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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입문 : 계약법] 소멸시효① - 소멸시효 제도, 기산점, 기간

칼린츠 2021. 7. 17.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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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시효 제도

 

제162조(채권, 재산권의 소멸시효) ①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 ②채권 및 소유권 이외의 재산권은 2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

 

시효제도는 오랫동안 어떤 사실상태가 계속되는 경우 그 사실상태 대로 권리관계를 인정하는 제도이다. 시효제도에는 두 가지가 있다. 취득시효와 소멸시효이다. 취득시효는 어떤 사람이 권리자도 아닌데 권리자인 것처럼 오랫동안 그 권리를 행사한다면 권리를 취득하는 제도이고, 소멸시효는 어떤 권리자가 자신의 권리를 오랫동안 행사하지 않을 때 권리를 잃어버리는 제도이다. 취득시효는 물권법 파트에서 다루고, 여기에서는 소멸시효를 다루기로 하자.

 

소멸시효 제도는 왜 있는 걸까? 단지 어떤 권리자가 오랫동안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의 권리를 빼앗아도 좋은 걸까? 권리를 행사하고 말고는 권리자 마음인데, 왜 이걸 가지고 권리를 상실시켜버린단 말인가?

 

소멸시효 제도는 어쩔 수 없이 인정된 제도이다. 어떤 사람이 채권을 10년 넘게 행사하지 않았다면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권리가 없는 것으로 믿고, 그에게 권리가 없다는 전제에서 다른 법적 행위들을 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에게 권리행사를 할 수 있게 하면, 그동안 그에게 권리가 없다는 전제에서 쌓아올린 법률관계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게 된다. 법률관계가 전부 뒤집혀서 큰 혼란이 발생하는 것이다. 소멸시효는 세상의 평화를 위한 제도이다.

 

또한, 권리행사 기간이 너무 오래 지나버리면 법정에서 누가 진짜 권리자인지 분명히 알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두 사람이 판사 앞에서 서로 "제가 권리자입니다"라고 주장한다. 누구 말이 사실인지는 오직 신만이 정확히 알 수 있을 게다. 판사는 그저 원‧피고가 제출한 증거를 보고 ‘이 사람이 권리자일 것 같다’고 추론할 뿐이다. 그런데 세월이 오래지날 수록 증거는 점점 사라지고, 당사자의 기억도 희미해진다. 누가 권리자인지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소멸시효가 필요하다. 어떤 사람이 오랜기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면 그가 실제로 권리자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즉, 오랫동안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권리자가 아니라는 유력한 증거라는 것이다.

 

어때? 좀 납득이 되는가? 그래도 좀 찜찜하긴 하지?

 

 

 

소멸시효의 기산점과 기간 

 

제162조(채권, 재산권의 소멸시효) ①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 ②채권 및 소유권 이외의 재산권은 2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 제166조(소멸시효의 기산점) ①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한다.

 

그럼 대체 권리를 얼마나 행사하지 않아야 권리가 소멸하느냐. 그 권리가 무엇이냐에 따라 기간이 다르다. 

 

⑴ 우선, 채권의 소멸시효 기간은 원칙적으로 10년이다.[각주:1] A가 B에게서 노트북을 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10년 동안 달란 소리 안했다면 그 권리가 사라지는 것이다. 

 

모든 채권의 소멸시효 기간이 10년인 것은 아니다. 소멸시효 기간이 10년보다 더 짧은 채권이 있고, 이런 소멸시효를 ‘단기소멸시효’라고 부른다. ①상행위를 하다 발생한 상사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은 5년이다.[각주:2] ②1년 이내 기간으로 이자를 지급하기로 약정한 경우 그 이자채권, 의사의 치료비 채권, 수급인의 공사에 관한 채권, 생산자나 상인이 판매한 물건의 대가채권 등은 소멸시효 기간이 3년이다.[각주:3] ③여관의 숙박료 채권, 동산의 사용료 채권, 연예인 임금채권, 수업료 채권 등의 소멸시효 기간은 1년이다. [각주:4]

 

 

 

⑵ 그렇다면 언제부터 10년, 5년, 3년, 1년인가? 시효기간의 시작점을 기산점이라고 한다.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 진행한다.[각주:5] 소멸시효는 당신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는데도 안했기 때문에 권리를 없애버리는 제도니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부터 소멸시효 기간을 다 채우면 권리가 사라지는 것이다. 

 

판례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란 권리를 행사하는 데 법률상 장애가 없음을 의미한다고 한다.[각주:6] 그러니 권리를 행사하는 데 어떤 법적 장애사유가 있다면 시효가 아직 진행하지는 않고, 그 법적 장애가 사라졌을 때 진행하기 시작한다. 

