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기초강의

[민법입문:계약법] 법률행위

칼린츠 2019. 10. 6.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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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행위란 무엇인가

 

계약이 무엇인지를 대충 알았으니, 이제 민법에서 가장 중요한 용어를 설명할까한다. 바로 법률행위라는 용어이다. 민법 교과서를 펼쳐보면 초반부터 이 말이 심심치않게 등장한다. 일단 한국민법의 끝판왕, 민법만렙 곽윤직 교수님의 설명부터 들어보자.

 

법률행위는 일정한 법률효과의 발생을 목적으로 하는 하나 또는 여러 개의 의사표시를 없어서는 안 되는 꼭 필요한 요소로 하는 법률요건이다.[각주:1]

 

이 문장은 법학 초심자를 충격과 공포에 빠트리게 만든다. 대체 뭔 소리란 말인가. 한국말로 쓰여있지만 저게 과연 한국말인가. 위 구절을 한번 읽으면 눈 앞이 컴컴해지고, 두번 읽으면 다리가 후들거리며, 세번 읽으면 마침내 민법책을 조용히 덮고야마는 비극적인 경험을 맞게 된다. 그리고 탄식에 젖는다. “, 내가 민법을 버린 것이 아니라 민법이 나를 버린 것이다.”

 

포기하지 말자. 법률행위에 속하는 것 중 하나가 계약이다. 우선 계약의 구조부터 뜯어보자. 계약은 청약과 승낙이 모여 만들어진다. 계약이 성립하면 그 내용에 따른 채권과 채무가 생긴다. 법률행위는 이처럼 의사표시를 재료로 만들어진다. 법률행위는 법률효과를 낳는다. 이걸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아직 아리송하지? 계약의 가장 큰 특징이 뭔가. 바로 당사자가 의사표시한대로 법적 효과가 생긴다는 거다. 책을 파는 사람이 "나는 <민법책>을 당신에게 팔고, 1만5천원을 받겠다"고 청약했다. 책을 사는 사람은 그것을 승낙했다. 이제 그 의사표시 내용대로 효과가 생긴다. 책을 파는 사람은 <민법책>을 넘겨줘야할 채무를 진다. 동시에 1만 5천원을 달라고 할 수 있는 채권을 얻는다.

 

(참고로 내 생각을 모두 표시한다고 모두 민법에서 말하는 의사표시인 것은 아니다. 민법의 의사표시는 '이러저러한 법적 효과를 일으키겠다'는 내용의 의사표시만을 말한다. 즉, 법적 효과를 일으키겠다는 의사표시만을 말하는 거다. 책을 파는 사람이 책을 팔겠다는 청약을 하였을 때 그에 따라 권리를 얻고 의무를 지겠다는 의사를 담고 있으니 민법의 의사표시다.)

 

의사표시대로 법적인 효과가 일어나는 건 계약만이 아니다. 뒤에서 배우겠지만 취소권, 해제권, 해지권과 같은 형성권을 행사하는 경우도 비슷하다. "나는 이 계약을 취소하겠다"고 의사표시하면 그 내용대로 계약은 취소된다. 유언도 마찬가지다. "나는 첫째 아들에게 재산의 절반을 물려주겠다"고 유언하면 그 내용대로 재산의 절반이 장남에게 돌아간다.

 

 

이처럼 의사표시를 하면 그 내용대로 법적 효과가 생기는 경우들이 많다. 의사표시의 개수는 하나일수도, 여러개일 수도 있다. ① 유언을 하거나 취소권해제권해지권을 행사할 때는 한 사람만 의사표시를 하면 그대로 법적 효과가 일어난다. 이때는 의사표시가 하나다. ② 두 사람이나 그 이상이 모여 서로 의사표시를 주고받아 합의를 하고, 그 합의를 서로 지키자고 할 때도 있다. 이때는 의사표시가 두 개 이상이다. 의사표시가 하나일 때를 단독행위, 두개 이상일 때를 계약이라 부른다.

