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기초강의

[민법입문:계약법] 채무불이행② - 이행지체

칼린츠 2020. 2. 22.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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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지체란 무엇인가

 

제387조(이행기와 이행지체) ①채무이행의 확정한 기한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는 기한이 도래한 때로부터 지체책임이 있다. 채무이행의 불확정한 기한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는 기한이 도래함을 안 때로부터 지체책임이 있다. ②채무이행의 기한이 없는 경우에는 채무자는 이행청구를 받은 때로부터 지체책임이 있다.

 

돈을 받을 날짜가 됐다. 상대방은 천하태평이다. "마, 임마 내가 돈 떼먹겠냐"며 큰 소리친다. 어차피 돈은 갚겠으니, 좀 늦어도 뭔 대수냐는 식이다. 그러나 채무는 제때 이행해야 한다. 약속한 기일이 지나면 채권자는 빌려준 돈을 다른 곳에 활용하지 못한다. 무시할 수 없는 손해다. 이처럼 채무자가 고의·과실로 채무를 제때 이행하지 않는 걸 이행지체라고 한다.

 

이행지체는 이행불능과 더불어 채무불이행 유형의 쌍두마차다. 현실에서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구체적인 모습이야 다양할 수 있다. 그래도 대부분은 이제 채무를 이행할 수 없게 되었거나(이행불능) 이행할 수 있는데도 이행하지 않는 경우(이행지체)이다.

 

 

 

이행기를 어떻게 정했는지에 따라 이행지체가 되는 날이 다르다

 

채무를 이행해야하는 날을 ‘이행기(변제기)’라 한다. 이행기는 채무의 종류마다 다르다. 그에 따라 이행지체가 성립하는 날도 다르다.

 

제387조(이행기와 이행지체) ①채무이행의 확정한 기한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는 기한이 도래한 때로부터 지체책임이 있다. 채무이행의 불확정한 기한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는 기한이 도래함을 안 때로부터 지체책임이 있다.
②채무이행의 기한이 없는 경우에는 채무자는 이행청구를 받은 때로부터 지체책임이 있다.

 

⑴ 먼저, ‘확정기한부 채무’ 있다. 당사자가 채무를 이행할 날을 확실히 정한 경우다. 가령 A가 B에게 “돈을 2020. 3. 3.까지 갚겠어요”라고 약속하였다면 확정기한부 채무다. 이때 채무자 A는 확정기한일까지 채무를 이행해야 한다. 그날이 되었는데도 이행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이행지체가 된다(제387조 제1항 1문).

 

[사례] 갑은 을에게서 3천만원을 빌렸다. 갑은 2017년 3월 1일까지 그 돈을 갚기로 했다. 갑이 2017년 3월 1일까지 돈을 갚지 않으면 그 다음날인 3월 2일부터 이행지체에 빠진다.

 

⑵ 다음으로 ‘불확정기한부 채무’ 있다. 채무를 언제까지 이행해야하는 기한이 있기는 한데, 그 시점이 확실하지 않은 경우다. 예컨대 A가 B에게 “공사대금을 1층 골조공사가 완료하면 주겠다”고 약속했다. 1층 골조공사가 언제 완료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니 불확정기한부 채무다. 대법원은 불확정한 사실이 발생한 때를 이행기한으로 정한 경우 그 사실이 발생한 경우는 물론, 그 사실 발생이 불가능하게 된 때에도 이행기한이 도래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각주:1] 따라서 1층 골조공사가 완성되었거나, 그 공사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 때 이행기가 도래한다.

 

이렇게 불확정기한이 도래했다면 채무자는 기한이 도래한 사실을 안 날에 채무를 이행해야 한다. 이행하지 않으면 다음날부터 이행지체에 빠진다(제387조 제1항 2문).

 

[사례] 갑은 을과 “을의 아버지가 사망하면 3천만원을 주겠다”고 계약을 맺었다. 을의 아버지는 2017년 3월 1일에 사망했다. 갑은 2017년 3월 3일에 그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도 갑은 3천만원을 주지 않고 있다. 갑의 채무는 2017년 3월 1일이 이행기한이 도래한다. 하지만 갑이 이행기간이 지났다는 사실을 2017년 3월 3일에 알았다. 그 날까지 돈을 갚지 않으면 2017년 3월 4일부터 이행지체에 빠진다. 3월 1일이 이행기한이지만 갑이 이행지체 책임을 지는 날은 3월 4일부터라는 점에 주의하자. 

