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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입문 : 물권법] 물권의 변동 - 부동산 물권변동

칼린츠 2022. 9. 4.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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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권의 변동 - 부동산 물권변동

 

‘물권의 변동’이란 물권의 발생·변경·소멸을 통틀어 말한다. 예컨대 A가 어떤 빌라를 신축하여 소유권을 취득했다. 그는 B에게 그 빌라를 매각하여 소유권을 양도했다. B는 여기에 저당권이란 담보물권을 설정하여 돈을 빌렸다. 이후 B가 빚을 다 갚고, 저당권도 말소했다. 이 모든 것이 물권이 변동하는 모습들이다.

 

민법은 부동산 물권 변동을 크게 두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당사자가 자신의 ‘의사’로 물권을 발생, 변경, 소멸시키는 것이다. 이걸 ‘법률행위에 의한 물권변동’이라 부른다. 다른 하나는 당사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법률 규정에 따라 물권이 발생, 변경, 소멸되는 것이다. 이건 ‘법률규정에 의한 물권변동’이라 부른다. 자세하게 살펴보자.

 

 

 

2. 법률행위에 의한 물권변동

 

A와 B는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A는 B에게 아파트를 매도하기로 했다. 이제 A는 B에게 아파트 소유권를 넘겨주어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과연 A가 B에게 ‘어떻게’ 소유권을 넘겨주어야 하는가이다. 민법 제186조에 따르면 ‘물권행위(물권변동을 가져오는 법률행위)+등기’가 있어야 물권이 변동한다.

 

민법 제186조(부동산물권변동의 효력) 부동산에 관한 법률행위로 인한 물권의 득실변경은 등기하여야 그 효력이 생긴다.

 

 

⑴ 물권행위

 

물권행위는 물권변동을 가져오는 법률행위이다. 내가 법학을 공부하면서 제일 아리송했던 말이 물권행위란 용어였다. 물론 한국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뭘 두고 물권행위라 부르는 것인지를 모르겠더라. 아무리 현학적인 말이라도 현실에 적용될 수 없는 말이라면 말짱 도루묵 아닌가. 이해를 돕기 위해 A와 B의 매매계약 체결과 이행과정을 슬로우 비디오로 되짚어보자.

 

[사례]

① A와 B가 1990. 5. 1.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A는 B에게 건물 소유권을 이전하기로 했고, B는 A에게 매매대금 5억원을 주기로 했다. ② B는 1990. 6. 1. A에게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4억원을 줬다. ③ A는 1990. 7. 1. B한테 나머지 잔금 1억원을 받으면서 동시에 소유권이전에 필요한 서류를 줬다. ④ B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A와 B가 매매계약을 체결한 것만으로 A의 소유권은 B에게 넘어가지 않는다. A와 B가 체결한 매매계약은 A에게 그저 ‘건물 소유권을 B에게 양도하기로 한다’는 의무만 발생시킬 뿐이다. A가 B에게 소유권을 넘기려면 매매계약 말고 또다른 합의를 해야 한다. A와 B가 ‘건물 소유권을 B에게 양도한다’는 합의를 별도로 해야 B에게 소유권이 넘어가는 것이다. 물론 이런 합의를 명시적으로 하는 경우는 드물다. 아마 A가 B한테 소유권이전에 필요한 서류를 교부하였을 때, 즉 ③번의 행동을 할 때 알게 모르게 A와 B가 그런 합의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좀 감이 오는가? 민법 학자들은 A가 B에게 물권을 넘기는 것을 단순한 사실행위로 보지 않는다. ‘A가 B에게 권리를 양도하기로 한다’는 합의와는 별개로 ‘A가 B에게 권리를 양도한다’는 또다른 합의가 있다고 본다. 그저 권리를 양도해야하는 의무만을 발생시키는 앞의 합의는 ‘채권행위’에 속한다. 직접 물권을 변동시켜버리는 뒤의 합의는 ‘물권행위’에 해당한다. 법률행위는 채권행위와 물권행위로 나눌 수 있다.

