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이 읽어보라고 주신 판결이 있다. <대법원 2014.07.24. 선고 2012다62318 판결>이다. 아무리 읽어봐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문헌을 찾아봤는데, 아직 평석은 없는 것 같다.
이 판결의 사실관계는 대충 이렇다. 보험약관은 '계약 후 알릴 의무'를 정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보험계약 체결 후 피보험자가 이륜자동차를 직접 사용하게 된 경우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는 회사에 알려야 하고, 뚜렷한 위험의 증가와 관련된 이러한 알릴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회사는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피보험자는 보험계약한 다음에 이륜자동차를 타게 되었으면서도 보험회사에 알리지 않았다. 아래에서 보듯, 대법원은 상법 제652조의 통지의무를 위반하였다고 판시했다.
즉, 오토바이 운전을 알리지 않았으니, 통지의무를 위반했다는 거다. 황당한 건 그 다음 내용이다.
보험회사가 계약자에게 '당신이 통지의무를 위반했으니, 보험계약을 해지하겠다'라고 말했다. 당연히 계약자는 '당신이 이 통지의무에 대해 설명한 적이 없다'고 다투었을 거다. 보험회사가 설명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그 설명의무의 대상이 되는 약관조항은 계약 내용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계약자가 통지의무를 위반하면 보험자는 해지할 수 있다'는 약관 규정이 계약 내용으로 편입되지 않으면 계약자에게 유리하다. 계약자가 통지의무를 위반해도 보험회사는 계약을 해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약자가 '보험회사가 설명의무를 위반했습니다'라고 주장한 거다.
그러나 이 판결은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
원고의 이 부분 상고이유는 이 사건 제2보험계약 보통약관의 계약 후 알릴 의무 조항은 피고의 설명의무 위반으로 위 보험계약의 내용이 되지 아니하므로 위 약관조항에 정한 알릴 의무 위반은 인정될 수 없다는 취지이나, 위 약관조항은 상법 제652조 제1항의 통지의무를 구체화하여 규정한 것으로 앞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제2보험계약에 있어서 상법 제652조 제1항에 정한 통지의무 위반이 인정되는 이상, 설령 원심의 이 부분 판단에 그 주장과 같은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판결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으므로, 이 부분 상고이유는 더 나아가 살펴 볼 필요 없이 이유 없다."
재미있는 판결이다. 보험회사가 설명의무를 위반했어도, 이건 판결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왜? 설명의무를 위반하면 '약관'의 효력이 배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법'에 따라 발생하는 해지권은 막을 수 없다. 따라서 보험회사가 약관 내용을 설명하지 않았어도, 상법상 통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해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 판결에 따르면 사실상 약관 규제법의 설명의무 조항은 무력화된다. 보험회사는 설명의무를 위반해 놓고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 우리가 설명의무를 위반했어? 이제 '약관'에 따른 해지를 할 순 없겠군. 그럼 '상법'에 근거해서 해지권을 행사할게."
과연 위와 같은 판례의 태도가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향후 대법원의 입장을 지켜봐야 겠다.
참고로, '이륜차를 운전한다는 사실을 통지하지 않았다면, 보험회사는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약관 조항을 많이 둔다. 보험회사는 보험계약을 체결할 때 이 약관 조항 내용을 미리 계약자에게 설명해야 한다. 즉, 이 약관 조항은 설명의무의 대상이다. 이 점을 밝힌 <대법원 2010.03.25. 선고 2009다91316,91323 판결>을 덧붙여 둔다.
일반적으로 보험자 및 보험계약의 체결 또는 모집에 종사하는 자는 보험계약의 체결에 있어서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에게 보험약관에 기재되어 있는 보험상품의 내용, 보험료율의 체계 및 보험청약서상 기재사항의 변동사항 등 보험계약의 중요한 내용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상세한 명시·설명의무를 진다 할 것인데, 다만 이러한 명시·설명의무가 인정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보험계약자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약관의 중요한 사항이 계약내용으로 되어 보험계약자가 예측하지 못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것을 피하고자 하는 데에 그 근거가 있으므로, 약관에 정하여진 사항이라고 하더라도 거래상 일반적이고 공통된 것이어서 보험계약자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내용이거나 별도의 설명 없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사항이거나 이미 법령에 의하여 정하여진 것을 되풀이하거나 부연하는 정도에 불과한 사항이라면, 그러한 사항에 대해서까지 보험자에게 명시·설명의무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와 같이 보험자에게 명시·설명의무가 면제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보험자가 이러한 보험약관의 명시·설명의무에 위반하여 보험계약을 체결한 때에는 그 약관의 내용을 보험계약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다 할 것이다( 대법원 2007. 4. 27. 선고 2006다87453 판결 등 참조).
기록에 의하면, 보험계약자이자 피보험자인 망인이 이 사건 약관조항의 내용을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이 사건 보험계약 체결 당시 망인에 대하여 이륜자동차 운전을 제외한 직업 또는 직무에 해당하는 상해급수가 적용되었기에 그 후 망인이 이륜자동차를 직접 사용하게 된 경우에는 사고발생의 위험이 현저하게 변경 또는 증가된 경우에 해당하여 원고에게 지체 없이 통지하여야 한다는 점은 원고가 보험계약 체결 당시 이를 명시하여 설명하지 않는다면 망인으로서는 이를 예상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므로, 이 사건 약관조항의 내용이 단순히 법령에 의하여 정하여진 것을 되풀이하거나 부연하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없고, 따라서 이 사건 약관조항에 대한 원고의 명시·설명의무가 면제된다고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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