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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입문 : 물권법] 실체관계에 부합하는 등기법리, 중간생략등기

칼린츠 2022. 11. 22.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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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관계에 부합하는 등기의 법리

 

등기는 물권행위 내용을 정확히 반영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저당권설정합의를 했는데 엉뚱하게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면 소유권이전등기는 무효이다. 등기권리자는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한다.

 

 

 

다만, 판례는 등기 내용이 진짜 합의한 내용과 다르거나 등기절차에 하자가 있더라도 살짝 눈감아 준다. 그 등기가 현재 권리관계와 일치하기만 한다면 그 등기도 유효하다고 보는 것이다.

 

① 가령 A가 자신의 미등기 부동산을 B에게 매도했다. 원래대로라면 A가 자기 이름으로 소유권보존등기를 하고 B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 B 이름으로 곧장 소유권보존등기를 하였다. 대법원은 B의 보존등기가 실체관계에 부합하여 유효하다고 판시했다.[각주:1] 어차피 B가 소유자이고, 등기도 B가 소유자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② C가 D의 서류를 위조하여 자기 앞으로 아파트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그 이후 C가 실제로 D와 계약을 맺고 아파트 소유권을 취득했다. C가 이미 한 등기내용대로 소유권을 정말로 획득한 것이다. 대법원은 이런 소유권이전등기도 실체관계에 부합하여 유효하다고 했다.[각주:2] 어차피 C가 진짜 소유자이고 등기도 C가 소유자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간생략등기

 

⑴ 의의

 

실체관계에 부합하는 등기 법리와 관련하여 중간생략등기의 문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중간생략등기는 말 그대로 중간과정을 생략한 등기이다. 예컨대 같은 부동산을 갑이 을에게, 을은 병에게 순차로 매도하였다고 하자. 원래대로라면 갑이 을에게 이전등기를, 을이 병에게 이전등기를 마쳐주어야 한다. 하지만 중간 등기들을 다 생략해버리고 병이 갑에게서 곧장 소유권이전을 받은 것처럼 이전등기를 마쳤다. 이와 같은 병의 등기를 중간생략등기라고 한다.

 

 

⑵ 중간생략등기의 위법성

 

물론 중간생략등기는 불법이다. 대부분 각종 세금을 면탈하고 폭리를 얻는 부동산투기 수단으로 악용된다. 그래서 국가는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을 만들어 중간생략등기를 금지한다(동법 제4조, 제6조).[각주:3] 이를 위반하면 처벌을 받는데, 심하면 징역형까지 받을 수 있다(동법 제9조 1호, 10조 참조).

 

 

⑶ 중간생략등기의 효력

 

중간생략등기가 위법하더라도 일단 중간생략등기가 이루어졌다고 해보자. 등기는 유효한 걸까? 아니면 아예 무효인걸까? 대법원은 중간생략등기가 이미 마쳐졌으면 ‘중간생략등기를 하자’는 당사자들의 합의가 없더라도 등기가 유효하다고 한다.[각주:4] 위 사례에서 갑이 을에게, 을은 병에게 부동산을 팔았다. 만약 갑이 을과 합의 없이 곧장 병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넘겨줬다고 하자. 대법원에 따르면 이러한 등기도 유효하다. 병은 소유권을 취득한다.

 

사실 중간생략등기는 실체관계에 부합한다. 갑과 을, 을과 병 사이의 매매계약이 각각 유효하다면 병은 실제로 소유권을 얻을 수 있는 지위에 있다. 병의 소유권이전등기는 현재의 권리관계를 그대로 공시한다. 굳이 병이 얻은 중간생략등기를 무효라고 볼 필요까지는 없다. 함부로 등기를 무효로 해버리면 이를 기초로 쌓아올린 다른 권리관계들이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법적 안전을 해친다. 대법원이 가급적 등기의 효력을 무효로 보는 것을 자제하려는 이유다.