⑶ 끝으로 ‘기한을 정하지 않은 채무’도 있다. A가 B에게 기간 약정 없이 3백만 원을 빌려준 경우다. 이때는 채무자가 이행청구를 받은 날 채무를 이행해야 한다. 이행하지 않으면 그 다음날부터 이행지체가 된다(제387조 제2항).

 

[사례] 계약이 아니라 법률 규정에 따라 채무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A의 계좌에 B가 돈 5천만 원을 잘못 입금했다. 이때 A는 B와 계약을 맺은 건 아니지만, 민법 제741조에 따라 이 돈을 돌려줘야 할 부당이득반환의무를 진다.[각주:2] 이처럼 당사자의 약정없이 법률 규정에 근거하여 채무를 부담하는 경우 당연히 그 채무에 이행기한을 정할 틈이 없다. A는 B한테서 이행청구를 받은 다음날부터 이행지체에 빠진다.

 

다만, 불법행위를 하여 손해배상채무를 지는 경우는 조금 다르다. 당신이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면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야한다. 이것도 당신이 피해자와 계약을 맺어서 생긴 채무가 아니라, 민법 제750조에 따라 부담하는 채무다. '이행기를 정하지 않은 채무'이다. 원칙대로라면 가해자인 당신이 이행청구를 받으면 그 다음날부터 이행지체에 빠져야 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가해자가 불법행위를 한 바로 그날부터 손해배상의무를 이행해야 하고, 바로 그 날부터 당장 이행지체가 성립한다고 한다. 피해자가 굳이 이행청구를 하지 않아도 이행지체에 빠진단다.[각주:3] 피해자가 가급적 손해배상을 빠르게 받을 수 있도록 하여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기한의 이익은 채무자에게 있다

 

멋진 말인 거 같은데 뭔 소리냐고? 이행기가 정해져 있으면 채무자는 덕을 본다. 이행기가 될 때까지는 채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기한의 이익은 채무자에게 있다”는 말은 채무자가 가지는 이러한 이익은 보호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아직 이행기한이 도래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채권자는 채무자에게 “채무를 이행해주쇼”라고 요구할 수 없다.


채무자에게 이행기한을 주는 것은 채무자를 믿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채무를 이행하지 않더라도 기한이 되기 전까지는 약속을 지킬 것이라 신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믿음이 깨진 상태까지도 채무자가 계속 기한까지 보호받는다면 부당하다. 그래서 민법은 두가지 경우 채무자가 더이상 기한의 이익을 주장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이때 채권자는 기한이 도래하길 기다리지 않고 곧장 채무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채무자가 채무이행을 하지 않으면 이행지체가 된다.

 

채무자는 다음 각호의 경우에는 기한의 이익을 주장하지 못한다.

1. 채무자가 담보를 손상, 감소 또는 멸실하게 한 때

2. 채무자가 담보제공의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때

 

 


이행지체의 효과 : 그래서, 이행지체에 빠지면 어떻게 되는건데?

 

⑴ 첫째, 채무자가 이행지체에 빠졌더라도 여전히 그 채무는 부담한다. 이행불능은 채무자를 채무에서 해방시키지만, 이행지체는 그러지 못한다. 당연한 소리다. 채무자가 제때 이행하지 못했으면 나중에라도 이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A가 B에게 2020. 1. 1.까지 노트북을 인도하기로 하였다고 하자. 2020년 1월 1일이 되었으나 A는 여전히 노트북을 주지 않았다. 그는 이행지체에 빠진다. 그러더라도 A는 노트북을 인도할 채무를 여전히 부담한다. 이것은 이행불능과 다르다. 만약 A가 노트북을 주기로 하는 의무가 이행불능이 되었다고 하자. A는 더이상 채무를 이행할 수 없으니, 노트북 인도의무 자체가 없어진다. A는 노트북을 주지 않아도 된다. 다만 이행에 갈음하여 전보배상을 해야 할 뿐이다. A는 노트북 가액을 돈으로 물어줘야 한다.  

