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기초강의

[민법입문 : 불법행위법] 일반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책임

칼린츠 2023. 6. 29.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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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불법행위책임은 제750조가 규정한다. 어떤 사람은 고의나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가했다면 손해배상책임을 진다. 돈을 물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제750조를 뜯어보면 일반불법행위책임의 성립요건이 나온다. 다음과 같다.

 

제750조(불법행위의 내용)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⑴ 첫째, 어떤 사람이 불법행위를 고의나 과실로 해야 한다. 쉽게 말해, 불법행위를 일부러 했으면 고의고, 실수로 했으면 과실이다.

 

참고로 대법원은 고의란 “ 일정한 결과가 발생하리라는 것을 알면서 감히 이를 행하는 심리상태”라고 정의했고[각주:1], 과실이란 “통상적인 사람을 기준으로 하여 마땅히 하여야 할 의무를 태만이 하였거나, 또는 하지 아니하면 아니될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를 말한다”고 했다.[각주:2]

 

말이 좀 어렵지? 원래 법률가들이 말을 좀 어렵게 한다. 그런데 공부를 계속하다보면 그렇게 말을 어렵게 하게되는 이유를 알게 된다. 그 이유를 슬슬 깨닫게 된다면 당신도 차츰 법학의 고수가 된다. 

 

형사재판은 국가가 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해 하는 재판이다. ‘이 사람이 나쁜 놈이냐, 착한 놈이냐’가 중요하다. 원칙적으로 고의범을 처벌하고, 과실범은 풀어주는 까닭이 여기있다. 그 놈이 실수(과실)로 나쁜 결과를 일으킨 것이라면 어느 정도 참작해줄 여지가 있지만, 일부러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면 정말로 나쁜 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형사재판에서는 이 사람에게 고의가 있었느냐를 가지고 치열하게 다툰다. 가령 A는 B의 100억짜리 도자기를 실수로 떨어뜨렸다. 와장창. 산산조각이 났다. 형법 제366조는 다른 사람의 재물을 손괴하면 처벌받는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A는 처벌받지 않는다. 재물손괴죄는 과실범을 처벌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민사재판은 ‘누가 나쁜 놈이냐’를 가르는 재판이 아니다. 그저 “어떤 사고로 피해자가 손해를 입었는데, 이걸 누가 책임져야 하느냐”를 정하는 재판이다. 개인들 간의 분쟁에서 그 책임 소재가 누구에게 있는지를 따지는 재판이다.

 

피해자가 100억원의 손해를 입었다. 판사님이 “가해자가 고의로 한 것은 아니니까 손해를 물어줄 책임이 없다.”고 판결하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그 말은 피해자가 모든 손해를 뒤집어 쓰라는 말이다. 그냥 “운이 나쁘다고 생각하세요~”랑 뭐가 다른가?

 

그러니 민사소송에서는 과실로 불법행위를 일으켜 손해를 입혔어도 손해배상책임을 진다(제750조). A가 B의 100억짜리 도자기를 고의로 깨뜨렸든, 과실로 깨뜨렸든, A는 B가 입은 손해를 갚아줘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해자에게 고의나 과실이 있다는 사실을 누가 입증해야 하는지는 중요한 문제다. 당신이 나한테 맞았다고 해보자. 내가 당신을 때린 것에 고의나 과실이 있다는 걸 피해자인 당신이 증명해야 할까, 가해자인 내가 증명해야 할까?

 

이건 손해배상청구 성패에 큰 영향을 미친다. 왜냐면 고의나 과실은 마음 속 사정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일부러 그랬는지, 실수로 그랬는지 분명하지 않을 때는 넘쳐난다. 민법 제750조에 따르면 피해자가 가해자의 고의나 과실을 입증해야 한다. 따라서 "가해자한테 고의가 있는거야, 없는거야?" 불확실하다면 피해자가 불이익을 뒤집어 쓴다. 가해자의 고의는 증명되지 않았으므로 피해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예컨대 옆 집에서 불이났고, 그 불이 당신 집까지 옮겨붙었다. 당신의 집은 전부 홀랑 타버렸다. 그런데 옆 집에서 난 불이 옆 집 주인아저씨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으로 생긴 것인지 불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 옆 집 주인에게 불법행위책임을 근거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화재원인이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불이 난 건 알겠는데, 그게 옆 집 아저씨의 고의나 과실로 인해 발생한 것인지가 증명되지 않는 것이다.

