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기초강의

[민법입문 : 계약법] 소멸시효③ - 소멸시효의 효력

칼린츠 2021. 7. 2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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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시효의 효력

 

1. 상대적 소멸설과 절대적 소멸설의 대립

 

제162조(채권, 재산권의 소멸시효) ①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 ②채권 및 소유권 이외의 재산권은 2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
제167조(소멸시효의 소급효) 소멸시효는 그 기산일에 소급하여 효력이 생긴다.
제184조(시효의 이익의 포기 기타) ①소멸시효의 이익은 미리 포기하지 못한다.

 

당신이 채무자라고 해보자. 가령 당신은 상점에서 사과 한 박스를 샀다. "상인이 판매한 상품의 대가"를 지불할 채무의 시효기간은 3년이다.[각주:1] 당신은 용케도 3년을 버텼다! 이제 소멸시효 기간을 다 채웠다. 이때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라고 표현한다. 자, 소멸시효가 완성하면 어떤 효과가 발생할까? 당신은 곧바로 채무에서 벗어나는 걸까? 아니면 채무를 없앨 수 있는 어떤 '권리'를 얻게 된다고 보아야 할까?

 

민법은 시효기간을 다 채우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라고만 규정한다. 완성되면 뭐 어떻게 된다는 거지? 별 이야기가 없다. 법률에 구멍이 있다면 학자들이 나설 때다. 크게 두 가지 이론이 있다. 하나는 절대적 소멸설이요, 다른 하나는 상대적 소멸설이다.

 

우선, 절대적 소멸설을 주장하는 학자 K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소멸시효가 완성하면 곧바로 권리가 소멸합니다. 채무자가 무슨 행동을 할 필요없이, 소멸시효가 완성한 때부터 채무를 면하게 돼요. 구민법(일본민법)에는 '당사자가 소멸시효를 원용해야한다'는 문구가 있었지만 현행 민법을 만들면서 그런 표현을 지워버렸다구요."

 

반면, 상대적 소멸설을 주장하는 학자 L의 말을 들어보자. 그의 주장은 이렇다. "소멸시효가 완성한다고 해서 곧장 권리가 소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법적 이해관계를 갖는 사람들에게 ‘시효원용권(時效援用權)’이 생길 뿐입니다. 시효원용권을 행사하기 전까지는 채권이 아직 살아있는 것이구요, 시효원용권을 행사해야 비로소 채권이 없어집니다. 이렇게 해석하는 게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다시 학자 K가 반박한다. "상대적 소멸설은 자기네들 마음대로 '시효원용권'이란 권리를 인정해버리네요. 우리 민법에 시효원용권이란 말이 나온답니까? 근거 조문이 없는 논리에요. 오히려 민법 제369조를 보세요. 「…채권이 시효의 완성 기타 사유로 인하여 소멸한 때…」라고 하잖아요. 시효가 완성하면 채권은 바로 소멸하는 거에요."

 

그러자 L이 발끈하여 재반박한다. "민법 제184조를 보세요. 소멸시효의 이익은 미리 포기하지 못한다고 규정하죠? 거꾸로 말하면 소멸시효 이익은 시효가 완성된 뒤에 포기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건 절대적 소멸설로는 설명할 수 없어요. 절대적 소멸설이 맞다면 채무자가 어떤 의사를 표시하든 상관없이 시효가 완성됐을 때 채무는 곧장 사라져버렸어야죠. 누가 뭘 어떻게 포기합니까? 절대적 소멸설이야말로 민법 규정과 맞지 않아요."

 

자... 자... 진정들 하시라. 그렇다면 우리의 공명정대하신 대법관님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자, 판례의 태도를 살펴보자.

 

애석하게도 판례의 태도는 술취한듯 오락가락한다. 대법원은 원칙적으로 절대적 소멸설을 따르는 것 같다. 가령 대법원은 "소멸시효가 완성되면 당사자의 원용이 없어도 채무는 당연히 소멸한다."라고 했다.[각주:2] 여기까지만 보면 대법원이 평범한 절대적 소멸설 지지자인 것처럼 보인다.