 

⑵ 둘째, 이행지체에 빠진 채무자도 채권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채무자가 이행기에 채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채권자는 급부를 '제때 받지 못하고 뒤늦게야 받는 손해'를 입기 때문이다. 채무자는 이 지연손해(遲延損害)를 배상해야 한다. 이행불능이 생기면 채무 자체가 소멸하므로 채무자가 그 급부에 갈음한 전보배상을 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가령 갑이 을에게 3,000만원을 빌려 2020년 3월 3일까지 갚기로 했다. 어느덧 변제기가 되었지만 갑은 차일피일 미루기만 한다. 갑은 본래 급부인 3,000만원을 돌려줘야 겠지만, 이와 함께 을이 돈을 제때 받지 못하여 입은 손해도 추가로 배상해야 한다. 그래서 변제기 다음날부터 3,000만원에 대한 지연손해금도 물어줘야 한다. 

 

이때 3,000만원에 대한 지연손해금은 어떻게 계산하는가. 채무가 금전채무일 때 민법 제397조의 특칙이 있다. 채무자가 금전채무를 이행지체하고 있다면 채권자가 굳이 자신이 입은 손해액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제397조 제2항).[각주:4] 대신 그 손해액은 이렇게 정한다. 

㈎ 지연손해금률을 약정하였다면 그에 따라 지연손해금을 정한다.[각주:5] 가령 “이행기에 돈을 주지 않으면 연 10%의 지연손해금을 붙인다”라고 약정하였다면 그 지연손해금률을 적용한다. 
㈏ 지연손해금을 따로 약정하지 않았다면, 원금에 적용하는 이자약정의 이율을 적용한다. 당사자가 “3,000만원을 빌려주고 이자는 월 2%로 한다”고 약정하였다면 지연손해금도 똑같이 월 2%를 적용한다. [각주:6]

㈐ 이자약정조차 없다면 법정이율을 적용한다. 민사법정이율은 연 5%이고, 상사법정이율은 연 6%이다. 당사자가 “3,000만원을 빌려준다”라고만 하고 이자약정을 하지 않았다면, 이행지체 이후에는 연 5%나 6%를 붙인다(제397조 제1항, 제379조, 상법 제54조).


채무자가 이행을 지체하면 본래 급부와 지연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채권자가 본래 급부를 포기하고 아예 본래 급부를 대신하는 전보배상을 구할 수도 있다. 제395조는 채무자가 이행을 지체한 경우에 채권자가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이행을 최고했는데도 그 기간 안에 채무자가 이행하지 않았거나, 이행지체 후에는 이행하더라도 채권자에게 이익이 없다면 채권자는 수령을 거절하고 이행에 갈음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한다.

 

⑶ 셋째, 채무자가 이행지체에 빠지면 그 이후부터 책임이 가중된다(무과실책임). 이행기가 지난 상태에서 이행불능이 발생하였다면 채무자는 그 이행불능에 대한 고의나 과실이 없더라도 책임을 진다. 즉, 무과실책임을 진다. 다만 채무자가 이행기에 이행하여도 손해를 면할 수 없는 경우에는 책임을 면한다.[각주:7] 
  
⑷ 넷째, 채무자 이행을 지체하면 채권자는 계약을 해제할 수도 있다. 물론 이행을 지체하자마다 곧장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상당한 기간을 정해서 이행을 최고(독촉)해야 한다. 채무자가 그 기간 안에도 이행하지 않아야 비로소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각주:8] 이행불능이 되면 채권자는 최고 없이 곧장 계약을 해제할 수 있으나, 채무자가 이행을 지체하면 채권자는 일단 최고를 해야한다.

 

 

 

동시이행의 항변권은 이행지체를 막아준다

 

쌍무계약은 '니가 주니까 나도 주는' 계약이다. 쌍무계약을 쌍무계약답게 만들어주는 권리가 바로 '동시이행의 항변권'이다. 까먹지 않았지? (기억이 안나면 여기를 참조 : https://avalanche.tistory.com/59)

 

채무자가 이행을 하지 않더라도, 그 채무자에게 동시이행의 항변권이 있으면 채무불이행이 되지 않는다. "내가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행사하겠어요!"라는 말을 할 필요 없이, 그저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행지체를 막아준다. 이걸 동시이행 항변권의 '당연효'라고 부른다. 동시이행의 항변권이 가진 당연한 효과라는 뜻이다.

