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기초강의

[민법입문:계약법] 계약의 성립 : 청약과 승낙

칼린츠 2019. 9. 8.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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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을 만드는 마법의 공식이 있다


534(변경을 가한 승낙) 승낙자가 청약에 대하여 조건을 붙이거나 변경을 가하여 승낙한 때에는 그 청약의 거절과 동시에 새로 청약한 것으로 본다.


계약은 법적인 약속이다. 두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의 의사가 결합하여 만들어진다. 책을 사고파는 계약이 어떻게 체결되는지 생각해보자. 책을 파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제안한다. “이 민법 교과서를 단돈 만원에 사지 않으실래요?” 그러자 상대방이 답한다. “좋아요.”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에서 합의가 이루어진다. ‘민법 교과서를 만원에 사고판다는 내용의 계약이 탄생한 것이다


여기서 민법 교과서를 만원에 사지 않으실래요?”는 청약이다. 청약이러저러한 내용으로 계약을 하자는 의사표시를 말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좋아요라고 답한 것은 승낙이다. 승낙은 상대방의 청약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의사표시이다. 청약과 승낙이 합치하면 계약이 성립한다. 청약+승낙=계약. 이것이 바로 계약을 만드는 마법의 공식이다.

 


청약

 

청약은 승낙만 있으면 계약이 바로 성립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확정적이어야 한다. 청약 안에는 계약의 본질적인 내용은 다 들어있거나 적어도 본질적인 내용을 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은 있어야 한다.[각주:1] 예컨대 매매계약을 제안하려고 한다면 그 청약 안에 사고 파는 물건이 무엇인지, 가격은 얼마로 할 건지와 같은 내용은 들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청약만으로 우리가 체결하려는 매매의 골격이 갖춰진다. 남은 것은 상대방의 승낙뿐이다.


청약과 청약의 유인은 다르다. 청약당신이 승낙만해주면 바로 계약을 체결하겠다는 확실한 의사표시다. 청약의 유인은 상대방을 살살 꼬셔서, ‘당신이 이런 식으로 나에게 청약하지 않겠소?’라고 상대방의 청약을 유인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광고다


⑴ 내가 알바생을 시켜 각종 중고서적을 만원에 팝니다라고 적은 전단지를 길에 뿌리게 했다고 하자. 이건 청약이 아니다. 행인이 길거리에서 땅에 떨어진 전단지를 주우면서 승낙할래요라고 하더라도 계약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⑵ 전단지를 받은 사람이 나에게 직접 와서 전단지 보고 왔는데요. 저는 「민법교과서」을 만원에 사고 싶어요라고 제안한다면 그 제안이 비로소 청약이다. 내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 그제서야 계약이 성립한다. 상품진열대에 상품을 올려놓은 것, 기차시간표를 나눠주는 것, 분양광고를 하는 것 등도 청약의 유인에 해당한다. 그것 자체는 계약을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유도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청약과 청약의 유인을 구별하는 까닭이 있다. 계약의 내용이 되는 건 청약의 유인(광고전단지)이 아니라 청약(당신의 제안)에 담긴 내용이다. 광고전단지에 “「민법교과서」 만원에 팝니다라고 써놨어도, 당신이 그 책을 9천원에 사고싶어요라고 청약하고, 내가 거기에 승낙했다면, 리의 계약은 「민법교과서」 9천원에 사고파는 것이 된다.

 


승낙과 합의


승낙은 계약의 또다른 재료다. 승낙은 청약을 받은 사람이 한다. 물론, 청약을 받았다고 반드시 승낙해야하는 건 아니다. 승낙을 할지 말지는 모든 사람의 자유다. 계약자유의 원칙 때문이다. 다만 승낙은 청약자가 요구한 내용이 100가지라면 그 100가지를 전부 수락하는 형식으로 해야 한다. 나는 "「민법교과서」를 2만원에 팔겠다"고 청약했는데, 당신은 "1만원에 사겠다"는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면서 승낙했다면, 둘 사이에 아직 합의가 성립하지 않은 것이다.[각주:2] 서로는 의견이 맞을 때까지 계약 내용을 조정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조금씩 내용을 고친 청약을 주고 받다가, 어느 순간 마음이 맞아 상대의 제안을 완벽히 승낙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결국, 승낙은 청약을 100퍼센트 받아들이는 내용일 수밖에 없다. 청약과 승낙은 데칼코마니가 된다. 청약이 곧 승낙이요, 승낙이 곧 청약인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이처럼 청약과 승낙이 합체하여 한 몸이 되는 것이 합의


왜 청약과 승낙은 똑같아야 할까. 계약은 힘이 있기 때문이다. 계약은 우리를 지배하고 구속한다. 이것해라 저것해라 명령한다. 위반하면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다면 계약이 가진 힘의 정당성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당사자가 그 계약을 합의했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너가 약속한 것이니 응당 지켜야 한다'는 거다. 자기가 한 결정에 자기가 구속받는다. 계약이야말로 사적자치의 핵심수단이다. 