 

다만, 민사소송에서는 '변론주의 원칙'이라는 게 적용된다. 변론주의란 당사자가 제출한 소송자료만으로 주요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당사자가 주장하지 않은 주요사실은 법원이 판단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 법원은 심판이기 때문이다. 중립적이어야 할 심판이 오지랖부리며 당사자가 주장하지도 않은 내용으로 판결을 쓰면 공정한 게임이 될 수 없다. 대법원은 소멸시효에도 변론주의가 적용된다고 한다. 소멸시효의 이익을 받을 자가 그 사실을 주장하여야 비로소 법원이 소멸시효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각주:3] 결국, 소송에서 소멸시효로 이기려면 "소멸시효가 완성됐어요"라고 주장을 해야한다. 상대적 소멸설과 큰 차이가 없어진다.

 

나아가 대법원은 '시효원용권'이란 개념까지 인정한다. 즉, "소멸시효를 원용할 수 있는 사람은 권리의 소멸에 의하여 직접 이익을 받는 자에 한정된다."라고 말한 것이다![각주:4] 이 표현에 따르면 소멸시효가 완성된 것만으로 채무가 없어지지 않는다. 소멸시효를 '원용'까지해야 비로소 소멸한다. 이쯤되면 실제로는 거의 상대적 소멸설에 따라 소멸시효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대법원은 소멸시효를 원용할 수 있는 사람이 "권리의 소멸에 의하여 직접 이익을 받는 자"에 한정된다고 한다. '직접 이익을 받는 자'란 누구일까? 아직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는 건 아니다. 판례는 담보물을 취득한 제3자는 여기에 해당한다고 본 적이 있다.[각주:5]). 

 

[사례] A는 B에게서 3억 원을 빌렸고, 자기 건물에 가등기담보를 설정해줬다. A는 C에게 그 건물을 매각했다. 이제 C가 이 건물의 소유자가 되었다. 이후 A가 B에게 대금을 갚아야할 채무는 소멸시효가 완성했다. C는 B에게 피담보채무가 소멸했다고 주장하며 직접 가등기 말소를 청구할 수 있을까? [대법원 1995. 7. 11. 선고 95다12446 판결]

 

 

[해결] 청구할 수 있다. 물론 돈을 빌린 사람은 A이다. 채무자는 A인 것이다. 그러니 채무자도 아닌 C도 소멸시효를 원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지가 쟁점이다. 대법원은 C와 같이 담보물을 취득한 사람도 A와 별개로 독자적인 소멸시효 원용권자로 봤다. 권리 소멸에 의해 직접 이익을 받는 자란 이유에서이다. 따라서 C는 자신의 소멸시효 원용권을 행사하고 피담보채무가 없어졌음을 이유로 B에게 담보가등기 말소를 청구할 수 있다. 

 

 

 

 

 

 

2. 소멸시효의 소급효

 

소멸시효가 완성하면 그 기산일에 소급하여 권리가 소멸하는 효과가 생긴다.[각주:6] 소멸시효 기간이 끝나면 채권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 기산일부터 없었던 것이 된다. 시효기간 동안 계속되었던 사실관계를 보호해주기 위해서다. 

 

다만,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이 소멸시효가 완성하기 전에 상계할 수 있었다면 채권자는 소멸시효 완성 후에도 상계할 수 있다.[각주:7] 예컨대 A가 B에게 100만 원 받을 채권이 있고, 100만 원 줘야할 채무도 있다고 하자. 두 채권은 상계가 가능한 상태였다. 시간이 흘러 A가 100만 원 받을 채권이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 그래도 A는 상계를 하여 자신의 채권과 채무를 없애버릴 수 있다. 민법은 두 채권이 상계할 수 있었던 것이면 당사자들은 상계된 것으로 생각하는 게 보통이므로 그 신뢰를 보호하는 것이다. 

 

 

 

3. 종속된 권리에 대한 소멸시효의 효력

 

주된 권리의 소멸시효가 완성한 때에는 종속된 권리에 그 효력이 미친다.[각주:8] 가령 C가 D한테서 1억 원을 연 5%의 이자로 빌렸다고 하자. C는 돈을 갚을 채무를 진다. 이 채무는 1억 원을 갚아야 할 원본채무와 연 5%의 이자를 갚아야 할 이자채무로 나뉜다. (D입장에서는 원본채권과 이자채권이다.) 만약 원본채무가 시효 완성으로 소멸하면 그 종속된 채무인 이자채무가 아직 소멸시효 기간이 끝나지 않았더라도 함께 소멸한다. C는 모든 채무에서 벗어난다. 

