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기초강의

[민법입문 : 계약법] 소멸시효② - 소멸시효의 중단

칼린츠 2021. 7. 18.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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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시효의 중단

 

168(소멸시효의 중단사유) 소멸시효는 다음 각호의 사유로 인하여 중단된다.
1. 청구
2. 압류 또는 가압류, 가처분
3. 승인

 

A가 B에게 돈을 달라는 채권을 행사하지 않고 있다. 일반 채권이어서 그 소멸시효 기간이 10년이라고 하자.[각주:1] 변제기에서 9년이 지났고, 남은 시효기간은 1년이다. A는 B가 돈을 안 줄까봐 슬슬 불안하기 시작한다. 그대로 10년을 채우면 채권은 소멸하여 A는 영영 돈을 못받게 된다. 이럴 때 A는 채권의 소멸시효 진행을 중단시켜야 한다. 시효 진행이 중단하면 그때까지 시효진행은 없었던 것이 된다. 소멸시효는 새롭게 시작하고 다시 10년을 채워야 소멸시효가 완성된다.[각주:2]

 

어떻게 해야 소멸시효 진행을 중단시킬 수 있을까? 권리자가 의무자에게 청구, 압류‧가압류‧가처분을 하거나, 의무자가 '의무가 있다'고 승인하면 중단된다.[각주:3]

 

 

 

⑴ '청구'는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제168조 제1호). 돈 받을 사람이 돈 달라고 하는 것, 물건을 받을 사람이 물건 달라고 하는 것이다. 다만 민법은 '청구'의 유형을 몇가지로 나누어 각각 따로 시효중단 요건을 정한다.[각주:4] 청구는 소송으로 해야 가장 확실한 효과가 있다. 소를 제기해서 청구하는 것을 '재판상 청구'라고 한다. 재판상 청구를 하면 시효는 중단된다. 즉, A가 법원에 "B는 나에게 돈을 달라"는 소를 제기하면 소를 제기한 때부터 시효가 중단되고, A와 B가 지지고 볶는 소송기간 내내 중단이 계속된다. 그리고 마침내 A가 승소판결을 받으면 판결이 확정된 때부터 소멸시효가 다시 진행한다.[각주:5] 이때 5년짜리, 3년짜리 단기시효 채권이라도, 판결확정 후에는 소멸시효 기간이 10년으로 늘어난다(제165조).

그런데 만약 A가 먼저 소송을 제기한 것이 아니라, A가 B한테서 소제기를 '당한 것'이라고 해보자. A는 B한테 돈을 빌려주고, B가 가진 건물에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그런데 B가 "나는 A한테서 돈을 빌린 적이 없다. 근저당권을 말소하라"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A는 적극적으로 응소했다. "무슨 소리냐. 나는 돈 빌려줬다. 나는 채권이 있다."고 반박했다. 법원은 A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B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처럼 A가 먼저 소송을 제기한 건 아니지만, 상대방이 제기한 소에 응소하여 승소한 것도 '재판상 청구'가 될 수 있을까? 예전 대법원은 재판상 청구가 아니라고 했다. A가 그저 상대방이 제기한 소에 응하여 자기 채권을 주장한 것은 '항변'에 불과한 것이지, A가 상대방에게 자신의 권리를 '청구'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1993년도 전원합의체 판결로 입장을 바꿨다. 이제는 상대방이 제기한 소에 응소하여 적극적으로 권리의 존재를 주장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진 경우도 '재판상 청구'에 포함된다고 보고 있다.[각주:6] 권리자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권리 위에서 잠자는 자'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바뀐 판례에 따르면 A가 응소하여 승소하였다면 소멸시효가 중단되고, 판결 확정시부터 시효가 다시 진행한다. 

 

그런데 소송을 하고 승소판결이 나와야 소멸시효가 중단된다. 각하판결, 패소판결(기각판결)을 받거나 소 취하를 했다면, 시효는 중단되지 않는다(제170조). 이 경우에는 6개월 안에 재판상 청구를 또다시 하거나, 압류‧가압류‧가처분 등을 해야 비로소 최초로 재판상 청구를 한 때에 시효가 중단되는 것으로 본다(제170조 제2항).