 

단독행위든 계약이든 어쨌든 공통점이 있다. 의사표시대로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 그렇다면 이 둘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법리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또, 이 둘을 함께 설명할 필요가 있을 때는 동시에 설명하는 게 훨씬 편하지 않을까?

 

그래서 민법에 나오는 용어가 '법률행위'이다. 법률행위는 어려운 낱말이 아니다. 그저 계약과 단독행위를 한꺼번에 부르는 말이다. 비유하자면 말, , 고양이, 사람, , 캥거루, 코끼리, 고래 등등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우니 포유류란 말로 퉁쳐서 부르는 것과 똑같다. 그러니 앞으로 민법책에서 법률행위란 말을 만나더라도 쫄지 말자. 어차피 계약이나 단독행위를 추상적으로 퉁쳐서 부르는 말에 불과하다. 일단 크게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법률행위계약으로, ‘의사표시청약으로 바꿔 읽자. 책 내용이 명확히 이해되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으리라. 어이, 당신. 못 믿겠다는 표정인데? 좋다. 내가 예를 보여주겠다.

 

<예: 대법원 1996. 3. 26 선고 93다55487 판결문 일부>
“법률행위의 내용의 중요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 의사표시의 동기에 착오가 있는 경우에는 당사자가 그 동기를 의사표시의 내용으로 삼았을 때에 한하여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

→ ‘법률행위’를 ‘계약’으로, ‘의사표시’를 ‘청약’으로 수정 :
“계약 내용의 중요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청약을 취소할 수 있다. 청약의 동기에 착오가 있는 경우에는 청약자가 그 동기를 청약의 내용으로 삼았을 때에 한하여 청약을 취소할 수 있다.” 어때 한결 이해하기 편하지?

 

 

태초에 의사표시가 있었다

 

우주의 탄생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하시니 빛이 생겼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고 어둠을 밤이라 불렀다. 그러자 각각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었다. 이윽고 하나님은 말씀으로 하늘, 땅, 바다, 풀, 채소, 나무, 별, 생물을 만들었다. 모두 하나님이 "있으라"하시니 생긴 것들이었다. 만물은 말씀에서 비롯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었고, 인간은 그 땅위에서 법률효과를 만들고 있다. 조물주가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였듯이, 인간도 말로써 법적 효과를 만든다. 우리는 지금도 법률적 효과를 갖는 말들을 흩뿌린다. "제가 그거 살게요(매매계약)", "제가 그거 빌리려구요(대여계약)", "제가 그거 그냥 드릴게요(증여계약)", "그 계약 취소하고 싶은데요(취소권 행사)", "이거 환불해주세요(해제권 행사)". 이 모든 말들은 구체적인 법적 효과를 낳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태초에 의사표시가 있었다.'

 

유재석이 부른 노래가 있다. 말하는 대로. 민법의 근본 이념은 사적 자치다. 그러니 법률행위는 소중한 개념이다. 우리는 의사표시를 한다. 그 내용대로 법률효과가 생긴다. 멋지지 않은가. 말하는 대로다. 법률행위를 통해 민법의 근본 이념이 실현된다. 법률행위는 민법의 자유주의적인 기본 토대가 유지되도록 돕는다.

 

 

 

<: 대법원 1996. 3. 26 선고 9355487 판결문 일부>

법률행위의 내용의 중요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 의사표시의 동기에 착오가 있는 경우에는 당사자가 그 동기를 의사표시의 내용으로 삼았을 때에 한하여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

법률행위계약으로, ‘의사표시청약으로 수정 : “계약 내용의 중요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청약을 취소할 수 있다. 청약의 동기에 착오가 있는 경우에는 청약자가 그 동기를 청약의 내용으로 삼았을 때에 한하여 청약을 취소할 수 있다.” 어때 한결 이해하기 편하지?

 

  1. 민법총칙 제9, 곽윤직, p.25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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