상 인정되는 일자이다.[각주:3] 가령 내용증명우편이나 양도통지서에 공증을 받으면 나중에 그 일자를 바꿀 수 없다. 따라서 양도통지를 내용증명우편이나 공증을 받은 양도통지서로 보내면 확정일자 있는 증서로 통지한 것이 된다.

 

 

 

위 <사례>로 돌아가보자. 병은 정보다 채권을 먼저 양수했다. 그러나 병이 양수할 때 갑은 단순통지만을 하였다. 반면 정이 양수할 때 갑은 확정일자부 통지를 했다. 병은 자신이 채권을 양도받은 사실을 정에게 대항할 수 없다. 따라서 정이 병보다 우선한다. 채무자 을은 3천만원을 정에게 갚아야 한다. 병에게 줄 필요는 없다. 

 

그런데 더 복잡한 문제를 생각해보자. 갑이 병과 정에게 각각 채권을 양도할 때 모두 확정일자부 통지를 한 경우이다. 이때는 무엇을 기준으로 우열을 판단해야 할까? 가령 아래 <사례2>를 보자. 

 

<사례2> ❶ 갑은 을에 대한 3천만원 채권이 있다. ❷ 갑은 병에게 이 3천만원 채권을 양도했다. 갑은 8월 3일 을에게 내용증명우편으로 채권양도사실을 통지했고, 이 통지는 8월 6일 을에게 도달했다. ❸ 갑은 또다시 정에게 3천만원 채권을 양도했다. 갑은 8월 4일 을에게 내용증명우편으로 채권양도사실을 통지했고, 이 통지는 8월 5일 을에게 도달했다. ❹ 을은 3천만원을 병에게 지급해야할까? 정에게 지급해야할까?

 

채권의 공시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채무자가 확정일자 있는 증서로 통지를 받았다고 하자. 채권양도 사실이 공적으로 증명된 통지를 받은 것이다. 아무래도 채무자는 채권이 양도됐다는 사실을 더 진중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이때 채권을 양수하려는 사람이 채무자를 찾아온다. 그는 여러 가지를 물어볼 것이다. 채권은 정말로 존재하는지, 별다른 항변사항은 없는지, 혹시 다른 곳에 이미 양도된 채권은 아닌지. 채무자는 채권에 대하여 현재 알고 있는 내용을 ‘아는 대로’ 설명해주게 된다. 아는 대로 설명해준다는 게 중요하다. 물권은 등기를 통하여 공시되지만, 채권의 귀속은 채무자의 입을 통해 공시된다. 채무자가 채권이 다른 사람에게 이미 양도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면, 채무자는 “다른 곳에 양도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해줄 수밖에 없다. 상대방은 별 문제 없는 줄로 믿고 채권을 양수하게 된다.

 

그러므로 확정일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채무자가 채권이 양도된 사실을 언제 알았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채권이 이중으로 양도되고, 둘 다 확정일자 있는 통지로 대항요건을 갖춘 경우에, 양수인 상호간의 우열은 확정일자의 선후가 아니라 채권양도에 대한 채무자의 인식, 즉 확정일자 있는 양도통지가 채무자에게 도달한 일시의 선후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각주:4]

 

<사례2>에서 ❶ 채권이 이중양도됐고, 양수인이 모두 확정일자부 통지요건을 갖추었다. 이때 양수인의 우열은 확정일자의 선후가 아니라 누구의 확정일자 통지가 채무자에게 먼저 도달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❷ <사례 2>에서 도달일자를 비교해보자. 정이 채권을 양도받았다는 사실에 대한 통지는 채무자에게 8월 5일 도착했고, 병이 채권을 양도받았다는 사실에 대한 통지는 8월 6일 도착했다. 따라서 정이 병보다 우선한다. ❸ 을은 3천만원을 정에게 변제해야 한다.

 

  1. 대법원 1996. 7. 30. 선고 95다7932 판결 [본문으로]
  2. 대법원 2004. 2. 13. 선고 2003다43490 판결 [본문으로]
  3. 대법원 1988. 4. 12. 선고 87다카2429 판결 [본문으로]
  4. 대법원 1994. 4. 26. 선고 93다24223 전원합의체 판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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