 

가령 ① 변제기한을 정했다면 그 기한이 도래한 때부터 시효가 진행한다. A가 B에게 2025. 5. 1. 돈을 갚기로 했다면 B가 돈을 받을 수 있는 권리는 2025. 5. 1.부터 시효가 진행하기 시작한다. 물론 기한을 불확정적으로 정할 수도 있다. A가 "눈오는 날 돈을 갚겠다"라고 약속했다면 눈오는 날부터 시효가 진행한다. ② 채권의 변제기를 정하지 않았다면 채권이 성립한 때부터 시효가 진행한다. 채권의 변제기를 따로 정하지 않았다면 채권이 발생한 이후 채권자는 언제든지 채무자한테 "행사하라"고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A가 B에게 기한을 따로 정하지 않고 "5천만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면, 그 약속한 날부터 10년이 지나면 그 채권은 시효로 소멸한다. ③ (정지)조건부 권리는 그 조건이 달성된 때부터 이행을 청구할 수 있으니까, 그 조건이 성취된 때부터 시효가 진행한다. 

 

 

다만, 판례는 권리를 행사하려는데 법률상 장애가 아니라 단순히 사실상 장애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시효의 진행을 막을 수 없다고 한다. 예컨대 변제기가 2010. 1. 1.까지였는데 C가 그때부터 10년이 지날 때까지 권리행사를 안해서 채권이 시효로 소멸했다고 하자. C는 "내가 그동안 아파서 권리행사를 못했어요.", "나한테 권리가 있는지 몰랐어요"라는 핑계를 대더라도 소용없다. 사실적 장애가 있더라도 시효는 진행하기 때문이다. 

 

판례는 대체 왜 법률상 장애와 사실상 장애를 구별하는 걸까? C가 소멸시효 기간을 지키지 못한 사실적인 이유를 일일이 들어주다보면 자칫 소멸시효 기간이 무한정 늘어날 수 있고, 위와 같은 주관적 사정을 기산점으로 삼기에는 다소 모호한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었는지 없었는지'만을 따져야 기산점을 객관적이고 분명하게 확정할 수 있는 것이다.[각주:7]

 

그런데 이러한 구별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권리자에게 너무 가혹할 때가 있다. 그래서 판례는 일정한 사안에서는 사실상 장애가 있는 경우 법률상 장애에 준하는 것으로 보아 시효를 진행하지 않는다고 본다. 가령 보험금을 청구할 때 그 보험금을 달라고 할 수 있는 권리(=보험금청구권)는 보험사고가 발생한 때부터 소멸시효가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보험사고가 발생하였는지 여부가 객관적으로 분명하지 않아서 보험금청구권자가 과실없이 보험사고 발생을 알 수 없었던 경우에도 보험사고가 발생한 때부터 보험금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 해석하면 보험금청구권자에게 너무 가혹한 결과가 초래된다."면서, "객관적으로 보아 보험사고가 발생한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보험금청구권자가 보험사고의 발생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때부터 보험금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 판결했다.[각주:8]

 

[사례] 철수는 과일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철수는 2014년 1월 1일 영희한테 사과 1상자를 10만원에 팔기로 했다. 철수는 사과를 줬다. 그러나 영희는 ‘지금 당장은 돈이 없으니 나중에 주겠다’고 했다. 시간은 흘러 2017년 5월 5일이 됐다. 철수는 영희에게 ‘그때의 그 사과 값을 달라’고 요구한다. 영희는 ‘이미 내가 사과 값 줘야하는 채무의 소멸시효는 지났는데?’라고 반박한다. 영희는 철수에게 10만원을 주어야 할까?

1) 기산점 : 철수는 영희에게 매매대금채권을 행사하고 있다. 두 사람은 언제 사과 값을 주고받을지 딱히 약속한 적은 없다. 매매대금채권에 대하여 기한을 정하지 않았다. 이 경우 ‘매매대금채권이 성립한 때’ 소멸시효가 진행한다. 즉, 2014년 1월 1일에 채권의 소멸시효가 진행한다.

2) 시효기간 : 상인이 판매한 물건의 대가를 달라고 청구하는 채권의 소멸시효 기간은 3년이다(제163조 6호). 철수의 매매대금채권은 2014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3년이 지난 2016년 12월 31일 24시에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사라진다. 철수는 이때를 지나 2017년 5월 5일에 매매대금을 청구했다. 영희가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을 한 것은 타당하다. 영희는 철수에게 10만원을 줄 필요가 없다.

 

 

한편, 소유권은 소멸시효에 걸리지 않고, 소유권과 채권을 제외한 재산권은 20년의 시효에 걸린다(162조 제2항). 가령 지상권을 가지고 있는 자가 20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그 권리는 시효로 소멸한다. 

 

  1. 제162조 제1항 [본문으로]
  2. 상법 제64조 [본문으로]
  3. 민법 제163조 [본문으로]
  4. 민법 제164조 [본문으로]
  5. 민법 제166조 제1항 [본문으로]
  6. 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4다33469 판결, 대법원 2004. 4. 27. 선고 2003두10763 판결 [본문으로]
  7. 서종희, 소멸시효의 기산점에 관한 고찰, 일감법학 제37호, 2017. 6., 건국대학교 법학연구소, 218-129면 [본문으로]
  8. 대법원 2008. 11. 13. 선고 2007다19624 판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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