 

 

 

4. 소멸시효 이익의 포기 

 

가. 시효 기간 완성 전 포기 

 

E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채무자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채무자와 아예 "앞으로 소멸시효 주장을 포기한다."는 합의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E는 소멸시효가 완성됐는지 아닌지 신경도 안쓰도 좋지 않은가?

 

그러나 위와 같은 약정은 민법이 금지한다. 민법은 "소멸시효의 이익은 미리 포기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각주:9], "소멸시효는 법률행위에 의하여 이를 배제, 연장 또는 가중할 수는 없으나 이를 단축 또는 경감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러니 미리 소멸시효 완성을 곤란하게 하는 합의를 하면 무효다. 당사자끼리 소멸시효 적용을 배제하기로 하는 약정은 물론이고, 법으로 정해진 기간보다 더 긴 기간을 소멸시효 기간으로 하자고 합의하더라도 효력이 없다. 

 

채권자가 채무자의 궁박한 사정을 이용하여 미리 소멸시효 이익을 포기하게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약정을 금지하는 것이다. 

 

나. 시효 기간 완성 후 포기

 

민법은 소멸시효 이익을 미리 포기하지 못한다고 규정할 뿐이다.[각주:10] 뒤집어 해석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 후 소멸시효 이익을 포기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면 채무자는 소멸시효를 주장하며 충분히 채무에서 벗어날 수 있다.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채무자가 더이상 궁박한 지위에 있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채무자가 스스로 시효 이익을 포기하리고 결정했다면 그 결정은 존중해줄만 하다. 

 

소멸시효 이익을 포기하겠다는 의사표시는 반드시 명시적으로 할 필요는 없다. 소멸시효 이익을 포기하는 의사가 담긴 행위를 함으로써 묵시적으로 그 의사를 표시하더라도 무방하다. 그러니 채무자는 소멸시효가 완성한 후에 채무 일부를 변제하거나 기한 유예를 요청하는 등의 행위를 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각주:11] 묵시적으로 소멸시효 이익을 포기하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F는 채권자에게 줄 돈이 1천만 원 있었고, 소멸시효 기간은 5년이었다. 시간이 흘러 소멸시효 5년이 지났다. 그런데 F가 갑자기 돈이 생겨 500만 원을 갚았다. 이는 묵시적으로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이 된다. 다시 채권은 살아나고, 그때부터 소멸시효가 새롭게 다시 진행한다.[각주:12]

 

한가지 궁금한 게 생긴다. F가 소멸시효 이익을 포기한다는 결정을 하려면 일단 그가 채무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설마 F가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걸 알면서 돈을 갚았겠는가? 그는 아마 소멸시효가 완성됐는지도 모르고 돈을 갚았을 것이다. 이런 경우까지 시효이익을 포기했다고 봐야하나? F한테 너무 가혹한거 아니야?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대법원은 채무자가 시효완성 이후에 시효이익을 포기하는 듯한 행위를 하면 그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았던 것으로 추정해버린다. "채권이 법정기간의 경과로 소멸한다는 건 보통 일반적으로 아는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채무자가 시효완성 후에 채무의 승인을 한 때는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서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판결한 것이다.[각주:13] 그러니 F가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무 일부를 변제한 순간, 그는 소멸시효 완성을 알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묵시적으로 그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이 된다. 과연 이러한 대법원 태도가 현실과 부합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각자 소멸시효 기간은 잘 계산하자구. 

  1. 민법 제163조 제6호 [본문으로]
  2. 대법원 1966. 1. 31. 선고 65다2445 판결 [본문으로]
  3. 대법원 1979. 2. 13. 선고 78다2157 판결 [본문으로]
  4. 대법원 1992. 11. 10. 선고 92다35899 판결 등 다수 [본문으로]
  5. 대법원 1995. 7. 11. 선고 95다12446 판결 [본문으로]
  6. 민법 제167조 [본문으로]
  7. 민법 제495조 [본문으로]
  8. 민법 제183조 [본문으로]
  9. 민법 제184조 제1항 [본문으로]
  10. 민법 제184조 제1항 [본문으로]
  11. 대법원 1965. 11. 30. 선고 65다1996 판결, 대법원 1967. 2. 7. 선고 66다2173 판결, 대법원 1965. 12. 28. 선고 65다2133 판결 [본문으로]
  12. 대법원 2009. 7. 9. 2009다14340 판결 [본문으로]
  13. 대법원 1967. 2. 7. 선고 66다2173 판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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