 

이 점에서 채무불이행책임이 권리를 행사하는 쪽에 조금 더 유리하다. 채무불이행책임을 묻기 위해서 채권자는 그저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증명하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채무자의 고의나 과실까지 증명할 필요는 없다. 반면, 불법행위책임을 묻기 위해서 피해자는 가해자의 고의나 과실까지 증명해야 한다. 따라서 손해배상을 받고 싶을 때 불법행위보다는 채무불이행을 근거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게 아무래도 더 유리하다.

 

 

 

⑵ 둘째, 가해자의 행위는 위법해야 한다. 위법하다는 것은 전체 법질서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다른 사람의 권리나 법익을 침해하는 행위는 위법하다. 물론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한 것인지 아닌지 헷갈릴 때가 있다. 가령 언론이 공무원의 비리를 보도했다고 하자. 공무원의 명예가 실추됐다. 그렇다면 언론은 공무원의 인격권을 침해한 걸까? 언론은 공무원의 비리를 보도할 때마다 손해배상을 해야할까?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위법한 것일까?

 

불법행위 유형은 다양하다. 모든 불법행위에 적용할 수 있는 마법과 같은 위법성 판단기준은 없다. 대법원도 위법성을 “문제 되는 행위마다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각주:3] 그러면서 명예훼손, 법관의 잘못된 재판, 증권회사 임직원의 투자권유 등 각 영역별로 나름대로 특유한 위법성 판단기준을 정립해왔다. 예컨대 대법원은 언론매체가 보도를 하여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였더라도, 그것이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항이고 그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일 때에는 그 보도내용이 진실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행위자가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었고 그렇게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위법성이 없다고 한다.[각주:4] 예) 정치인 A는 자기의 명예를 훼손할만한 잘못된 보도내용을 보고 격분했다. A는 그 방송국을 상대로 “내 명예가 훼손되었다”며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방송국은 위와 같은 요건이 있음을 증명하면 그 보도내용이 위법하지 않은 것이 되니, 손해배상책임을 지지 않게 된다.

 

다른 사람의 재산권을 침해했어도 당연히 위법행위가 된다. 따라서 누군가의 배타적 권리인 물권을 침해하면 위법하다. A가 B의 자동차를 훔치거나, 파손하거나, 몰래 팔아버리는 것 모두 B의 자동차가 지닌 사용가치나 교환가치를 훼손하여 소유권을 침해하는 행동이다. 그럼 물권은 그렇다 치고, 채권을 침해하는 것도 위법한 행위가 될 수 있을까? 왜냐하면 채권은 상대권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 채권을 침해하였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한다면 채권관계에 있지도 않은 사람에게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어어… 채권은 상대권이라면서? 이 결론은 채권의 성질에 어긋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실제 사례가 있다. A는 공연기획자다. 그는 마이클 잭슨 내한공연을 주관했다. 공연허가를 받았다. 공연의 입장권을 판매하기 위해 B은행과 입장권판매대행계약을 체결했다. 그러자 C시민단체가 나섰다. “이 공연 왜 이렇게 비싸냐! 이걸 전부다 외화로 준다니! 외화낭비다! 청소년의 과소비를 조장한다!” C시민단체는 이런 이유로 공연반대운동을 했다. 그 일환으로 B은행에게 “입장권 판매를 취소해라. 안 그러면 B 은행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는 공문을 보냈다. 사실상 협박이었다. B은행은 무서워서 A에게 입장권판매대행계약을 취소하겠다고 했다. A는 C시민단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주장했다. “우씨. C시민단체 때문에 B은행이 채무이행을 못했잖아요. C시민단체는 내 채권을 침해하여 손해를 입혔어요. 손해배상을 해주세요.”

 

물론, B은행이 채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니 A는 B은행에게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제390조). 이 소송에서 독특한 점은 그렇게 ‘채무자’에게 손해배상을 해달라고 청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채무자로 하여금 채무이행을 못하게 만든 ‘제3자’에게 손해를 배상해달라고 청구했다.