 

‘물권행위’라는 개념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현실에서 채권계약을 언제하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난다. 부동산거래를 예로들면 당사자들이 ‘부동산매매계약서’와 같은 계약서를 작성한다. 그러나 물권행위를 할 때 계약서를 별도로 쓰지 않는다. 민법학자들도 그저 “부동산등기서류를 넘기는 과정에서 그런 합의가 묵시적으로 있겠거니...”라고 말할 뿐이다. 채권행위와 물권행위가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당신이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를 떠올려보라. 계산대에 사고 싶은 물건을 올려놓고 돈을 지불하면 거래가 끝난다. 어디서부터가 물건을 사고 팔기로 약정하는 채권행위이고, 어디까지가 물건과 돈의 소유권을 양도하는 물권행위란 말인가? 둘은 한 데 뒤엉켜 부지불식간에 한꺼번에 처리된다.

 

물권행위는 현실에서 잘 보이지 않는데다 복잡한 문제만 일으킨다. 학자들 중에는 물권행위를 골칫덩어리로 생각하는 학자도 있다. 그런 학자들은 “아듀 물권행위”라며 물권행위에 작별을 고하고 물권행위를 저 세상으로 보내버린다.[각주:1] 그러나 물권행위란 개념은 복잡해도 필요하다. 물권행위와 채권행위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채권행위를 할 때는 목적물의 처분권한이 필요없다. 가령 나는 내 물건이 아닌 동생물건에 대해서도 상대방과 파는 계약을 맺을 수 있다. 이걸 타인권리 매매라고 한다. 민법 제569조는 이런 매매계약도 유효하다고 한다. 반면 물권행위를 하려면 목적물의 처분권한이 필요하다. 당연한 소리다. 내가 소유권을 양도해주려면 실제로 내게 소유권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내 동생물건을 제3자에게 팔기로 매매계약을 하면, 그 계약 자체는 유효하지만, 그 계약에 따라 동생물건의 소유권을 이전해주려면 동생한테서 그 물건의 소유권을 취득한 다음 제3자에게 양도해야한다.

 

이처럼 채권행위와 물권행위는 다르다. 그 관계는 어떻게 될까. 만약 채권행위가 무효·취소되었다고 하자. 물권행위도 채권행위를 따라 소멸하게 될까? 가령 A가 B에게 아파트를 매도하려는 계약(채권행위)를 하였고, 그에 따라 A가 B에게 아파트 소유권을 양도하였다(물권행위). 만약 소유권양도행위 자체에는 취소사유가 없는데, A와 B의 계약과정에만 취소사유가 있어 A가 계약을 취소했다고 하자. 그러면 소유권양도행위, 즉 물권행위도 소급적으로 소멸하냐는 것이다. 두가지 입장 대립이 있다. 채권행위가 소멸하면 물권행위도 당연히 소멸한다는 학설이다. 이걸 ‘유인성설’이라 부른다. 반대로 채권행위가 소멸해도 물권행위는 독자적으로 생존한다는 학설도 있다. 이걸 ‘무인성설’이라 부른다.

 

물권법 교과서를 정독해본 사람은 안다. 교과서에는 이 논쟁을 아주 피튀기게 설명한다. 마치 물권법의 큰 줄기를 결정하는 대단히 심각한 쟁점처럼 묘사한다. 그러나 유인성설과 무인성설은 현실에서 별 쓸모가 없다. 물권행위는 멀쩡한데 채권행위에만 흠이 있는 경우가 대단히 드물기 때문이다. 탁상공론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판례의 입장만 체크하고 넘어가자. 판례는 ‘우리 법제가 물권행위 무인성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고 하여 유인성을 인정한다[각주:2]. 판례에 따를 때 A가 매매계약을 취소하면 A가 한 물권행위도 덩달아 효력을 잃는다. B에게 넘어갔던 아파트 소유권은 그대로 A에게 되돌아온다.

 

 

 

⑵ 등기

 

민법 제186조에 따르면 물권행위만으로는 물권변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등기까지 마쳐야 한다. ‘등기’ 또는 ‘부동산등기’란 등기관이 등기부라는 매체에 부동산 권리관계를 적어놓은 기록을 말한다. 아래 그림처럼 생겼다. 여기에서 ‘갑구’란에는 최초 소유자부터 현재 소유자까지 언제 어떤 원인으로 소유권이 발생하고 이전되어 왔는지가 적혀있다. ‘을구’란에는 소유권 이외에 다른 권리(주로 담보물권)에 관한 사항이 적혀 있다. 이 등기부는 누구나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으므로 해당 부동산 권리관계는 등기를 통해 널리 공시된다.

 

 

위 [사례]에서 ③단계에서는 A와 B 사이에 물권행위(물권적 합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소유권이전등기는 마치지 않은 상황이다. B 앞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④단계에 와서야 부동산 소유권은 비로소 B에게 넘어간다. 이처럼 물권이 변동되면 공시방법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공시의 원칙’이라 부른다.