 

자, 이제 채무자는 방패를 가졌다. 이행을 하지 않고 뭉개고 있어도 이행지체가 되지 않는다. 채권자는 "왜 아직도 채무를 이행하지 않느냐"며 닥달할 수 없다.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계약을 해제할 수도 없다. 채권자가 채무불이행책임을 묻고 싶다면 자신의 반대채무를 이행하여 채무자가 가진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깨뜨려야 한다. 어려운 말 같지만 역시나 상식적인 이야기다. 당신이 상대방에게 자기 노트북을 주는 대신 돈을 받기로 한 거라면, 일단 상대에게 자기 노트북은 주면서 채무불이행책임을 물으라는 소리다.

  

[사례] 갑은 을에게 자신의 집을 5억 원에 팔기로 했다. 계약금, 중도금은 치렀고, 잔금 3억 원만 남았다. 둘은 7월 11일에 만나 집의 소유권이전등기와 남은 돈을 서로 주기로 했다. 그러나 갑과 을 아무도 약속장소에 나오지 않았다. 갑은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다. 이제 매매계약을 해제하고 싶다. 갑은 어떻게 해야할까?

① 이행기 도과 :  을이 지는 채무는 잔금 3억 원을 7월 11일까지 지급해야하는 것이다. 확정기한부 채무다. 을은 그 이행기를 넘겨버렸다. 원래대로는 이행지체가 성립해야 한다.
② 동시이행의 항변권 : 하지만 을이 돈을 줘야할 채무와 갑이 물건을 줘야할 채무는 동시이행관계에 있다. 을은 동시이행의 항변권이 있다. 을이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행사하지 않았더라도, 을은 그걸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이행지체에 빠지지 않는다.
③ 갑의 해제권 행사 : 따라서 갑이 해제권을 행사하려면 을이 가진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깨부숴야 한다. 그러려면 변제제공을 해야 한다. 판례는 매도인이 매수인을 이행지체로 만들려면 소유권이전등기서류를 현실적으로 매수인에게 주거나 약속장소에 서류를 준비해 놓고 수령해가라고 최고(독촉)하면 된다고 한다.[각주:9]
④ 결국 갑이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고 싶다면, 등기서류를 넘겨줘야하는 자기 채무에 대한 변제제공을 계속하면서 을에게 해제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해야 한다.

 

  1. 대법원 2002. 3. 29. 선고 2001다41766 판결 [본문으로]
  2. 제741조(부당이득의 내용) 법률상 원인없이 타인의 재산 또는 노무로 인하여 이익을 얻고 이로 인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이익을 반환하여야 한다. [본문으로]
  3. 대법원 1975. 5. 27. 선고 74다1393 판결 [본문으로]
  4. 제397조(금전채무불이행에 대한 특칙) ①금전채무불이행의 손해배상액은 법정이율에 의한다. 그러나 법령의 제한에 위반하지 아니한 약정이율이 있으면 그 이율에 의한다. ②전항의 손해배상에 관하여는 채권자는 손해의 증명을 요하지 아니하고 채무자는 과실없음을 항변하지 못한다. [본문으로]
  5. 대법원 2013. 4. 26. 선고 2011다50509 판결 [본문으로]
  6. 제397조(금전채무불이행에 대한 특칙) ①금전채무불이행의 손해배상액은 법정이율에 의한다. 그러나 법령의 제한에 위반하지 아니한 약정이율이 있으면 그 이율에 의한다. [본문으로]
  7. 제392조(이행지체 중의 손해배상) 채무자는 자기에게 과실이 없는 경우에도 그 이행지체 중에 생긴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 그러나 채무자가 이행기에 이행하여도 손해를 면할 수 없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본문으로]
  8. 제544조(이행지체와 해제) 당사자 일방이 그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상대방은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그 이행을 최고하고 그 기간내에 이행하지 아니한 때에는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자가 미리 이행하지 아니할 의사를 표시한 경우에는 최고를 요하지 아니한다. [본문으로]
  9. 대판 2001. 5. 8. 2001다6053, 607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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