물론 사람들이 합의를 항상 명시적으로 하는 건 아니다. “우리 이러저러한 계약을 체결할까요라면서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는 오히려 드물다. 부지불식간에 합의를 해버리는 경우가 태반이다. 택시를 탈 때를 생각해보자. 도로에서 팔을 흔들면 손님 앞에 택시가 선다. 손님은 택시에 탑승하여 목적지를 말한다. 이제 택시가 출발한다. 촌스럽게 우리 택시 이용계약을 맺읍시다라고 제안하는 경우는 없다. 별도로 계약서를 작성하지도 않는다. 그저 손님이 택시에 오르고, 택시운전기사는 목적지로 출발하면서, 서로는 자연스럽게 묵시적으로 청약과 승낙의 의사를 주고받는다. 마트에서 물건을 살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저 바구니에 상품을 담아 계산대 위에 올려놓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묵시적으로 상품을 사고파는 매매계약이 체결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계약을 체결한다.[각주:3] 

 


계약서가 계약성립의 요건은 아니다

 

누구나 계약의 자유가 있다. 그러니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도 당사자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 꼭 계약서를 써야만 계약이 체결되는 건 아니다. 말로만 계약을 맺어도 계약이다. 그러니 마음에도 없으면서 "내가 밥 산다"는 공수표를 남발하지 말자. 자칫, 고지식한 상대방이 "계약을 이행하라"며 청구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합의 방식이 특별히 정해지지 않은 계약을 유식한 말로 불요식계약이라 한다. 민법에는 의사표시에 방식을 요구하는 규정이 없다. 민법에 나오는 모든 계약은 불요식계약이다.)


계약서를 쓰지 않고도 계약할 수 있는데 왜 사람들을 계약서를 쓰는 걸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지만 우리가 말로 합의한 것들은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계약을 체결할 때에야 상대방과 “형‧동생”할 정도로 친하더라도 내일 일은 모른다. 언제든지 사이가 틀어질 수 있다. 상대방이 “나는 그런 계약을 맺은 적이 없는데?”라며 괘씸하게 오리발을 내민다면, 분노의 멱살잡이를 시전하는 대신 계약서를 내놓자. 계약서는 ‘우리가 이러저러한 내용으로 계약을 했다’는 사실을 가장 확실하게 증명하는 자료다. 


소송에서도 계약서는 매우 유용하다. 판례는 계약서를 ‘처분문서’라고 하여 매우 강력한 증거로 취급한다. 당사자가 그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면, 그들이 계약서 내용대로 계약을 하였다고 추정해버린다.[각주:4] 예를 들어 계약서에 "우리 민법책을 9천원에 사고팔기로 한다"고 적혀있다고 하자. 그 계약서가 아무 문제없이 작성된 것이라면, 법원은 민법책 가격을 9천원으로 추정한다는 거다. 만일 계약서에 적힌 내용에도 불구하고 한쪽이 "실제로는 1만원에 팔기로 했다"고 주장하려면, 1만원에 합의했다는 사실을 그 사람이 증명해야 한다. 여러 증거를 대야할 게다. 녹록치 않다. 


 

  1. 대법원 2017. 5. 30. 선고 2015다34437 판결 [본문으로]
  2. 민법 제534조(변경을 가한 승낙) 승낙자가 청약에 대하여 조건을 붙이거나 변경을 가하여 승낙한 때에는 그 청약의 거절과 동시에 새로 청약한 것으로 본다. [본문으로]
  3. 제532조(의사실현에 의한 계약성립) 청약자의 의사표시나 관습에 의하여 승낙의 통지가 필요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계약은 승낙의 의사표시로 인정되는 사실이 있는 때에 성립한다. [본문으로]
  4. 대법원 1988. 9. 27. 선고 87다카422 판결 “처분문서란 그에 의하여 증명하려고 하는 법률상의 행위가 그 문서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어느 문서가 처분문서인가의 여부는 입증사항이나 취지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고 실제로 처분문서라고 인정되고 그것의 진정성립이 인정되면 작성자가 거기에 기재된 법률상의 행위를 한 것이 직접 증명된다 하겠으나 그때에도 당시의 능력이나 의사의 흠결이 없었다거나 그의 행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것 등은 별도의 판단문제인 것이고 작성자의 행위를 해석함에 있어서는 경험칙과 논리칙에 반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자유로운 심증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므로 그 문서들을 원심이 소론과 다르게 해석하여 원심의 사실인정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도 정당하여 소론과 같은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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