 

반면, 소송으로 청구를 하지 않고, 그냥 A가 직접 B에게 "돈을 달라", "물건을 달라"고 청구할 수도 있다. 이것을 ‘최고(催告)’라고 한다. 재판상 청구에 비하면 최고의 효력은 대단히 임시적이다. 최고를 하면 6개월 안에 재판상 청구, 압류‧가압류‧가처분 등을 해야만 시효중단의 효력이 생긴다. 그렇지 않고 그냥 6개월을 지나면 시효중단 효력이 없다. 돈 받을 채권자가 우편으로 내용증명을 보내며 “돈을 주세요”라고 할 때가 있다. 이것도 소송으로 청구를 한 것이 아니라서 최고의 효력밖에 없다. 주의하자. 

 

[문제] A가 B한테서 5천만 원 받을 돈이 있다. 그런데 이 채권의 소멸시효가 2020. 2. 1. 완성할 예정이다. A는 부랴부랴 2020. 1. 5. B에게 "5천만 원을 달라"고 청구했다. B가 묵묵부답이다. 다시 2020. 5. 1. "5천만 원 내놔"라고 청구했다. B는 여전히 돈을 갚지 않는다. A는 이제 화가나서 2020. 12. 3. 법원에 "B는 나에게 5천만 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B는 A의 채권이 시효로 소멸했다고 주장한다. B의 말이 맞을까?

[해설] A는 소를 제기하지 않은 채 소송 외에서 청구를 했다. 그러니 최고의 효력밖에 없다. A는 2020. 1. 5. 최고를 했다. 그 이후 6개월 안인 2020. 5. 1. 최고를 했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6개월 안에 재판상 청구, 압류‧가압류‧가처분 등 더 적극적인 조치를 해야만 시효중단의 효력이 생긴다. 그러나 A는 2020. 11. 1.까지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니, 채권은 시효로 소멸한다. A가 뒤늦게 2020. 12. 3.에서야 재판상 청구를 하더라도 이미 채권이 소멸한 상태이니 소용이 없다. 

 

 

 

⑵ '압류'는 금전채권 만족을 위해 확정판결과 같은 집행권원에 기하여 강제집행의 첫 단계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채무자가 강제집행의 대상이 되는 재산을 처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가압류·가처분'은 아직 집행권원이 없는 상태에서 하는 강제집행 보전처분이다. 압류, 가압류, 가처분은 권리자가 권리를 실행하겠다는 의사를 강하게 표출하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시효중단 사유가 된다. 

 

⑶ '승인'은 시효로 이익을 얻을 사람이 시효로 권리를 잃어버리게 될 사람에게 '그 권리를 인정한다'고 표시하는 것을 말한다. 가령 채무자 C가 채권자 D에게 "나는 당신의 권리를 인정한다"고 말했다면 그때부터 소멸시효는 중단되고 시효기간은 새롭게 진행한다. 채무자가 승인을 하였다면 권리자가 권리를 행사하지 않더라도 권리 행사를 게을리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권리관계의 존재도 명백하다.[각주:7] 그러니 승인을 소멸시효 중단사유로 인정한 것이다. 

 

승인을 반드시 명시적으로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 묵시적으로 승인을 하여도 상관없다.[각주:8] 만약 C가 D에게 "변제기한을 늦춰달라~"고 부탁했거나, 기존 채무를 위해 새롭게 담보를 제공했거나, 채무 일부를 변제했다면, 어쨌든 자신이 D에게 채무를 가지고 있다는 사정을 묵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때부터 시효가 중단된다. 

 
  1. 민법 제162조 제1항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 [본문으로]
  2. 민법 제178조 제1항 [본문으로]
  3. 민법 제168조 [본문으로]
  4. 재판상 청구(170조), 파산절차 참가(171조), 지급명령(172조), 화해신청과 임의출석(173조), 최고(174조) [본문으로]
  5. 민법 제178조 제2항 [본문으로]
  6. 대법원 1993. 12. 21. 선고 92다47861 판결 [본문으로]
  7. 곽윤직·김재형, 민법총칙 제9판, 박영사, 443면 [본문으로]
  8. 대법원 2000. 4. 25. 선고 98다63193 등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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