 

 

⑷ 중간생략등기청구권 인정여부

 

한편, 병이 아직 등기를 마치지 못한 상태라면 직접 갑에게 “을을 거치지 말고 곧장 나한테 소유권이전등기를 해달라”고 청구할 수 있을까? 이른바 ‘중간생략등기청구권’을 인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판례는 갑, 을, 병 전원의 합의가 있어야 병이 중간생략등기를 청구할 수 있다고 한다.[각주:5] 만약 을이 “나는 중간생략등기로 이전등기를 하는 것이 싫다”라고 동의하지 않는다면 병은 갑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청구할 수 없다. 정상적으로 되돌아가, 갑은 을에게, 을은 병에게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순차로 마쳐 주어야 한다.

 

왜 전원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걸까? 중간생략등기는 서로가 서로에 대한 변제를 어떤 방식으로 처리할까의 문제다. 갑이 자신의 채권자인 을이 아니라 엉뚱하게 병에게 등기를 이전하면서도 을에 대한 채무를 이행하는 것으로 하려면 당연히 을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갑과 병이 중간생략등기를 하자고 합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을 또한 여기에 합의를 해야하는 것이다. 병은 이러한 중간생략등기 합의에 기초하여 갑에게 등기를 청구할 수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⑸ 등기청구권의 양도

 

등기를 하려면 매도인과 매수인이 등기관에게 함께 신청해야 한다. 따라서 매수인이 소유권이전등기를 하려면 매도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등기신청 절차를 도와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등기청구권이라고 한다.

 

당연히 을은 갑에게 등기청구권을 가진다. 을은 이 등기청구권을 병에게 양도할 수 있을까? 대법원은 ‘매매로 생긴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은 그 성질상 양도가 제한되고, 그 양도를 갑에게 대항하려면 갑의 승낙이나 동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각주:6] 

 

 

원래 채권양도를 채무자에게 대항하려면 양도인이 채무자에게 달랑 ‘나 양도했어요~’라고 통지만 하면 된다.[각주:7] 그래서 원래대로라면 을이 병에게 등기청구권을 양도하면서 그 채무자인 갑에게 ‘나 등기청구권 양도했습니다’라고 통지만 하면 병이 갑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해달라고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기존 판례가 무색해진다. 대법원은 중간생략등기청구를 하기 위해서는 갑을 포함하여 관계당사자 전원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중간생략등기청구권의 양도를 자유롭게 허용하면 갑의 동의 없이도 중간생략등기청구를 허용하는 결과가 된다. 그래서 대법원이 갑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⑹ 소결

 

먼 길을 돌아왔다. 판례의 입장을 정리하자면, 일단 병 앞으로 중간생략등기가 마쳐졌다면 실체적 권리관계에 부합하는 등기이므로 유효하다. 관계당사자 전원의 합의가 없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병이 갑에게 중간생략등기를 청구하려면 관계당사자 전원의 합의가 필요하다. 을이 등기청구권을 병에게 양도하는 경우 갑의 동의나 승낙이 있어야만 그 양도를 대항할 수 있다.

 

 

  1. 대법원 1995. 12. 26. 선고 94다44675 판결 [본문으로]
  2. 대법원 1994. 6. 28. 선고 93다55777 판결 [본문으로]
  3. 제4조(검인신청에 대한 특례)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받을 것을 내용으로 제2조제1항 각호의 계약을 체결한 자는 그 부동산에 대하여 다시 제3자와 소유권이전을 내용으로 하는 계약이나 제3자에게 계약당사자의 지위를 이전하는 계약을 체결하고자 할 때에는 먼저 체결된 계약의 계약서에 제3조의 규정에 의한 검인을 받아야 한다. 제6조(등기원인 허위기재등의 금지) 제2조의 규정에 의하여 소유권이전등기를 신청하여야 할 자는 그 등기를 신청함에 있어서 등기신청서에 등기원인을 허위로 기재하여 신청하거나 소유권이전등기외의 등기를 신청하여서는 아니된다. [본문으로]
  4. 대법원 1979. 7. 10. 선고 79다847 판결 [본문으로]
  5. 대법원 1994. 5. 24. 선고 93다47738 판결, 대법원 2005. 9. 29. 선고 2003다40651 판결 [본문으로]
  6. 대법원 2001. 10. 9. 선고 2000다51216 판결 [본문으로]
  7. 민법 제450조 제1항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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