 

대법원은 제3자의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했다. “시민단체가 은행에 계약을 이행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은행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면서 경제적 압박수단을 고지했다. 그로 인해 은행이 본의 하니게 계약을 파기하게 만들었다. 이는 공연기획사가 은행에 대해 가지는 채권을 위법하게 침해한 것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각주:5]

 

채권은 상대권이다. 채무자에게만 행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제3자가 내 채권을 위법하게 침해했을 때 그에게 불법행위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채권 또한 채권자가 누려야 할 법적 이익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민법 제750조의 요건만 들어맞는다면 채권자는 제3자에게 불법행위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보는 판례의 태도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⑶ 셋째, 피해자가 손해를 입었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피해자가 손해를 입지도 않았는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없지 않은가. 손해는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다. 다만, 제갈량이 천하삼분지계를 외쳤듯이, 불법행위 손해배상에서도 손해를 세가지로 나누는 게 가장 유용하다.

 

손해는 크게 재산적 손해와 정신적 손해로 나눠볼 수 있다. 그리고 재산적 손해를 적극적 손해와 소극적 손해로 구별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적극적 손해, 소극적 손해, 정신적 손해로 갈라볼 수 있는 것이다. ① 적극적 손해란 불법행위로 피해자에게 현재 생긴 손해다. ② 소극적 손해란 피해자가 당연히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있었는데, 불법행위를 당하는 바람에 얻지 못하게 된 손해를 말한다. ⑶ 정신적 손해는 불법행위로 피해자가 입은 고통, 슬픔을 말한다.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금을 위자료라고 한다.

 

손해 재산적 손해 적극적 손해
소극적 손해
정신적 손해(위자료)

 

교통사고를 당한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A가 길을 가다가 차에 치여 큰 상해를 입었다. ⑴ 치료비로 3천만원이 나왔다. 이것이 적극적 손해다. ⑵ 한편, A는 잘나가는 변호사였다. 병원입원을 하는 바람에 입원기간동안 일을 할 수 없었다. 월 1천만원씩은 벌 수 있었는데 못벌게 된 손해를 입었다(법률용어로 이걸 ‘일실수익’이라 부른다). 이것이 소극적 손해다. ⑶ A는 이 사고로 후유증이 생겼고 정서적으로 괴로움과 고통을 느꼈다. 대략 6백만원 정도의 고통이다. 이것이 정신적 손해이다.

 

⑷ 넷째, 가해자의 위법행위와 피해자가 입은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가해자의 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손해를 입어야 한다. 어찌보면 당연한 소리다. 가해자가 위법행위를 하였으나 피해자가 전혀 엉뚱한 원인으로 손해를 입었다면, 가해자가 책임질 이유가 없다.

 

앞의 예를 다시 떠올려보자. A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허리를 다쳤다. 치료비로 3천만원이 나왔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그 치료비 안에는 어깨치료비 1천만원이 포함되어 있다. 알고보니 A는 교통사고 전에 이미 어깨를 다친 적이 있었다. 교통사고로 다친 허리를 치료하면서 예전부터 앓던 어깨를 함께 치료한 것이었다. 이처럼 사고 전부터 피해자가 이미 가지고 있었던 질병이나 증상을 ‘기왕증’이라고 한다. 기왕증은 불법행위로 생긴 손해가 아니다. 인과관계가 없다. 3천만원 중에서 어깨치료비 1천만원은 빼고 나머지 2천만원만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손해다. 가해자는 2천만원만 물어주면 충분하다.

 

지금까지 일반불법행위 제750조의 요건을 살펴보았다. 뒤에는 특수불법행위가 나올 것이다. 특수불법행위라고 하더라도 제750조와 전혀 다른 내용이 아니다. 기본 뼈대는 제750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유사함을 느끼면서, 세부적인 차이점만 비교하면 이해하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1. 대법원 2002. 7. 12. 선고 2001다46440 판결 [본문으로]
  2. 대법원 1979. 12. 26. 선고 79다1843 판결 [본문으로]
  3. 대법원 2001. 2. 9. 선고 99다55434 판결; 대법원 2003. 6. 27. 선고 2001다734 판결 등 [본문으로]
  4. 대법원 2008. 4. 24. 선고 2006다53214 판결 [본문으로]
  5. 대법원 2001. 7. 13. 선고 98다51091 판결. 원문을 조금 가다듬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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