 

민법 제186조 제1항과 제187조는 물권행위와 공시방법(등기나 점유)가 모두 갖추어져야 물권이 변동한다고 규정한다. 이런 법제를 ‘성립요건주의’라고 부른다. A와 B가 “우리 이 물건의 소유권을 양도하기로 하자”고 합의한 것만으로 부족하다. 부동산이라면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야만 비로소 소유권이 넘어간다. 물권변동에는 ‘물권행위+등기’가 필요하다. 등기를 해야만 물권변동이 성립하는 것이다.

 

모든 나라가 이런 법제를 가진 건 아니다. ‘대항요건주의’를 취하는 나라도 있다. 가령 일본 민법에 따르면 A와 B가 소유권을 양도하는 합의를 하는 것만으로도 소유권이 넘어간다. 다만 소유권을 취득한 B가 제3자인 C에게 ‘나 소유권 있다’고 주장하려면 등기를 해야한다. 등기는 소유권을 제3자에게 주장하기 위한 ‘대항요건’인 셈이다. (등기제도 관한 추가 내용은 다음에 서술)

 

 

 

3. 법률행위에 의하지 않은 부동산 물권변동

 

부동산 물권변동은 당사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법률 규정에 의해 일어날 수도 있다. 일단 제187조를 읽어보자. 법률행위가 아니라, 상속, 공용징수, 판결[각주:3], 경매와 같이 법률 규정으로 물권변동이 일어나는 경우라면 등기 없이도 부동산 물권변동이 일어난다(제187조 본문).

 

제187조(등기를 요하지 아니하는 부동산물권취득) 상속, 공용징수, 판결, 경매 기타 법률의 규정에 의한 부동산에 관한 물권의 취득은 등기를 요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등기를 하지 아니하면 이를 처분하지 못한다.

 

예컨대 A가 땅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망했다. A의 상속인은 B가 있다. 민법 제1005조에 따르면 망인이 사망한 때부터 상속인은 그 재산에 관한 포괄적 권리의무를 승계한다.[각주:4] 이처럼 법률 규정에 따라 물권이 변동되는 경우에는 B가 굳이 소유권이전등기를 하지 않아도 곧장 소유권을 취득한다. B가 자신이 상속받았다는 사실을 몰라도 상관없다. A가 사망하는 순간 B는 소유권을 취득한다. 다만 B가 그 토지를 처분할 때에는 일단 자기 앞으로 등기를 한 다음에야 할 수 있다(제187조 단서).[각주:5]

 

참고로 제187조가 말하는 ‘판결’이란 형성판결을 말한다.[각주:6] 이행판결문은 이런 식이다. “피고는 원고에게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하라.” 이행판결은 피고가 원고에게 판결문에 따라 무엇인가를 해야하는 이행의 문제를 남긴다. 반면 형성판결은 그 자체로 물권변동을 일으킨다. 공유물분할판결이 대표적인 예다. 공유물분할소송을 하면 “A부분은 갑의 소유로, B부분은 을의 소유로 이 토지를 분할한다”는 판결문이 나온다. 이 판결 자체로 토지가 곧장 분할된다. 그래서 제187조는 형성판결이 있을 때 굳이 등기를 하지 않아도 판결만으로 권리가 변동한다고 규정하는 것이다.

  1. 명순구 외, 아듀 물권행위, 고려대학교출판부, 2006. 12. 5. [본문으로]
  2. 대법원 1977. 5. 24. 선고 75다1394 판결 [본문으로]
  3. 형성판결(사해행위취소판결, 상속재산분할판결)을 말하고, 경매는 공경매를 말한다. [본문으로]
  4. 제1005조(상속과 포괄적 권리의무의 승계) 상속인은 상속개시된 때로부터 피상속인의 재산에 관한 포괄적 권리의무를 승계한다. 그러나 피상속인의 일신에 전속한 것은 그러하지 아니하다. [본문으로]
  5. 하지만 대법원은 실체적 권리관계에 부합하는 등기가 적법한 등기의 효력을 가진다고 보아 많은 예외를 인정한다. 예컨대 미등기부동산 양수인이 양도인과 합의하여 양수인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를 하더라도 유효라고 본다. (대법원 1995. 12. 26. 선고 94다44675 판결 [본문으로]
  6. 대법원 1998. 7. 28. 선고 96다50025 판결 등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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